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향 초대석] 최태지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후배들에 제가 가진 재능 조금이나마 나눠주고 싶었죠”
국립발레단 프리마 돈나 거쳐
12년간 국립발레단 단장 맡아
2017년 시립발레단 수장 취임
공연수당 등급제 등 체질 개선 중
단원들 창작에너지 넘쳐 지원 기대
지난해 ‘대한민국 예술원상’ 수상
2020년 03월 24일(화) 00:00
국립발레단 프리마 돈나 출신으로 37세에 국립발레단 수장에 올라 무려 12년간 단체를 이끈 명실상부 ‘대한민국 발레계의 대명사’ 최태지(61). 그녀는 지난 2017년 광주시립발레단의 새로운 수장으로 취임, 새바람을 일으켰다. 올 초 연임이 결정돼 2년 더 발레단을 이끌게 된 최태지 예술감독을 만났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이라면 친화력에 놀란다. 어릴 적부터 주변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게 훨씬 즐거웠고, 썰렁한 분위기가 싫어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하는 그녀에게 사람들이 “코미디언이 되면 어떻겠냐”고 했다니 말 다했다. 그래서 그녀와는 대화는 유쾌하다. 발레단 연습실에서는 ‘또 다른 최태지’를 만났다. “연습실에서는 호랑이 선생님”이라는 그녀의 말처럼 카리스마 있는 모습으로 단원들을 지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유리 그리고비치가 안무했던 국립발레단 1987년 작 ‘백조의 호수’에서 흑조로 열연중인 최태지 감독.
최 감독은 일본 교토 외곽 도시 무학에서 태어났다. ‘무학’(舞鶴)은 ‘춤추는 학’이라는 뜻. 어쩌면 꼬마 ‘최태지’가 9살에 무용을 시작한 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대학 졸업 후 일본 문화청 국비장학생에 선정이라는 기회가 왔지만 일본 국적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혜택을 받지 못한 그녀는 부모님 도움을 받아 프랑스로 자비 유학을 떠났다. 귀국 후 국립발레단의 문을 두드렸고 ‘백조의 호수’ 등 수많은 작품에 주역으로 출연했다. 결혼과 두 아이 출산 등으로 발레단을 떠났던 그녀는 아이 낳고 단원이 된 프리마 발레리나 1호로 다시 무대에 섰고 지도위원을 거쳐 1996년 단장이 됐다.

‘젊은 단장’은 관객에게 최대한 많은 작품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고, 그 시작이 ‘해설이 있는 발레’였다. 한명의 관객이라도 더 끌어오기 위해, 제작비 확보를 위해 CEO들을 숱하게 만났고 마케팅 등에도 힘을 쏟았다. 물론 가장 기본인 ‘작품 제작’에는 더 철두철미하게 임했다. 볼쇼이극장의 유리 그리고로비치 안무와 무대 세트 등이 어우러진 ‘백조의 호수’, ‘스파르타쿠스’ 등 ‘국립발레단 레퍼토리’를 확립했다.

광주시립발레단 예술감독 취임은 그에게 또 한번의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이제 우리 세대가 물러나고 후배들이 해야할 시점이라 고사했어요. 그런데 단원들이 투표를 했고, 물론 전체가 다 찬성한 것은 아니겠지만 많은 단원들이 와 주면 좋겠다고 하니 마음이 움직이더군요. 후배들에게 제가 가지고 있는 것을 조금이라고 나누어주고 또 그들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취임 초기에는 조바심을 갖지 않으려 애쓰며 시스템을 구축하고 단원들의 복지 등에 관심을 쏟았다. 성과가 더디게 나타나기는 했지만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모습에 힘이 났다. 그녀의 색깔이 제대로 들어간 작품은 2018년 작 ‘백조의 호수’로 국립이 올렸던 유리 버전이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객석은 관객들로 가득찼고, 환호가 쏟아졌다. 스타일을 바꾼 ‘호두까기 인형’, ‘라 실피드’, ‘해설이 있는 발레’ 등 이후 발레단의 공연은 시민들이 가장 기다리는 무대가 됐다. 시립발레단은 현재 체질 개선중이다. 렌트해 입던 의상을 정식 제작하기 시작하고 댄스 플로어 등도 구비했다. 공연수당 등급제가 실시됐고 아직 멀었지만 제작비도 2배 정도 올랐다. 또 한켤레에 12만원씩하는 토슈즈도 지급하게 됐고 신입단원도 실력이 있으면 바로 수석으로 승진할 수 있도록 했다.

“우리만의 레퍼토리를 갖도록 노력해야해요. 예술의 전당에 좋은 작품 보러가는 것처럼 애호가들이 광주에 와서 작품을 보게 해야죠. 그러려면 무용수 실력도 중요하지만 연출, 의상, 무대세트, 조명 등 모든 게 어우러진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합니다.”

광주시립발레단 연습실에서 단원들을 지도하고 있는 최태지 예술감독. /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최 감독 취임 후 공연횟수가 늘고, 출연진 구성도 다양해졌다. “무용가는 연습실이 아닌, 무대에서 살아야한다. 좀 더 많은 무용수에게 기회를 주자”는 건 최 감독이 국립시절부터 고수해온 정책이다.

“다양한 무용수를 무대에 세워 긴장하며 준비하도록 하는 게 필요해요. 우리 발레단에서도 여러 커플을 주역으로 세우려 해요. ‘해설이 있는 발레’가 인기 프로그램인데 다양한 무용수를 보며 관객들도 좋하하지만 무용수 자신들도 서로를 견줘보며 선의의 경쟁을 하게됩니다. 제가 하고 싶은 레퍼토리가 아닌, 단원들을 키울 수 있는 작품을 하려 해요. 어떤 배역을 주면 업그레이드가될까 고민하죠.”

최 감독은 연습실에서는 엄격하지만, 공연 후에는 실수에 대해 별 말을 하지 않는다. 가장 괴로운 건 무용수고, 그 무대에 서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역으로 무대에 섰던 최감독은 무엇보다 ‘앙상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우리 단원들도 학교 다닐 때 모두 최고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친구들이예요. 다 주역이 되고 싶지만 여건은 그렇지 못하죠. 전 발레단의 꽃은 군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은 주역의 테크닉에 감동하기도 하지만 수많은 발레리나가 마치 한사람처럼 움직일 때 큰 감동을 받아요. 무대 인사할 때 주역 무용수가 꼭 군무진에게 인사를 하게합니다. 당신들 덕분에 내가 춤을 잘 출 수 있었다는 감사의 인사죠.”

최 감독은 공연 때면 객석 뒷자리에서 관객들의 반응을 살피며 무대를 본다. 본인 표현에 따르면 “브라보를 외치고, 난리를 치며” 단원들을 응원한다. 가장 좋아하는 작품으로 ‘백조의 호수’를 꼽은 그녀는 아놀드 아당의 아름다운 음악이 어우러진 ‘지젤’을 해 보지 못하고 은퇴한 건 참 아쉽다고 했다.

최 감독은 지난해 최고 예술인에게 수여하는 ‘대한민국 예술원상’을 받았다. 그녀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문화부 ‘장한 어머니상’을 어머니가 수상한 지 딱 20년만이다. 그녀는 “엄마가 없었다면 내가 발레를, 삶을 어떻게 지속해왔을 지 모르겠다”며 “하늘에 계신 부모님이 한국에 가서 열심히 했구나. 광주에 가서 열심히 하고 있구나 말해주시는 것같다”고 했다.

첫 임기 2년은 발레단을 알아가고 단원들을 파악하며 주로 내부에서 활동했다면 올해는 발레단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 관련 행정 부서나 외부 관계자들을 적극적으로 만날 생각이다. 주변에서 ‘로비스트’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는 최 감독은 “토슈즈가 나온다면, 제작비를 지원해 준다면, 발레단에 도움을 준다면 누구에게라도 엎드릴 수 있다. 내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안된다”고 말했다. 최 감독은 또 “나야 임기 마치면 떠나지만 진정 발레단을 이끌어가는 이들은 단원들이니, 우리 단원들이 진정한 프로가 되면 좋겠다”고도 했다.

지난해 오랜만에 ‘호두까기 인형’을 보고 발레단의 변화에 적잖이 놀란 나는 연습실에서 작품 준비하는 모습을 보고 ‘최태지 감독과 50명 단원들’이 만들어갈 ‘광주시립발레단’의 미래가 더욱 궁금해졌다. 올해는 ‘잠자는 숲속의 미녀’와 5·18 40주년 기념작품, 인기 레퍼토리 ‘호두까기 인형’이 기다리고 있으며 ‘해설이 있는 발레’도 계속된다.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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