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효인의 ‘소설처럼’] 좋은 부모이고자 하는 마음, 그리고 그 너머
2021년 02월 24일(수) 23:30 가가
-세오 마이코,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
우리는 아동을 학대하고 혐오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꽤나 단정적으로 들리겠지만 사실이다. 가정 내 학대로 숨지는 아이들 뉴스는 매번 사람들의 공분을 사지만 또 늘 그렇듯이 그 다음 뉴스로 덮이고 만다. 희생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애도하고 분노하지만,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할 제도적 접근은 미미하다. 그러는 사이 아이들은 동네 골목에서, 어린이집에서, 학교에서, 심지어 사는 집에서 여러 종류의 폭력에 노출된다. 코로나19로 인해 정상적인 등교가 어려웠던 시기에 좋지 않은 환경에 놓인 아이들의 고통은 아마도 더욱 가중되었을 것이다.
비단 물리적인 위협과 폭력을 휘두르는 것만이 학대의 전부는 아니다. 불과 수년 전, 모두가 카페를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던 시절에도 아이들과 아이의 보호자는 그곳이 ‘노 키즈 존’인지 아닌지 우선 확인해야 했다. 숱한 공공시설에서 아이들의 아이다운 행동은 마땅히 통제받아야 할 것으로 치부된다. 그리고 통제의 악역과 비난의 대상은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되기 십상이다.
평균적인 환경에서 자라고 있는 아이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반복되는 선행학습과 과목이나 영역을 가리지 않는 사교육에 내몰린 아이들에게 아이다운 놀이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이미 태어난 아이를 이렇게 대하면서 우리는 걱정한다. 사상 최저치를 기록한 출생률이 문제라고. 경제 활동 인구가 줄어서 큰일이라고. 요즘 젊은이들이 이기적이라 애를 안 낳는다고.
세오 마이코의 장편소설 ‘그리고 바통은 넘겨졌다’는 좋은 부모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그린 소설이다. 더 나아가 우리가 아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이러한 학대를 멈추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환기하는 소설이기도 하다. 어른의 사정에 의해 가족 형태를 수차례 바꿔야 했던 아이 유코를 주인공으로 한 성장소설이기도 하다.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답게 편안한 가독성으로 쉽게 읽히는 이야기임은 물론이다.
유코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유코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몇 년 되지 않아 브라질로 떠나야 할 상황에서 유코는 새엄마와 일본에 남을지, 아빠와 브라질로 떠날지 결정해야 한다. 유코는 의외로 집에 남기를 택한다. 그리고 새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한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평범하지 못한 가정의 구성은 이제 시작이었다. 새엄마인 리카는 유코에게 좋은 아빠가 될 사람을 찾아 결혼과 이혼 또다시 결혼을 거듭한다. 유코의 성은 자꾸만 바뀌게 된다.
지금의 아버지 모리미야의 딸인 유코의 시선에서 소설은 진행되지만, 이야기 내내 제법 복잡한 가정사가 아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시종 불안한 마음을 거두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유코가 겪은 부모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생겨 자기 인생이 새롭게 시작함을 마땅하게 받아들이며, 유코 또한 새롭게 맞이한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적응하려 애쓴다. 서로의 선의가 맞아떨어져 유코는 남들이 흔히 생각하는 비범한 가정사에서 비롯된 비극적 성장기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평범하게 자라나 평범한 사람을 만나 평범하게 결혼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특별함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평범한 특별함을 위해 소설이 강조한 것은 개인의 선함이다. 어린아이에게 버거운 판단을 맡긴 친아버지에서부터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두 번째 아버지, 그리고 지금의 아버지에게 이르기까지 인물들은 대체로 선하고 유코의 존재를 존중할 줄 안다. 일본 특유의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습성 때문일까. 소설은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폐가 되는 일 없이, 흘러간다. 좋은 부모가 되려는 마음을 보여 주면서.
좋은 부모이고자 하는 마음은 중요하고 귀하다. 이 소설은 최대한 담백하게 그리고 안온하게 그 마음을 내내 펼쳐 놓는다. 그래 어딘가 구겨진 곳 없는 그 마음에서 일견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이 전부는 아니다. 아이의 보호와 성장을 보호자의 성품과 환경이라는 우연적 요소에 전부 맡겨서는 곤란하다.
우리 곁의 아이들이 모두 유코처럼 자랄 수 있을까? 좋은 마음과 마음이 모여 한 사람의 성장을 돕는 건 지금 우리에게 일종의 판타지가 아닐까? 제목에서의 ‘바통’은 유코를 뜻하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음일 것이다. 마음 다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우리 사회에게 주어진 질문 혹은 바통이 아닐 수 없다.
유코의 어머니는 일찍 세상을 떠났다. 유코가 초등학교 때 아버지는 재혼을 했고, 몇 년 되지 않아 브라질로 떠나야 할 상황에서 유코는 새엄마와 일본에 남을지, 아빠와 브라질로 떠날지 결정해야 한다. 유코는 의외로 집에 남기를 택한다. 그리고 새엄마와 아빠는 이혼을 한다. 쉽사리 이해할 수 없는, 평범하지 못한 가정의 구성은 이제 시작이었다. 새엄마인 리카는 유코에게 좋은 아빠가 될 사람을 찾아 결혼과 이혼 또다시 결혼을 거듭한다. 유코의 성은 자꾸만 바뀌게 된다.
지금의 아버지 모리미야의 딸인 유코의 시선에서 소설은 진행되지만, 이야기 내내 제법 복잡한 가정사가 아이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시종 불안한 마음을 거두기 힘들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유코가 겪은 부모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좋은 부모가 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아이가 생겨 자기 인생이 새롭게 시작함을 마땅하게 받아들이며, 유코 또한 새롭게 맞이한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찾아 적응하려 애쓴다. 서로의 선의가 맞아떨어져 유코는 남들이 흔히 생각하는 비범한 가정사에서 비롯된 비극적 성장기의 주인공이 되지 않을 수 있었다. 평범하게 자라나 평범한 사람을 만나 평범하게 결혼해 평범하게 살아가는 특별함으로 이 소설은 끝을 맺는다.
이 평범한 특별함을 위해 소설이 강조한 것은 개인의 선함이다. 어린아이에게 버거운 판단을 맡긴 친아버지에서부터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두 번째 아버지, 그리고 지금의 아버지에게 이르기까지 인물들은 대체로 선하고 유코의 존재를 존중할 줄 안다. 일본 특유의 ‘폐를 끼치지 않으려는’ 습성 때문일까. 소설은 그야말로 누구에게도 폐가 되는 일 없이, 흘러간다. 좋은 부모가 되려는 마음을 보여 주면서.
좋은 부모이고자 하는 마음은 중요하고 귀하다. 이 소설은 최대한 담백하게 그리고 안온하게 그 마음을 내내 펼쳐 놓는다. 그래 어딘가 구겨진 곳 없는 그 마음에서 일견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러나 마음이 전부는 아니다. 아이의 보호와 성장을 보호자의 성품과 환경이라는 우연적 요소에 전부 맡겨서는 곤란하다.
우리 곁의 아이들이 모두 유코처럼 자랄 수 있을까? 좋은 마음과 마음이 모여 한 사람의 성장을 돕는 건 지금 우리에게 일종의 판타지가 아닐까? 제목에서의 ‘바통’은 유코를 뜻하는 게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그것은 마음일 것이다. 마음 다음에는 무엇이 필요한가. 아이를 키워야 하는 우리 사회에게 주어진 질문 혹은 바통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