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호 신부, 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자선과 탐욕
2021년 03월 19일(금) 00:00 가가
지금 가톨릭 교회는 ‘사순(四旬) 시기’를 보내고 있다. 40일 동안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고 동참하여 부활을 준비하기 위한 회개의 시간이다. 모든 가톨릭 신자들이 이 시기에 실천해야 하는 것은 ‘기도, 단식, 자선(慈善)’이다. 사순 시기는 기도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여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단식하면서 가난과 배고픔에 시달리는 이들을 생각하며 감사의 마음을 가지게 되고, 자선으로 기도의 인식과 단식이라는 감사의 마음을 이웃에게 실천하는 시기다. 그런데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 쉽지 않다. 우리 모두에게 측은지심의 마음이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막상 불행한 이들이나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도우려 하는데 직접 나서기가 쉽지 않다. 왜 자선을 행하는 것이 쉽지 않을까?
자선의 사전적 의미는 ‘선의를 베풂. 특히 불행·재해 등으로 가난하거나 불행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가엾게 여겨 도와줌’이다. 또한 탐욕(貪慾)은 ‘지나치게 탐하는 욕심’을 뜻한다.
개신교 신학자 프리드리히 쇼를렘머(Friedrich Schorlemmer)는 저서 ‘탐욕과 행복’에서 탐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인간은 활기차고 충만하게 살고자 행복을 갈망한다. 그런데 이러한 갈망의 배후에는 탐욕이 숨어 있다. 탐욕은 극단적으로 표현된 삶의 형태이지만, 동시에 꼭 필요한 삶의 활력이 될 수도 있다.” 탐욕을 근절시키는 것만이 해결책은 아니다. 왜냐하면 탐욕이라고 일컬어지는 것이 전혀 없다고 한다면 인간은 결국 아무 의욕도 없이 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이 탐욕의 힘을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는 힘으로 바꾸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는지 그 길을 찾아 식별해야 한다. 인간에게 욕심이 없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어느 정도의 욕심은 있어야 인간의 삶에 원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소유하려는 마음은 모두가 간절한 것 같다. 그러나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하지 않지만 남들이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혀 필요하지 않아도 가지려는 마음이 우리의 욕심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이 아닐까? 욕심을 지나치게 탐하여 탐욕에까지 이르게 되면 큰일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단식은 타인과 모든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탐욕을 채우려고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는 유혹에서 벗어나, 우리 마음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사랑을 위해 기꺼이 고통을 감내하게 해 줍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에게 자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선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탐욕의 극단적인 삶을 멈추게 할 것이다. 탐욕을 통해서 얻어지는 성취감은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지만 자선을 통해 얻어지는 성취감은 없어지지 않는 보물과도 같은 행복이다. 채움으로써 스스로 느끼는 기쁨·행복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도우며 느끼는 기쁨·행복은 확연하게 다르다. 자선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이 빛이라면, 탐욕을 통해 채워지는 성취감은 어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사순 시기 동안 기도하고 단식하고 자선을 행하는 것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쇼를렘머가 말한 ‘탐욕은 꼭 필요한 삶의 활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우리가 자선을 베풀 때에, 우리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돌보시는 하느님 섭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자선은 우리를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존재가 어둠에 갇히는 존재가 아니라, 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존재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탐욕은 너무나 짙은 어둠이 되어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 어둠이라는 탐욕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미얀마의 군부 독재는 극단적인 탐욕의 끝이다. 어둠을 가중시키는 탐욕을 우리의 자선을 통해 빛으로 바꾸자. 없어지지 않는 보물과도 같은 행복을 만들어 보자.
그래서 우리에게 자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자선은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지게 하는 탐욕의 극단적인 삶을 멈추게 할 것이다. 탐욕을 통해서 얻어지는 성취감은 밑 빠진 독처럼 채워지지 않지만 자선을 통해 얻어지는 성취감은 없어지지 않는 보물과도 같은 행복이다. 채움으로써 스스로 느끼는 기쁨·행복과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을 도우며 느끼는 기쁨·행복은 확연하게 다르다. 자선을 통해 얻어지는 기쁨이 빛이라면, 탐욕을 통해 채워지는 성취감은 어둠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 가톨릭 신자들이 사순 시기 동안 기도하고 단식하고 자선을 행하는 것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역할을 대신하기 때문이다.
쇼를렘머가 말한 ‘탐욕은 꼭 필요한 삶의 활력이 될 수도 있다’는 말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올 수 있다는 말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도 “우리가 자선을 베풀 때에, 우리는 당신의 모든 자녀를 돌보시는 하느님 섭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자선은 우리를 욕심으로부터 자유롭게 합니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존재가 어둠에 갇히는 존재가 아니라, 빛으로 환하게 밝히는 존재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코로나 시대에 우리의 탐욕은 너무나 짙은 어둠이 되어 가난한 이들은 더 가난해지고 있다. 어둠이라는 탐욕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미얀마의 군부 독재는 극단적인 탐욕의 끝이다. 어둠을 가중시키는 탐욕을 우리의 자선을 통해 빛으로 바꾸자. 없어지지 않는 보물과도 같은 행복을 만들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