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일의 ‘밥먹고 합시다’] 똑같은 장, 똑같은 김치
2020년 11월 19일(목) 14:00
예전에는 식당이나 집집마다 장맛, 김치 맛 심지어 초 맛도 다 달랐다. 친구네 집에 가도 음식 미각이 다른 건 장 때문이었다. 된장도 띄울 때 붙는 균과 효모가 집마다 다른 형태였다. 과학적으로 당연한 거였다. 술 담그던 시절에는 술맛이 크게 달랐다. 그러니 같은 콩으로도 장맛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예전(예전이라면 언제냐고 물으시겠는데 이게 참 애매하다. 70년대에도 담그는 집은 담가도, 사 쓰는 집은 또 사 썼으니까)에는 식당에서도 장을 담그고, 김장도 당연히 했다. 은퇴 요리사들을 인터뷰해 보면 그 큰 행사를 지휘하던 일을 필생의 자랑으로 여긴다. 이를테면, 배추 2천 포기며, 무 1천 개 같은 단위들. 물론 식당에서 장 담그는 일은 점점 드물어졌다.

우리 민족은 수천 년 장을 담가 먹었다. 현대사의 아픔도 장에 새겨져 있다. 일제강점기 후반기에는 장 재료를 모두 군용으로 동원해 갔기 때문에 담가 먹을 장이 없었다. 일본은 고속으로 발효시킨 장을 군용으로 전투식량화하여 남방과 중국 전선으로 날랐다. 곡물에 장만 있으면 식사를 할 수 있는 게 아시아의 군인이었으니까. 물론 대다수는 미군 함선과 잠수함의 공격으로 정작 남방의 군인들에게 전달해 보지도 못한 채 태평양에 수장되었다. 고기들만 장맛을 보았을 게다.

전쟁이 끝났다. 일본은 패망하여 물러갔다. 해방 후 조선반도(당시까지는 한반도라고 부르지 않았다)는 기아가 휩쓸고 지나갔다. 일제 말기, 농사는 엉망이었다. 장을 못 담근 집이 부지기수였다. 한민족의 식사에서 장이 없다는 건 식사의 존재가 없다는 뜻이다. 이때 일본의 적산 시설을 불하받은 이들이 장을 만들어 시중에 팔았다. 장 잘 다루는 주한 화교들도 이 시장에서 꽤 재미를 보았다. 여담인데, 짜장면 소스로 제일 유명했던 ‘영화장유’가 된장과 간장을 만들어 팔던 회사라는 걸 아는 이는 드물다. 하기야 짜장도 된장의 일종이긴 하다.

당시 우리 선조들은 피란 가느라 장을 못 담갔고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장은 1년이라는 시간 단위를 가진 요리의 일종이었기 때문이다. 요리의 핵심이 없으니 무슨 음식 맛이 있었겠는가. 특히 이북에서 온 피란민은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은 이남에 기반이 없었고, 당연히 장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설사 이북에서 담근 장이 있더라도 가지고 올 수 없었다. 운반 수단은 항아리가 기본인데 그 무거운 걸 들고 피란길을 걸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남한에 일가붙이가 있길 하나, 돈이 있어서 사 먹을 수가 있나. 그들의 고난은 매우 컸다. 그래서 그때 적산 불하나 가내공장에서 만든 속성 장이 시중에서 아주 잘 팔렸다고 한다. 현재 국내 굴지의 간장·된장 회사들은 다수가 이때 기반을 닦았다.

지금은 온갖 양념과 소스가 세상을 지배하지만, 그 시절엔 3가지 기본 장 말고 음식 맛을 낼 방법이 없었다. 이런 가운데 정부의 기본 정책도 희한하게 작동했다. 60년대 초쯤 아파트를 공급하기 시작하는데, 베란다에 내놓은 장 항아리가 영 불안했던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아파트가 와르르 무너지는 사고가 서울에서 일어나기도 했다. 바로 70년도의 와우아파트 붕괴 사고였다. 물론 여전히 90년대에도 백화점과 한강 다리가 속절없이 무너진 나라가 우리나라였지만.

나라를 병영으로 보고, 총력전을 펼치려고 했던 당시 정부는 국민의 생활 곳곳에 참견했다. 장 안 담그기 운동, 담그더라도 전통 장이 아니라 속성 개량 장 담그기가 현대 시민의 덕목으로 칭송받았다. 인구가 늘고 산업이 성장했다. 된장·간장 공장이 밤새 조업해서 장을 납품했다. 이제 조선 장은 시골에서나 만드는 것이 됐다. 아니러니하게도, 한국의 맛은 결국 장이라는 걸 알고 다시 사람들이 장을 담그기 시작한 것이 90년대의 일이다. 이때 토속 된장을 담근 업자들은 큰돈을 벌었다.

공장의 장은 식당 밥맛의 차별성을 줄였다. 그 집이나 이 집이나 비슷한 장을 써서 일어난 일이었다. 90년대에 직장 생활을 할 때 입맛 까다로운 선배들이 식당에 데려가서 근엄하게 하는 말이 있었다. “이 집은 장을 다 담가 써.” 참, 별 것 아니었던 일이 별것이 되는 세상이 왔던 것이다.

요즘 검색창에 무슨 요리 이름을 치면 황금 레시피란 말이 자동으로 따라붙는다. 천편일률적인 조리법이 검색 결과를 죄다 차지하고, 유튜브에선 업소용 레시피 가르쳐 준다는 파워 유튜버가 최고 인기다. 당장은 입에 척척 붙지 않아도, 두 술 세 술 뜨면서 온몸에 깊게 감기는 맛이 있는 우리네 장맛은 다 어디로 간 걸까. 똑같은 공장에서 만드는 장과 김치와 소스를 공유하는 프랜차이즈 업체가 외식업계를 장악했으니, 맛의 표준화에 드라이브가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집집마다 다른 음식 맛을 보기에는 이제 그른 듯하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우리 입이 차분하게 그런 맛을 기다려주지 않으니 말이다. 야박하다. 참, 힘든 세상이다.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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