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뉴딜’ 광주·전남 미래 좌우한다
2020년 10월 28일(수) 01:00
절호의 기회 살릴 수 있도록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로

임 동 욱 선임기자 겸 서울취재본부장

‘거목’(巨木)의 영면(永眠)은 한 시대가 저물었음을 깨닫게 한다. 지난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삼성전자를 세계 최고의 초일류 기업으로 일궈낸 성공의 이면에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정경유착, 무노조 경영 등 어두운 부분도 있지만, 그가 한국 경제를 주도했던 인물이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다. 그가 이룬 ‘신화’는 기술 경쟁력을 기반으로 하는 미래 비전에서 출발했다.

1970년대 중반만 해도 한국에서의 반도체 사업은 사업성 자체가 의심받을 정도로 성공 여부가 불투명했다. 하지만 그는 주변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과감한 도전에 나서 비전을 현실화했고, 결국 삼성전자는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었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지난 1972년 사진 한 장 달랑 들고 간 영국에서 차관을 들여와, 미포만의 모래사장에 조선소를 건립한 것과 종종 비교되기도 한다.

이 회장은 시대의 고비마다 적절한 메시지를 던졌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 경제와 사회의 변화를 이끄는 촉매제 역할을 했다. “마누리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야 한다.”(1993년), “정치는 4류, 행정은 3류, 기업은 2류 수준이다.”(1995년), “10년 내에 삼성을 대표하는 사업은 대부분 사라진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2010년), “도전과 혁신, 자율과 창의가 살아 숨 쉬는 창조 경영을 완성해야 한다.”(2013년) 이 같은 이 회장의 어록에는 위기 상황을 선제적으로 진단하고 과감한 변화와 적극적 대응을 통해 새로운 기회로 만들어 가는 혁신적 리더십이 담겨 있다. 삼성이 왜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게 해 주는 대목이다.

이 회장의 선제적 위기 진단과 명확한 메시지를 통한 비전 제시는 우리 광주·전남 지역에도 깊은 울림을 던진다. 정치·경제·행정 등 대부분의 분야에서 좀처럼 미래 활로가 보이지 않고 있는 광주·전남의 상황이 간단치 않기 때문이다. 당장 지역 민심은 지난 총선에서 세력 및 세대교체를 단행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전체 18명의 국회의원 가운데 초·재선이 17명으로 대부분을 차지, 지역 정치권이 시대의 중심에 서서 미래를 이끌기는 쉽지 않다.

결국 과감한 도전과 적극적 응전을 통해 정치적 역량을 키우고 결집과 연대를 통해 미래 비전을 찾아야 한다. 지역을 넘어선 시대적 어젠다를 선점해야 한다. 또 차기 대선에서 정권 재창출의 핵심 역할을 하고, 지방선거에서도 과감한 인재 발굴을 통해 변화를 주도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야 정치적 리더 배출과 함께 호남이 다시 민주 진영의 심장으로 뛸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시대와 미래에 대한 각성과 강력한 연대가 요구된다.

정치권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우선 광역단체장인 이용섭 광주시장과 김영록 전남 지사가 앞장서야 한다.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행정 통합과 군 공항 이전 등 지역 현안에 대한 통 큰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소모적 논쟁을 정리하고 미래의 길을 내야 한다. 상생의 틀에서 미래 동력을 마련해야 한다.

이대로 간다면 호남은 영남에 이어 충청에도 뒤처질 수밖에 없다. 끝내 시대의 변방으로 밀려나고 말 것이다. 이 시장과 김 지사는 관료 출신의 한계를 거론하는 목소리를 아프게 들어야 한다. 시대와 소통하는 미래 지향적 리더십으로 공직사회에 활력을 불어넣고 지역사회 전반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

여기에서 지자체가 관심을 갖고 들여다볼 대목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한국판 뉴딜 사업이다. 이 사업은 광주·전남의 미래를 담보할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2025년까지 예산만 160조 원이다. 특히 지역 균형 뉴딜 분야에는 전체의 절반가량인 75조 3000억 원이 투입된다. 그러니 광주·전남으로서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수 없다. 수도권 등 타 지역에 비해 경제적으로 훨씬 낙후됐다는 점은 오히려 유리한 조건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디지털 뉴딜은 광주에, 그린 뉴딜은 전남 지역에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정치적 환경도 나쁘지 않다. 호남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애정은 그동안 이미 증명되어 왔다. 게다가 여당의 이낙연 대표(영광)와 김태년 원내대표(순천)는 지역 출신이다. 차기 대선을 앞두고 호남 민심에 대한 정치적 비중도 커지고 있다. 단순한 예산 확보 차원을 넘어 지역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그랜드 비전을 만들어 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치권과 지자체를 넘어 산·학·연이 함께 머리를 맞대고 지역 역량을 결집시켜야 한다. 과거 국민의정부 시절,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낙후된 호남의 발전을 위해 뭔가 밀어주려 해도 지역에서 제대로 된 ‘그림’(사업 계획)을 가져오지 못한다”고 탄식했던 그 전철을 또다시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이제 국정감사가 마무리되고 본격적인 예산 전쟁이 시작됐다. 시간은 많지 않고 기회는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지역 역량의 결집이 지역의 미래를 좌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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