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2020년 03월 11일(수) 00:00
“어떤 서점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2년 전 ‘동네책방, 도시 아이콘이 되다’라는 기획으로 수십 여개의 국내외 서점을 둘러 본 덕분인지 종종 듣는 질문이다. 그럴 때면 여간 난감한게 아니다.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는 말 처럼, 온라인 서점에 밀려 하루 하루 힘겹게 버티고 있는 그들의 안타까운 현실이 떠올라서다.

그래도 굳이 하나를 꼽는 다면 런던 패딩턴역 주변의 ‘워드 온 더 워터’(Word on the water)다. 우리말로 ‘물위의 말’쯤 되는 이 서점은 9년 전 도심을 가로 지르는 리젠트 운하에 깜짝 등장했다. 젊은 시절 부터 독서광이었던 40대 중반의 영국 신사 세명이 1920년 제작된 15m 바지선을 구입해 ‘물위의 서점’을 띄웠다.

하지만 바지선 서점을 오픈하는 데 큰 돈은 들지 않았다. 자신들이 읽었던 헌책들을 ‘매대’에 내놓기로 한 데다 직접 망치를 들고 배를 수리했기 때문이다. 이들이 가장 신경 쓴 ‘공사’는 지붕 위 스테이지. 지역의 뮤지션이나 버스커들의 공연무대로 활용하기 위해 마이크를 설치하고 음향 시설을 갖췄다.

2011년 5월, 역사적인 ‘출항’에 나선 ‘워드 온 더 워터’는 ‘세상에 하나뿐인’ 독특한 컨셉으로 단박에 지역사회의 이슈가 됐다. 하지만 14km에 이르는 리젠트 운하를 무대로 ‘영업한’ ‘워드 온 더 워터’는 예상치 않은 불편을 겪어야 했다. 모든 선박들은 2주 마다 정박지를 이동해야 한다는 런던의 운하법에 따라 자주 옮겨야 하는 등 운영에 어려움이 많았다.

2년간 비슷한 상황이 이어지자 세 사람은 런던시의 허가를 받지 않고 지금의 자리에 2개월간 무단 정박을 감행했다. 이에 리젠트운하 관리회사는 막대한 벌금과 즉각 철거 등 법적 조치를 취했고 ‘워드 온 더 워터’는 폐점 위기에 몰렸다. 이런 안타까운 사실을 알게 된 런더너들과 ‘셀럽’들이 서점 구하기에 나서자 지난 2015년 운하관리회사는 마침내 ‘워드 온 더 워터’의 영구 정박을 허가했다. 자칫 추억속으로 사라질 뻔한 ‘워드 온 더 워터’는 시민들의 응원으로 런던의 문화쉼터가 됐다.

최근 전국 90여개 소규모 서점으로 구성된 동네책방네트워크가 ‘바이 북+ 바이 로컬’(Buy Book+Buy Local) 캠페인에 나섰다. 지역 농산물을 구매하는 로컬푸드 운동처럼, 동네서점에서 책을 구입하자는 ‘책방 살리기 프로젝트’다. 이번 캠페인이 내건 슬로건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걸음, 동네책방 가는 길’이다. 지역에서도 숨, 자음책방, 소년의 서, 순천 책방심다, 목포 퐁당퐁당 등 책방 11곳이 동참한다.

‘코로나 19’여파로 요즘 미술관이나 공연장이 임시휴관에 들어가면서 문화나들이가 올스톱됐다. 그렇다고 TV나 컴퓨터 게임 등으로 시간을 보낼 수만은 없을 터. 이럴 때, 내가 산 책 한권이 동네책방의 문을 계속 열게 하고, 동네경제에도 보탬이 되는 책방 마실을 떠나자. 나와 우리가 행복해지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로.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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