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미디 붕괴는 제2의 유재석 등장 가로막는다
2021년 03월 30일(화) 10:00
[배국남의 대중문화 X파일] 설 자리 사라진 개그맨과 코미디 부활 절실
방송 설 자리 잃은 개그맨들 유튜브에서 활동하지만 제한적
부활 위해 대중 웃음 코드 맞춘 포맷·독창적 소재 개발 시급

MBC 코미디언 공채 1기 이용식은 “웃기던 개그맨들이 울고 있네요. 한 번 더 기회를…”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에 나섰다.

MBC에선 2014년 ‘코미디의 길’ 이후 코미디 프로그램이 종적을 감췄다. SBS는 2017년 코미디 프로그램 ‘웃찾사’를 폐지했다. MBC 코미디언 공채 1기 이용식은 “웃기던 개그맨들이 울고 있네요. 한 번 더 기회를…”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항의 시위에 나섰다.

SBS 마지막 개그맨 공채 16기 김민수는 “초등학교 때부터 개그맨이란 직업을 생각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다른 일을 해야 하나’라는 생각이 들면서 저한테 배신감이 들었다”라는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리고 3년이 흘렀다.



“지금 어디선가 각자의 삶을 치열하게 살고 있을 후배들에게 2021년에는 제작진이 그들이 꿈꿀 수 있는 무대를 단 하나만 만들어줬으면 하는 것이 간절한 바람입니다.”

KBS가 2020년 5월 21년간 한국 코미디 트렌드를 이끌며 수많은 개그맨과 예능스타를 배출한 ‘개그 콘서트’의 막을 내리면서 초래된 지상파 방송 3사의 코미디 프로그램 전무 상황에 대한 소회를 담은 유재석의 ‘2020 MBC 방송연예대상’ 수상 소감이다.

KBS, MBC, SBS 방송 3사가 코미디 프로그램 폐지뿐만 아니라 개그맨 공채 제도를 폐기하면서 코미디 프로그램과 예능판도 그리고 개그맨 육성 시스템에 변화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다. 한국 코미디의 종언에 대한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방송에서 설 자리를 잃은 상당수 개그맨은 음식점과 편의점 아르바이트, 대리기사 등 생존을 위해 코미디와 무관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열악한 개그 공연 무대에 오르며 방송사 공채를 통한 개그맨 꿈을 꾸던 수많은 지망생은 진로의 출구 봉쇄에 절망하고 있다.



TV 코미디 전성기를 견인했던 KBS ‘유머 1번지’.
1960대 코미디를 발전시킨 MBC ‘웃으면 복이 와요’.
한국 코미디는 일제 강점기 신파극이 끝난 뒤 촌극 한 토막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됐고 1912년 조중환의 희극 ‘병자 삼인’을 비롯한 희극 작품이 공연되고 1927년 취성좌의 악극이 등장하면서 본격적으로 태동했다. 1930년대부터 악극 무대에서 재담과 만담, 희극, 희가극이 공연돼 재담가 박춘재, 만담가 신불출과 희극 배우 이원규 같은 코미디언들이 인기를 얻으며 코미디 흐름을 이끌었다. 해방 이후 1950년대까지 악극을 중심으로 코미디가 진화했고 1960년대 들어서는 버라이어티쇼, 영화, 라디오와 TV 등 다양한 매체에서 코미디가 만개했다.

특히 KBS가 1962년 방송한 ‘유머 클럽’을 시작으로 TV코미디 역사를 연후 TBC ‘웃으면 천국’, MBC의 ‘웃으면 복이 와요’와 ‘부부 만세’가 국민적 사랑을 받으면서 한국 코미디는 비약적으로 발전했다. 이때부터 TV코미디가 한국 코미디를 주도했다. 악극단에서 배출된 이복본 윤부길 양훈 양석천 구봉서 백금녀 서영춘 배삼룡 송해 등 코미디 스타들은 악극과 버라이어티쇼, 라디오, 영화뿐만 아니라 TV 코미디에서 맹활약하며 인기를 배가시켰다.

박정희 정권이 1970년대 중반 사회와 대중문화를 정화한다는 미명 하에 저질 논란이 제기된 코미디 프로그램과 코미디언에 대해 규제와 징계를 남발하면서 한국 코미디가 위기에 봉착했다. 방송사들은 공채를 통해 코미디언과 개그맨을 집중적으로 육성하고 세대교체를 대대적으로 단행해 코미디에 새바람을 일으키며 위기를 극복했다.

MBC는 1975년부터 코미디언 공채를 시작해 이용식 이규혁 방미 정애자 여정건 김혜영을 선발했고, 1981년부터는 개그맨 콘테스트를 통해 최양락 최병서 이경규 이경실 박미선 등을 발탁했다. TBC는 서세원 엄용수 장두석 김형곤 이성미를 뽑았고, KBS는 1982년부터 개그맨 공채를 통해 임하룡 김정식 심형래 김한국 김미화 이봉원 팽현숙 임미숙 등을 선발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김국진 유재석 남희석 신동엽 이영자 강호동 박명수 김용만 김구라 김숙 김준호를 비롯한 많은 개그맨이 방송 3사 공채와 특채를 통해 데뷔했다. 이들 개그맨은 1980~1990년대 ‘유머 1번지’, ‘쇼! 비디오자키’, ‘청춘 만만세’, ‘코미디 세상만사’, ‘오늘은 좋은 날’, ‘코미디 전망대’ 등을 통해 TV 코미디 전성기를 견인했다. 토크쇼, 리얼 버라이어티, 오디션 예능, 관찰 예능, 먹방·쿡방, 음악 예능, 스포츠 예능 등 다양한 장르의 예능 프로그램이 득세하면서 코미디 프로그램 인기가 시들해지기 시작한 2000년대에도 박준형 강성범 김병만 이수근 박나래 양세형 이국주 등 방송사 공채 개그맨들이 KBS ‘개그 콘서트’와 SBS ‘웃찾사’, MBC ‘코미의 길’을 통해 웃음을 선사하며 한국 코미디의 명맥을 유지했다.



2020년 폐지된 개그콘서트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시청자 외면으로 코미디 프로그램 침체가 심해지면서 MBC와 SBS가 코미디 프로그램과 개그맨 공채를 폐지한 데 이어 KBS마저 2020년 5월 지상파 TV에 유일하게 남은 코미디 프로그램 ‘개그 콘서트’와 개그맨 공채를 폐기하면서 한국 코미디가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이제 개그맨들이 활동할 수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tvN의 ‘코미디 빅리그’가 유일하다. 한국 코미디의 명맥이 끊길 상황이다.

무엇보다 개그맨들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예능감을 익힌 뒤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해 웃음을 주조하며 스타로 부상하는 예능 생태계가 파괴되기 시작했다. 내일의 유재석을 꿈꾸며 방송사 공채를 준비하던 개그맨 지망생들은 진로의 좌표를 잃어버렸고 개그맨들은 생존의 무대를 빼앗겼다. 개그맨 중 일부는 기존 인기를 바탕으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지만, 예능 스타들이 장악한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생존은 어려운 상황이다.

유튜브 ‘흔한 남매’의 장다운(왼쪽), 한으뜸
방송에서 설 자리를 잃은 개그맨들의 발길이 향하는 곳은 유튜브 개인방송이다. 김준호 김대희 유민상 유세윤 안영미 이국주 양세형을 비롯한 인기 개그맨부터 김민수 정재형 등 무명 개그맨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개그맨이 유튜브를 통해 코미디 콘텐츠 등을 제작해 대중과 만나고 있다. 일부는 팀을 이뤄 유튜브 방송을 하고 있다. ‘흔한 남매’>(212만 명), ‘엔조이 커플’(201만 명), ‘동네 놈들’(122만 명), ‘낄낄 상회’(104만 명)처럼 일정 구독자를 확보해 수익을 창출하며 성공한 채널도 있지만, 경쟁이 치열한 유튜브에서 성공한 개그맨은 많지 않다.

유튜브 ‘꼰대희’(김대희·오른쪽)
유튜브 '얼간 김준호'의 김준호
코미디 프로그램과 개그맨 공채 폐지의 가장 큰 이유는 낮은 시청률과 수입 감소다. 근래 들어 코미디 프로그램은 변화된 웃음 트렌드와 코드를 반영한 새로운 소재와 포맷 개발을 하지 못해 외면을 자초했다. 전형적인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전개하면서 기대감을 최고조로 올린 뒤 예상하지 못한 반전을 꾀하거나 결함과 약점을 가진 대상에게 느끼는 우월감에서 유발되는 웃음의 원리를 활용한 개그 코드를 내세운 전통적인 코미디 기법은 최근 들어 웃음 유발력이 크게 약화했다.

요즘 시청자는 서사의 시간적 전개 끝에 찾아오는 반전까지 기다리지 않기에 반전의 모멘트 없이 매 순간 이미지의 전복, 뉘앙스의 일탈, 의미의 전환 등을 통해 웃음을 촉발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에 개그맨과 제작진, 코미디 프로그램은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높은 인기를 얻어 예능 프로그램에 진출한 예능 스타들이 수입과 대중성이 낮은 코미디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은 것도 TV코미디 침체를 불러왔다. 방송사와 외주 제작사가 많은 인원과 제작비가 투입되지만, 수입 창출이 어렵고 해외에서도 인지도가 낮은 코미디 프로그램 제작을 꺼리면서 한국 코미디를 주도한 TV 코미디의 종언이 현실화했다. 반면 예능 프로그램은 시대와 대중의 변화된 정서와 트렌드를 수용해 새로운 포맷을 만들고 예능 스타 뿐만 아니라 유명 배우와 인기 가수를 전진 배치해 국내 시청자와 해외 한류 팬의 눈길을 끌며 시청률과 수입, 두 마리 토끼를 잡았다.

TV 화면에서 사라지고 있는 코미디 프로그램은 단순히 시청률로만 재단할 수 없는 의미가 있다. 코미디 프로그램은 대중문화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은 한국 코미디를 발전시킬 뿐만 아니라 개그맨과 예능인을 양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예능감과 웃음의 무기를 체득한 개그맨들이 예능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출연자로 나서며 한국 예능 발전을 이끌었다.

현재 예능 프로그램을 주도할 뿐만 아니라 외국에서 예능 한류를 일으키고 있는 이경규 박미선 김국진 유재석 신동엽 강호동 김구라 이영자 송은이 김숙 김병만 박나래 양세형 등 예능 스타들이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육성된 개그맨들이다. 물론 일부 극단이나 개그 공연단에서 지망생에게 활동할 무대를 제공하며 개그맨을 배출하고 있으나 방송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대우나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

개그맨을 관리하고 육성하는 연예기획사도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연예인을 육성·관리하는 연예기획사 1120개 중 가수 관련 업체가 536개, 연기자 관련 업체가 488개인데 비해 코미디언 관련 기획사는 21개에 불과하다. 이 중에서 개그맨을 육성하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김준호 박나래 김준현 등 예능 스타들이 소속된 제이디비엔터테인먼트 같은 연예기획사가 지망생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해 연습생을 선발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일정기간 교육한 뒤 공연 무대에 올려 개그맨으로 육성하고 있지만, 규모도 영세할 뿐만 아니라 전문적인 시스템도 구축하지 못했다. 이렇게 육성된 개그맨조차 코미디 프로그램이 폐지되면서 방송 진출 기회가 봉쇄되다 보니 개그맨 활동을 포기한다.

예능 생태계의 건강한 복원을 위해서는 개그맨 육성과 코미디 프로그램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하고 개그맨이 지속해서 배출되기 위해서는 시대의 변화와 대중의 취향을 반영하는 웃음 코드를 담보한 획기적인 코미디 포맷과 독창적인 소재 개발이 시급하다. 시대와 대중의 변화를 코미디로 잘 소화할 개그맨 역시 필요하다. 인지도와 인기가 높은 예능 스타들이 출연해 코미디 프로그램의 활성화도 꾀해야 한다. 일본의 수많은 코미디언을 육성하고 코미디와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요시모토흥업(吉本興業)처럼 코미디언 육성과 코미디 콘텐츠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연예기획사 등장도 절실하다.

이윤을 내지 못하면 폐기하는 산업적 논리가 지배하는 방송과 문화 산업에선 코미디 프로그램이 존재해야 한다는 당위적 구호는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코미디 프로그램 신설 요청이나 폐지 항의로는 한국 코미디를 살릴 수 없다. 코미디 프로그램이 부활하지 못하면 한국 예능계를 진화시키고 예능 한류를 이끄는 유재석 같은 예능 스타의 등장은 힘들어질 것이다.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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