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 중의 인연
2019년 10월 18일(금) 04:50

[정세완 원불교 농성교당 교무]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 會者定離)라 했다. 생겨나는 것은 반드시 없어지고, 만나면 헤어짐이 있다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겪는 진리일 뿐 아니라 우주 안에 살고 있는 모든 생명체들이 받아들여야 할 만고불변의 이치이다.

우리는 세상을 살아가면서 만남이라는 관계 속에는 좋은 인연도 있고 나쁜 인연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인연을 만나느냐에 따라 내 인생이 수월할 수도 있고 어렵게 풀어 나가야 할 경우도 있다. 그래서 부처님은 법구경에서 “향을 싼 종이는 향 냄새가 나고 생선을 묶은 새끼줄에서는 비린내가 나듯, 어진 이를 가까이 하면 뜻이 높아지고 어리석은 자를 벗하면 재앙이 닥친다”고 하셨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인격이 주변 인연 따라 물들어 간다.

원불교의 2대 종법사인 정산 종사는 “복 중에는 인연 복이 제일이요 인연 중에는 불연(佛緣)이 제일이니라. 오복의 뿌리는 인연 복이니 부지런히 선근자와 친근하라”고 하였다. 부처님의 인연법은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此有故彼有), 이것이 생하므로 저것이 생한다(此生故彼生)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此無故彼無) 이것이 멸하므로 저것이 멸한다(此滅故彼滅)”라고 하였다.

인연은 독자적으로 성립하지 않는 것이다. 반드시 인은 연을 만나야 과를 형성하는 것이다. 씨앗을 뿌리지 않으면 열매를 맺을 수가 없다. 씨앗은 밭이라는 연을 만나야 비로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다.

왜 정산종사는 인연 중에서 불연(부처님 인연)이 제일이라고 말씀하셨을까? 부처님 인연은 상에 집착함이 없는 인연이다. 무엇을 바라지 않는 마음으로 맺는 인연이다. 무엇을 바라고 인연을 맺으면, 내가 바라는 것이 그 사람에게 없을 때 그 인연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래서 부처님 인연은 상에 집착하지 않는 공에 바탕한 인연이라고 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을 바라고 베풀지 않듯, 부처님은 중생들에게 주기만 하는 인연이다. 주면서도 바라지 않고 주는 것이다. 이 천지가 모든 생명을 살리는 비를 내리고 햇빛을 비쳐주면서 비쳐준다는 마음이 없이 주는 것이다. 만약 천지가 무엇을 바라고 햇빛을 비추고 비를 준다면 이 세상의 생명들은 온전한 생명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부처님과의 인연은 천지 같은 관계이다. 무심하면서 상없이 주는 인연 불연은 인연과(因緣果)를 뛰어넘는 만남이 된다.

친한 벗의 아버님은 나이가 칠십 중반이시다. 경찰 공무원으로 정년을 하셨는데 나이를 먹으니 술친구가 정말 진정한 친구라고 한다. 우리들이 생각할 때 젊은 자녀들에게 술친구를 사귈 때는 주의해서 사귀라고들 말을 하는데 의외의 말씀이었다.

그 이유를 물으니 나이를 먹으니 술을 사준다고 해도 친구들이 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죽마고우 아니면 함께 술을 마시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공자님께서는 술을 마시는 사람 중에 두 가지 부류가 있다고 했다. 한 부류는 술을 먹으면 남의 세정을 잘 알아주고, 이해심이 생겨나 상대의 허물을 잘 포용하는 사람이고, 또 한 종류는 술을 마시면 남에게 시비를 걸어 싸움으로 번지고 주위를 소란하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하셨다. 전자는 술을 마셔도 되는 사람이고 후자는 술을 끊어야 하는 부류라고 하셨다.

우리는 흔히들 술친구는 나쁘다고 말을 하는데, 술에 대한 인연은 술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술을 대하는 우리에 마음에 있음을 실감하게 하는 말씀이다.

불연은 인생의 짧은 만남이더라도 영생의 인연으로 이어간다. 시공을 초월한 만남이 된다. 영생의 인연이 되고 영생의 만남이 되려면 어떤 필요충분조건이 충족되어야 할까?

주역 문언전에서 그 답을 찾는다. “덕불고필유린(德不孤必有隣) 적선지가 필유여경(積善之家必有餘慶)” 덕이 있으면 외롭지 않고 반드시 이웃이 있으며, 덕을 쌓은 집안에는 경사가 넘친다. 기회가 있을 때 인연을 많이 맺어 두고 복은 지을 수 있을 때 많이 짓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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