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 방납, 휘종 말년에 난 일으켜 북송 멸망 앞당겨
2020년 05월 19일(화) 00:00

<초당대총장>

방납(方臘, 1048~1121)은 현 절강성 항주시 춘안에 해당하는 목주 청계현 출신이다. 북송 휘종 말년 난을 일으켜 사실상 북송 왕조의 멸망을 초래했다.

방납은 절강 청계 지방에서 옻을 기르는 칠원(漆園)을 경영했다. 북송의 마지막 황제 휘종은 강남의 예술문화, 진기한 물품을 사랑했다. 휘종의 사치를 충족키 위해 항주 등에 궁정의 기물을 제조하는 조작국(造作局)을 설치했다. 조작국은 방납의 칠원에서 강제로 옻을 징발했다. 방납은 끽채사마(喫菜事魔)로 채식주의자였으며 마귀를 섬기는 교단의 수령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지하로 잠적한 마니교도의 일원으로 알려졌다. 이 교단은 육류를 먹지 않고 해와 달을 섬기고 평등사상을 신봉했다. 인생은 고통이며 사람을 죽이는 것이 고통을 구제하는 일로 이를 도인(度人)이라고 한다. 1120년 10월 목주 청계현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소주 출신의 주면은 화석강(花石綱)이라는 어용선단을 만들어 서화나 사치성 물품 등을 운하를 통해 개봉으로 실어 날랐다. 강남의 진귀한 돌, 나무, 기이한 암석 등을 운송하는데 많은 백성이 동원되어 원성이 하늘을 찔렀다.

1120년 12월 반란군은 안휘성의 흠주와 선주 등을 점령했고 항주 공략에 성공했다. 종교집단에 일반 백성이 가담해 세가 커진 전형적인 민란이었다. 휘종도 반란의 배경에 조작국과 화석강의 전횡이 있었음을 인지하고 이를 폐지했다. 한편으로 토벌군을 조성해 난 진압에 나섰다. 항주 함락으로 기세가 오른 방납은 스스로 성공(聖公)으로 지칭하고 영락(永樂)이라는 연호를 사용했다. 환관 영추밀원사 동관을 총사령관으로 15만 대군을 징집해 방납 토벌에 나섰다. 토벌군은 항주를 회복한 후 2월 선주와 흠주를 탈환하고 4월 목주 청계현을 공격해 방납을 포로로 잡았다. 방납의 난이 완전히 평정된 것은 1122년 4월이었다. 방납의 난은 6주 52현에 걸쳐 450여일간 진행되었다. 부정을 일삼은 관리와 부호를 다수 처형했다.

방납의 난은 북송 황조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첫째로 난의 중심지인 절강, 강소는 북송의 주요 재원 조달지였다. 강북은 식량과 재화를 상당 부분 강남 지방에 의존했는데 난이 확대되면서 재정에 커다란 손실이 발생했다. 이들 지역이 납세 능력을 상실함에 따라 면세와 구휼 조치가 불가피해 어려움을 가중시켰다.

둘째로 진압에 동원된 15만 대군은 북상을 목적으로 한 군대였는데 부득이 남하시킨 것이다. 여진과 결맹해 요나라에 빼앗긴 연운 16주를 회복하기 위한 북방 작전에 동원하기 위한 병력을 부득이 이끌고 남하하였다. 이에 따라 여진과의 교섭은 없던 일이 되었다. 개봉에 들어온 여진의 외교사절은 1년 가까이 세월만 보내다가 고국으로 돌아갔다. 여진은 요나라와 송에 대한 군사작전에 들어갔고 결국 수년후 북송은 수도 개봉이 함락되는 비운을 겪게 되었다.

방납의 난은 100만 이상이 반군에 참여할 정도로 대규모 난이었다. 봉기 개시 열흘만에 10만여명이 모이는 등 혁명의 열기가 대단했다. 그러나 군사 작전의 경험이 없고 유능한 지휘관이 부족해 정예의 관군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진압군은 부역한 백성 300여만명을 가혹히 처벌했다. 민심이 크게 이반되었다. 관료적 위계질서와 군주에 대한 존왕을 강조하는 정주학적 이데올로기가 강화되었다. 금나라의 개봉 공격에 이강 등이 강력히 저항하고 호국의 기치를 높인 것은 이러한 지배 이념의 강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방납의 난은 진압되었지만 북송 왕조에 대항한 반란이 뒤를 이었다. 1126년 엄주 수안현에서 일어난 예종경의 난, 1130년 호남성 정주의 종상이 일으킨 난 등이 대표적이다. 종상은 스스로를 초왕으로 칭하고 천전이라는 연호를 채택했다. 나라의 법은 귀천과 빈부를 엄격히 구분하지만 자신이 법을 시행하면 귀천을 평등히 하고 빈부를 균등케 하겠다는 평등사상을 전면에 내세웠다. 충의민병(忠義民兵)이라 불리는 반군은 관군을 괴롭혔다. 이러한 일련의 난으로 조정은 통치력을 상실했고 북방 군사, 외교작전의 실패로 왕조는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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