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유(所有)와 공물(公物)
2021년 01월 08일(금) 07:00

김원명 광주원음방송 교무

최근 부도덕하고 공정하지 못한 공직자들의 재산 축적이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무전유죄’(無錢有罪)의 세상이 갑자기 ‘유전유죄’(有錢有罪)의 세상으로 바뀌는 듯한 분위기다. 이 같은 국민적 공분을 보면서 만약 각 종교 단체나 교직자(성직자)들의 재산을 공개하게 된다면 어찌될까 하는 상상을 해 본다. 그러다가 “너희가 나중에 부정한 공물로 사리사욕으로 생활을 한다면 나중에 생을 마감할 때는 위패에서 진땀이 흐르리라”하셨다는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대종사(박중빈 1891~1943)의 말씀이 떠올라 상상을 거두어 버리게 된다.

빚을 내서 주식을 하고 부동산 시장에 눈을 돌려 일단 사고 보자는 식의 투기성 경제에 눈을 돌리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자본주의의 모순이 극대화되면서, 그리고 1년 가까이 이어지는 코로나19로 인하여 성실과 신용을 통한 이윤 추구나 근검저축에 기초한 경제 성장이 기대하기 어려워졌기 때문일 것이다. 특별한 도덕군자나 경제적 무능력자가 아니고서는 증권이나 부동산에 관심이 가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도 생각해 본다.

이러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다른 사람의 그릇된 일을 견문하여 자기의 그름은 깨칠지언정 그 그름을 드러내지 말라” 하신 대종사님의 가르침이나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사람이 먼저 쳐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 문제의 공직자들을 변호하거나 관용을 베풀자는 뜻은 결코 아니다. 다만 국민적 공분의 결과가 정치인이나 공직자 몇 사람을 단죄하는 것으로 수그러지는 일과성 한풀이나 통치 수단의 일환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말하고자 함이다.

한편에선 부정부패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사람들마저 “어찌 우리들뿐이며, 어제오늘의 일이냐”고 운이 없고 재수가 없어서 걸렸다며 억울해 하기도 한다. 이는 염치도 부끄러움도 모르는 사람들의 행태이지만, 그만큼 부패가 보편화된 관행이요 뿌리가 깊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솔직히 종교 단체마저도 스스로의 결백을 주장할 수는 없으리라 짐작될 만큼 총체적으로 부조리가 만연된 상황에서 구조적 청산이 없는 몇 사람의 단죄가 일벌백계의 효과를 낼 것이란 기대는 착각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형편을 생각할 때 지금 일고 있는 개혁의 바람이 정치적 계산이나 지도자의 영단에서 행해지는 개혁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양심적이고 정당한 요구이며 이 또한 하늘이 시킨 일임을 깨달았으면 한다. 그리하여 거기에 성실히 응답하려는 자세로 온 나라가 합심하여 건강한 사회를 기필코 만들고자 하는 줄기찬 노력으로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이러한 일을 위해서는 국민의 정신적 지도를 자임하는 종교가 앞장서 바람직한 사회 윤리를 제시하고, 실천하며 그 본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종교가 그 역할을 하지 못함을 안타까워하고 도리어 걱정하는 수준까지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건강한 종교인은 신앙을 가진 정치가·기업인·지도자들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부처님께 불공을 드리고, 법신불께 보은을 하는 신앙 운동의 일환으로 경제 정의를 실천하는 데 앞장서야 할 때라 생각한다. 대종사님이 제자들과 저축조합을 형성하고 간척 공사를 하고 중앙 총부를 만들면서서 일관되게 보여줬던 것이 영육쌍전(靈肉雙全)의 이념과 근검저축의 생활 정신, 이소성대(以小成大)와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 등은 원불교의 생활 정신이고 이는 어느 사회에서나 통용되는 바람직한 경제 윤리라 할 수 있다.

소유 자체는 죄악일 수 없다. 소유를 위한 활동 자체는 칭찬받을 만하다. 다만 그 과정이 근검과 저축의 정신 속에 자리이타로써 이루어져야 하며 이렇게 성취한 부라 하더라도 사은(四恩)의 공물(公物)임을 알아 공익의 보람으로 환원시킬 수 있는 정신을 가져야 한다.

국민적 공분이 부패 관행을 씻어내는 정의의 강물이 되고 건강 사회를 이루는 계기가 되도록 올해는 종교인들 먼저 솔선수범과 올바른 실천에 나서길 희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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