[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봄은 왔는데
2021년 04월 02일(금) 08:00 가가
봄비가 내린다. 봄비답게 온종일 부슬부슬 내리더니 오후 늦게서야 그쳤다. 봄은 그리 쉽게 오지 않는다. 문턱까지 왔나 싶다가도 어느샌가 대문 밖으로 도망가 버리곤 한다. 하지만 어느 틈에 와버렸다. 물기 머금은 목련 꽃망울이 터질 듯 잔뜩 부풀어 올랐다.
정말 신기하게도 목련꽃은 해마다 이맘때면 작년과 똑같은 모양새로, 똑같은 방식으로 핀다. 해마다 접하지만 볼 때마다 신기하다. 어쩌면 한 해도 빼먹지 않고 매년 똑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 짝이 없다. 심지어 그런 목련을 대하는 나의 태도 역시 해마다 똑같이 반복된다. 나는 마치 숨쉬기라도 하듯 너무나 자연스럽게 촉촉하게 젖은 목련 꽃망울을 찍는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그 어떤 분노나 좌절 없이, 일말의 불안이나 두려움도 없이 맘 편하게 목련의 개화를 본 해가 몇 번이나 있었던가. 작년 이맘때는 몸이 고장난 덕에 아름답게 피고 지는 목련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마당의 목련이 피고 지는 걸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해마다 피는 목련은 여느 때와 다름없지만 목련을 대하는 우리는 매년 다르다. 올해 목련은 저 멀리 미얀마의 학살 뉴스와 함께 피어난다. 한때 80년 광주를 떠올리면 어떻게 사람이 같은 사람을 학살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 미얀마는 지난 광주의 모습 그대로이다.
일대일로 정책에 따라 미얀마를 자국의 영향력 아래 두어 인도양으로의 진출을 손쉽게 하려는 중국의 입장에서는 친서방적인 미얀마 민주정부가 못 마땅할 것이다. 반면 중국의 남하를 막으려는 미국은 친중국 성향의 군부가 몹시 맘에 들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현 미얀마 상황의 바탕에 두 강대국간의 힘 겨루기가 깔려 있어, 국제 사회의 미얀마 군부에 대한 제재는 한계가 분명하다. 국제 정치는 오직 약육강식만을 허락한다. 강대국 간 힘겨루기 싸움에 희생당하는 쪽은 약소국의 민중들이다. 마음이야 지금 당장이라도 봄이 오면 좋겠지만, 미얀마는 지금 늦은 가을 어디쯤에 있는 듯하다.
그동안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사람의 일에서 애써 눈을 돌려 자연과 벗하여 살았다. 꽃이 피고, 잎사귀가 돋아나고, 아침 햇살이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햇살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이 간지럽게 들려오는 자연 속에 마음을 맡기고 살았다. 이곳 무등산 자락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다. 산수유가 피고, 매화가 피고, 목련이 피고, 수선화가 피고 있다. 꽃은 어김없이 피는데 사람들의 총칼에 사람들이 하염없이 지고 있다. 과거의 우리가 그랬듯 미얀마의 민중들은 군부의 총부리에 피를 흘리고 있다. 해마다 어김없이 목련은 피는데, 미얀마의 민중들은 때 이른 벚꽃처럼 흩날리며 쓰러지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 혁명의 도시 광주에서, 다른 산도 아닌 무등산의 새인봉을 바라보며 봄날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미얀마의 오늘을 보며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마침 왓챠에서 4K 화질로 리마스터링한 왕가위를 곧 서비스한다고 한다. 새벽에 이 소식을 접하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리운 왕가위의 홍콩이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왕가위의 홍콩은 지난했던 지난 시절의 삶을 언제나 위로하고 있다. 최소한 나의 경우는 그랬다. 그 시절에 왕가위가 없었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 만년은 더 팍팍했을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쓰디 쓴 커피를 들이키는 양조위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지….
저녁 내내 오후의 목련꽃을 생각하다가, 내일 할 법문을 생각하다가, 미얀마의 민중들을 생각하다가, 중국 본토의 압제에 신음하는 지금의 홍콩을 떠올리다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이다.
올해의 봄은 사람 사는 세상 속에서 움트고 있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웃어야 마침내 봄이 오는 것이다. 봄은 항상 올 듯 말 듯 잔뜩 뜸만 들이다가 어느샌가 훌쩍 가 버리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러지 않기를 진지하게 권고하고 싶다. 제대로 와서 충분히 음미할 기회를 주길 바란다. 봄을 즐길 기회라도 없다면 사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
하지만 살아오면서 아무런 근심 걱정 없이, 그 어떤 분노나 좌절 없이, 일말의 불안이나 두려움도 없이 맘 편하게 목련의 개화를 본 해가 몇 번이나 있었던가. 작년 이맘때는 몸이 고장난 덕에 아름답게 피고 지는 목련을 원 없이 볼 수 있었다. 마당의 목련이 피고 지는 걸 바라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코로나19를 핑계 삼아 사람의 일에서 애써 눈을 돌려 자연과 벗하여 살았다. 꽃이 피고, 잎사귀가 돋아나고, 아침 햇살이 은비늘처럼 반짝이고, 햇살 사이로 새들의 지저귐이 간지럽게 들려오는 자연 속에 마음을 맡기고 살았다. 이곳 무등산 자락에도 봄이 찾아오고 있다. 산수유가 피고, 매화가 피고, 목련이 피고, 수선화가 피고 있다. 꽃은 어김없이 피는데 사람들의 총칼에 사람들이 하염없이 지고 있다. 과거의 우리가 그랬듯 미얀마의 민중들은 군부의 총부리에 피를 흘리고 있다. 해마다 어김없이 목련은 피는데, 미얀마의 민중들은 때 이른 벚꽃처럼 흩날리며 쓰러지고 있다.
다른 곳도 아닌 이곳 혁명의 도시 광주에서, 다른 산도 아닌 무등산의 새인봉을 바라보며 봄날의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미얀마의 오늘을 보며 우리의 과거를 떠올리는 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마침 왓챠에서 4K 화질로 리마스터링한 왕가위를 곧 서비스한다고 한다. 새벽에 이 소식을 접하고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한번도 가보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리운 왕가위의 홍콩이 기별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이다. 왕가위의 홍콩은 지난했던 지난 시절의 삶을 언제나 위로하고 있다. 최소한 나의 경우는 그랬다. 그 시절에 왕가위가 없었다면 내 삶은 지금보다 만년은 더 팍팍했을 것이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쓰디 쓴 커피를 들이키는 양조위가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던지….
저녁 내내 오후의 목련꽃을 생각하다가, 내일 할 법문을 생각하다가, 미얀마의 민중들을 생각하다가, 중국 본토의 압제에 신음하는 지금의 홍콩을 떠올리다가… 마음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이다.
올해의 봄은 사람 사는 세상 속에서 움트고 있다. 꽃이 피었다고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다. 사람들의 마음이 활짝 웃어야 마침내 봄이 오는 것이다. 봄은 항상 올 듯 말 듯 잔뜩 뜸만 들이다가 어느샌가 훌쩍 가 버리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러지 않기를 진지하게 권고하고 싶다. 제대로 와서 충분히 음미할 기회를 주길 바란다. 봄을 즐길 기회라도 없다면 사는 게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하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