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인생은 만남이다
2021년 02월 05일(금) 08:00
독일의 의사이자 작가였던 한스 카로사(1878~1956)는 “인생은 만남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가까이 부모를 만나고 형제를 만나고 이웃을 만난다. 직장에서 학교에서 또는 시장에서 차 안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 사람의 만남은 때로는 기쁨이 되고 은혜가 넘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미움이 되고 원망이 되기도 한다. 좋은 만남은 좋은 사회를 만든다. 인생의 성공도, 행복한 가정도, 좋은 교육도, 좋은 직장도 다 만남이 잘 이루어질 때 가능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좋은 만남을 선연(善緣)이라 하고 나쁜 만남을 악연(惡緣)이라 한다. 선연은 서로 은혜를 발견하여 감사하고 공경하고 도와준 결과요, 악연은 서로 불평하고 빼앗고 원망한 결과다.

그러나 지금의 사회에서는 악연을 선연으로 돌리는 것도 문제이지만 만남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 즉 무관심과 단절의 벽이 두꺼워지는 것이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비대면은 이러한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마음의 고립과 육체적 고립을 자초하고 있다. 이스라엘 히브리대학 사회철학 교수였던 마르틴 부버(1878~1965)는 ‘나와 너’라는 책에서 현대인들은 나와 너로서의 만남이 아니라 나와 그것으로서의 만남, 즉 인격 대 인격의 만남이 아니라 인격 대 물건으로의 만남이 있을 뿐이고 진정한 만남이 없음을 우려했다.

현대인들에게 이웃은 점점 없어지는 존재이다. 아파트의 한 계단을 이용하면서도 서로를 너무도 모르고 살아간다. 요즘 어린이들은 아이돌의 이름과 신상에 대해서는 잘 알지만,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고 살아간다. 모두가 너는 너, 나는 나로서 외톨이가 되어가고 있다. 교통·통신 수단의 발달로 세계는 하나가 되어간다고 하는데 가까운 이웃과는 점점 담이 높아져가는 기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마르틴 부버는 새로운 기계문명과 분업화된 생산 구조는 점점 인간적 소통을 약화시키고 협동의 필요를 감소시켰다고 진단했다. 기계화의 추세에 따라 요즘 농촌에도 트랙터와 콤바인이 등장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몇 배의 일을 처리해 준다. 그러나 콤바인이 등장한 들판에는 품앗이가 적어지게 된다. 품앗이는 상부상조의 따뜻한 협동 운동이다. 품앗이가 적어진 농촌은 서로가 절실한 필요를 덜 느끼게 될 것이고 필요를 덜 느끼는 만큼 인간적 관계도 약화될 것이다.

예전에는 잠깐의 길동무도 서로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걸었다. 이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에 먼 길도 지루한 줄 몰랐고, 미지의 위험도 함께함으로써 힘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문명은 인간의 관계를 약화시키는 반면 물질에 대한 욕구를 자극시켰다. 다들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은 한결같이 돈벌이에 대한 관심과 쾌락에 대한 관심으로 차 있다. 은행 창구에서, 상점에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는 오직 돈을 중심으로 한 물질적 관계만이 있다. 여기에는 진정한 인간적 만남이 없다. 인간적 만남이 상실된 사회는 사람은 많아도 친구가 없는 고독한 관계이다.

마르틴 부버는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라고 했다. 인간의 삶 속에 서로 위로가 되고, 의지가 되고 없어서는 살지 못한 깊은 관계임을 안다는 것은 나를 위해서나 남을 위해서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이웃을 소중하게 알고, 이웃의 일에 관심을 갖고, 서로 감사를 느끼며 인정을 나누면서 사는 생활 속에 진정한 삶의 보람이 있을 것이다. 오늘의 나의 생활이 우리가 모르는 많은 사람들과의 관계와 도움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안다는 것은 너무도 평범한 상식이면서도 우리는 이웃의 고마움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박중빈·1891~1943)께서는 서로 어울려 살아가는 이웃을 동포라 했고 그 동포에 대한 고마움을 동포은(同胞恩)이라 했다. 함께 사는 모든 것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면 우선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살 수 있을 것인지 생각해 보라 했다. 우리는 악연을 선연으로 맺어가는 개인적 노력도 필요하겠지만 서로 의지가 되는, 은혜를 자각하며 사랑의 이웃을 만들어 가는 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비대면 시대 방역 수칙은 지키면서 이 어려운 시국이 지나면 다시 한 번 인생의 소중한 만남이 시작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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