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숨결 품은 옛집에 깃든 우리 이야기
2021년 03월 12일(금) 00:00
길모퉁이 오래된 집
최예선 지음

윤동주 시인의 육필 원고가 보관돼 있던 광양 망덕포구 인근 정병욱 가옥. <샘터 제공>

오래된 집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오래된 것들이 지닌 힘이다. 거주했던 이의 역사와 숨결, 시난고난한 역사가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건축물이 그렇다. 오래된 집들은 나름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낯선 이가 살아온 집의 이야기를 듣는 것은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전직 잡지기자였던 최예선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잘생긴 집에 서면 이 집에 누가 살까, 이 집을 누가 지었을까가 궁금해진다. 이유 없이 지어지는 집은 없고 집 안의 모든 요소는 이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

전국 31곳의 근대건축과 그곳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를 묶은 책 ‘길모퉁이 오래된 집’은 제목처럼 여운을 담고 있다. 저자 최예선은 건축가 남편과 답사한 기록 ‘청춘남녀, 백 년 전 세상을 탐하다’와 예술가들의 집을 연결해 서울을 재구성한 ‘오후 세 시, 그곳으로부터’ 등을 펴낸 바 있다.

이번 책은 ‘근대건축에 깃든 우리 이야기’라는 부제가 말해주듯 오래된 집이 모티브다. 책은 모두 4챕터로 구성돼 있다.

1부는 시간을 품은 서울 옛집에 초점을 맞췄다. 일반적인 서울 옛집 대명사로는 최순우 가옥을 들 수 있다. 한옥의 아름다움이 무엇인지 보여줄 뿐 아니라 혜곡 최순우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한국전쟁 때 수많은 보물들을 숨기고 피난을 갔던 점이나, 부산으로 옮겼던 유물이 화재로 사라지는 아픔을 목격했던 스토리는 유명하다. 경사지에 지어진 높은 대문, 정갈한 마당, 휘영청 뻗은 소나무 등에선 “화려하게 꾸민 데 없이 단정함과 고결함”이 느껴진다.

이밖에 소설가 박종화의 평창동 고택, 애국지사 김구 선생의 마지막을 지켜본 경고장을 비롯해 익선동의 한옥마을에 대한 이야기도 만난다.

2부는 시대의 희로애락, 다시 말해 당대 역사를 담은 집이 중심이다. 평생을 소록도 한센병 환자를 돌보는 일에 헌신했던 두 오스트리아 간호사 마가렛과 마리안느가 머물던 집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두 개의 창이 있는 똑같은 모양의 방. 수술을 받은 마리안느는 의자와 책상을 놓았고, 마가렛은 앉은뱅이 좌탁을 사용한 것만 다를 뿐 똑같이 소박하고 단정한 방이었다. 마가렛의 방 창문에는 ‘사랑’이라는 글자가 붙어있다.”

아울러 사위 김지하가 투옥되자 딸과 손주를 가까이서 돌보기 위해 이사까지 했던 작가 박경리의 집, 화가의 소탈한 품성을 닮은 용인 장욱진 가옥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3부에서는 치유의 공간으로 소환되는, 유산으로서의 옛집을 만난다. 특히 광양 정병욱 가옥은 윤동주 시인의 유고가 보관됐던 곳이다. 섬진강이 지나는 망덕포구에 자리한 관계로 강의 정취와 아울러 당시 시대의 고뇌를 느낄 수 있다. 그 외에 역사의 그늘이 드리워진 부산 정란각도 빼놓을 수 없다.

마지막 4부는 오래도록 마음이 머무는 집 이야기다. 피난민들이 무덤 위에 지은 판잣집으로 시작했던 부산 아미동과 감천동 문화마을, 철도원들의 애환이 깃든 대전 소제동 철도관사촌 이야기도 만난다.

<샘터·1만6800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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