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마음
2020년 09월 04일(금) 00:00

황성호 신부·광주가톨릭 사회복지회 부국장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예수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묻자, 그 어머니는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라고 청한다. 예수는 그 어머니의 말을 듣고 그 오른쪽과 왼쪽에 앉을 권한은 아버지 하느님께 있다고 말씀하신다. 예수의 다른 제자들이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기자, 예수는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된다. 너희 가운데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일화는 마태오 복음 20장 20절에서 27절까지의 말씀으로, 하느님의 사람은 세상의 기준으로 높고 낮음으로 평가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을 낮추는 사람, 형제와 이웃을 위해 스스로 종이 되어야 하는 존재라는 것을 일깨워 준다.

우리는 누군가의 밑에 있기보다는 위에 있고 싶은 마음이 강하다. 왜냐하면 누군가의 위에 있다고 생각하면 괜히 우쭐해지고 뭔가 있어 보이는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위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책임은 조직의 평가와 통제가 아닌 상생으로 이끄는 힘이다.

최근 필자는 ‘조직에는 보스가 아니라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말을 들었다. 위계적인 관계의 시대는 이미 끝났다. 그리고 지금의 시대는 서로가 수평적으로 동반하는 상생의 관계를 원하는 시대이며 이것이 지금 우리의 현실이다. 이러한 관계성은 사람들로 구성된 조직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없어서는 안 될 근본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그 관계성으로 조직을 운영하기가 어려운가 보다. 이는 첫 시작의 순수한 마음에서 빗나가 다른 마음이 존재하기 때문이 아닐까.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다른 마음은 남들 위해 군림하려 하고, 남들보다 더 소유하려 하고, 더 높고 더 나은 것을 추구하려는 것이다. 그러니 뒤쳐지는 것이 죽기보다 싫어 서로 엎치락뒤치락 앞서려고 하는 것이다. 그 마음은 사람이 자리할 수 없다. 그래서 생명까지도 경시되는 것이다. 그러니 경직되어 있고 즐겁지 않으며 항상 불안하고 두려운 것이 아닐까.

정치인, 조직의 지도자, 종교의 성직자들은 자신에게 큰 책임이 주어졌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들의 말 한마디와 행동이 좋은 영향력을 줄 수 있음과 동시에 큰 파장을 일으켜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도 망각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코로나가 전국적으로 확산되면서 다시 책임 있는 이들을 향하는 국민들의 시선이 곱지 않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이 책임자들의 첫 마음이 사라져 버렸고, 또 다른 마음이 자리하고 있음을 국민들이 알아 버렸기 때문이다. 안식일 법을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이유 때문에 생명을 경시했던 유대인들, 이를 꼬집었던 예수의 시선이 지금 국민들의 시선인 것이다. ‘국민들을 위해 이 한 몸 바치겠습니다’ 했던 정치인들의 행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살아가 봅시다’ 했던 조직 지도자들의 비리, ‘양들을 보살피기 위해 이 한 몸 사랑과 희생으로 살겠다’ 했던 성직자들의 비겁하고 추악한 탐욕을 이제 국민들은 알게 된 것이다.

다시금 예수의 말씀을 되새겨 본다. “너희 가운데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이 마음을 벗어나 또 다른 마음을 지녔거나 가지려고 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본질을 처참하게 짓밟는 것과 뭐가 다르겠는가?

예수의 마음은 처음과 같이 이제와 영원히 같으셨다. 그 마음을 살아가려면 예수의 다음 말씀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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