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갈거나
2021년 01월 29일(금) 08:00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언제부터인가 걸망 메고 떠돌던 삶이 기억에서 아스라이 멀어지고 있다. 섣불리 판단할 순 없지만 나의 영혼이 이젠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모양이다. 그곳은 물리적 의미를 포함함과 동시에, 물리적 의미보다 확장된 의미로 다가온다.

수도권의 시민들은 거대한 도시 생태계 안에서 유랑하는 삶을 살아간다. 그 안에서 그들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개인으로 존재한다. 직장도 자주, 사는 아파트도 자주 바뀐다. 한때 ‘노마드족’이란 말이 유행했지만 크게 보자면 대도시적 삶의 본질을 낭만적으로 표현한 것에 가깝다. 본인들은 아니라고 항변하겠지만, 시골에서 뿌리내리고 살아 보면 수도권의 삶이 왜 유랑형인지 알게 된다.

시골의 주민들은 가시적으로 확인 가능한 지역사회 속에 정주하여 살아가는 까닭에, 개인의 삶과 운명을 지역사회와 분리하여 생각하기 힘들다. 지역사회 속에서 개인의 익명성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지역사회의 특징을 한마디로 축약하자면, “우리가 남이가~”, “우리끼리” 가 될 것이다. 특히 수도권과 비수도권은 이런 차이가 극명하다.

증심사에 오기 전, 용암사라는 화순의 한적한 절에 있었다. 부임한 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절 아래 마을 분들이 가장 궁금해한 것은 ‘내가 언제까지 용암사에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용암사가 있는 화순군 한천면은 말 그대로 시골이다. 그곳에 정착된 삶의 방식은 전형적인 정주형이다. 아마도 그분들은 나 역시 자신들처럼 지역사회의 일원으로 살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지역의 신도 분들이나 불교 활동가들이 스님들을 대하는 고정된 생각 중의 하나 역시 “스님들은 언제 떠날지 모른다”는 것이다.

요즘은 스님들도 어떻게든 자리를 잡으려고, 어딘가에 속하려고 애를 쓴다. 승가라는 커뮤니티가 쓸 만한 바람막이가 되지 못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반 사회도 마찬가지지만 삶에 대한 기대 수준이 현격하게 높아진 것이 아무래도 가장 큰 이유다. 달랑 숟가락 두개 놓고 시작하는 신혼부부는 요즘 세상 그 어디에도 없다. 승가 사회도 이런 추세에서 그다지 자유롭지 못하다. 게다가 각박해진 세상 인심의 여파로 절집 인심도 예전 같지 않다. 예전처럼 아무 절이나 가서 하룻밤 신세지는 것은 이젠 꿈도 못 꾸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걸망 하나 메고 바람처럼 구름처럼 살려고 해도 핸드폰은 기본이고 교통비, 숙박비 등 비용이 엄청나다. 이런저런 눈치 보기 싫으면 낡은 중고차라도 마련해서 끌고 다녀야 한다. 좋게 말하자면, 개별 스님들에 대한 종단의 배려, 나쁘게 말하면 통제가 날이 갈수록 커지는 근본적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사회는 개인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현대의 노마드족은 말하자면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간 놀이공원 안에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신나게 노는 아이와 같다. 대도시의 휘황찬란한 거리는 끊임없이 욕망을 소비하도록 부추긴다. 소비하자면 그만큼 벌어야 하는 법. 이 모든 것은 현대인의 욕망이 만들어낸 산물이니, 현대의 노마드족은 욕망의 감옥 속에서 방황하고 있다. 물론 외형적으로는 일인 가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사회가 고도화될수록 어딘가에 기대지 않고 홀로 살아가기는 결코 쉽지 않다. 다만 그곳이 가정이나 마을이 아니라 거대한 메가시티로 바뀌었을 뿐이다.

인생은 여행이라고 말하지만, 인생에 목적지 같은 것은 없기 때문에 인생은 여행이기보다 방랑이다. 진정한 방랑자가 되려면 몸도 마음도 가벼워야 한다. 이것저것 가진 것이 많으면 몸을 가볍게 움직이기 힘들다. 가벼운 몸은 물질적 소유로부터 자유로워야 가능하다. 마음이 가벼우려면 애착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 애착의 무게, 정이라는 이름의 집착 때문에 마음이 무거우면 자유롭게 움직이기 힘들다. 겉으로는 나무처럼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더라도 몸도 마음도 가볍다면 그가 진정한 노마드족이다.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그램은 여전히 장수 프로그램으로 부동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리는 방랑자의 삶조차 욕망으로 소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방랑자야말로 삶의 본질에 충실한 모습인데 어찌하여 우리는 갈수록 몸도 마음도 무거워져만 가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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