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서체
2021년 03월 11일(목) 05:30 가가
책 선물만큼 어려운 것도 없다. 내가 좋아하는 책이 꼭 그의 마음에 든다는 보장이 없고, 상대의 취향을 온전히 파악하는 것도 어렵기 때문이다. 한데, 가끔은 상대방의 완벽한 취향은 아닐지라도 한 번쯤 읽어 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책을 선물하거나 권할 때가 있다.
타이포그래피 연구자 유지원과 물리학자 김상욱이 함께 쓴 ‘뉴턴의 아틀리에’가 바로 그런 책이다. 이 책은 ‘과학과 예술, 두 시선의 다양한 관계 맺기’라는 부제처럼 두 저자가 서로 ‘전공’을 바꿔 풀어낸 이야기가 흥미롭게 읽힌다. 유지원 씨가 쓴 또 다른 책 ‘글자 풍경’도 있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책을 읽거나 거리를 걸을 때 혹은 여행을 할 때, 자연스레 ‘글자’에 눈에 가게 된다. 우리는 일상 속에서 수많은 글자를 만나는데, 다양한 서체와 폰트가 존재하지만 딱히 관심을 갖게 되는 경우는 드물다. ‘글자 풍경’은 글자 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이야기를 통해 세상을 보는 작은 즐거움을 안겨 준다.
매일 컴퓨터로 글을 쓰는 나는 일을 할 때는 늘 같은 폰트를 쓰지만 가끔 개인 메일을 보낼 땐 색다른 폰트를 써 보기도 한다. 또 손 글씨로 방명록 등에 서명을 할 때면 누군가의 글씨를 살짝 훔쳐보기도 한다. 서체엔 ‘사람’이 보이는 듯하기 때문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가 최근 ‘KCC 임권택체’를 무료로 공개했다. 거장 임권택의 영화 데뷔 60주년과 한국영화 102주년을 기념해 제작된 ‘KCC 임권택체’는 ‘장군의 아들’ ‘불의 딸’ 등의 시나리오에 있는 임 감독의 손 글씨를 토대로 글꼴 파일 디자인을 구성했다. 임권택체를 보는 순간, 오래 전 인터뷰 당시 느릿느릿 말을 이어가던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위원회는 늘 만년필로 글을 썼던 소설가 박경리체와 원고지에 연필로 꾹꾹 눌러 글을 쓰는 소설가 김훈체, 신영복체 등도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며칠 전 공짜로 책 한 권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글자 풍경’을 다시 집어 들었다. 호기심을 놓치지 않는 삶은 재미있을 터. ‘글자 풍경’을 읽고 나면 세상 모든 글자들이 좀 더 흥미롭게 보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그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kwangju.co.kr
며칠 전 공짜로 책 한 권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을 때 ‘글자 풍경’을 다시 집어 들었다. 호기심을 놓치지 않는 삶은 재미있을 터. ‘글자 풍경’을 읽고 나면 세상 모든 글자들이 좀 더 흥미롭게 보이지 않을까. 누군가에게 그 즐거움을 선물하고 싶다.
/김미은 문화부장 mekim@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