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희 실학박물관 관장] 일본은 왜 패망했는가?
2019년 08월 20일(화) 04:50
제국 일본은 왜 패망했는가? 그것은 ‘근대의 부족’ 때문이다. 이게 무슨 소리인가? 우리에게 그토록 뿌리 깊게 근대화 콤플렉스를 심어 준 일본이 근대성이 부족했다니.

일본 도쿄대 법학부 정치학과 학생인 마루야마 마사오는 한참 논문을 쓰고 있었다. 1944년 7월 초 갑자기 그에게 군대 소집 영장이 날아왔다. 남은 기간은 겨우 일주일. 서둘러 논문을 마무리하고 있을 때, 그의 ‘출정’을 위해 일장기를 들고 이웃들이 찾아왔다. 어머니와 아내는 이웃에게 음식을 대접했다. 결혼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때였다. 논문은 전선으로 출발하는 그날 아침에야 신주쿠 역에 배웅 나온 동료에게 건네주었다.

마루야마는 신병 훈련을 받으러 머나먼 조선의 평양으로 향했다. 1944년 7월이란 시기는 살아 돌아올지 거의 기대할 수 없었던 절박한 시기였다. 일본이 오죽했으면 도쿄대 학생까지 전선에 투입했을까. 그는 논문을 ‘유서’처럼 남기고 떠났다고 회고했다.

그 논문을 비롯하여 이후 논문에서 계속된 그의 문제의식은 태평양전쟁의 개전과 패배 그리고 대일본제국 붕괴의 원인과 관련되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이 표면상 근대화를 이루면서도 실제로는 여전히 전근대적·봉건적 체질이 있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천황 주권의 총체인 이른바 ‘국체’라는 것이 절대 권위를 휘두르면서도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 설정이라는 것, 일본의 근대가 서구의 근대를 모델로 본떴는데도 서구의 근대와는 동떨어진 독특한 것이라는 게 그의 논지였다. 서구 근대 시민사회를 기준으로 했다는 점에 불만인 평가도 없지 않았다.

근대란 무엇인가? 근대는 시민혁명과 산업혁명의 소산이다. 봉건적 신분 질서를 종식시키고 상하 구별 없이 민족의 이름으로 구성원을 단결시켰으며, 공장제 기계 생산으로 생산성을 획기적으로 높였다. 공교롭게도 제2차 세계대전의 패전국 독일·이탈리아·일본은 모두 민족국가, 자본주의 국가로서는 후발 주자였다. 지도층의 각성과 위로부터의 노력으로 열심히 선진 국가를 따라잡는 데 성공한 듯했지만, 뭔가 빠졌다. 그것은 외부의 식민지가 아녔다. 내부의 변혁, 즉 시민혁명 내지 아래로부터의 변혁이 없었다. 그것은 근대가 누리는 외형적 물질이 아니었다. 근대를 지탱하는 내면적 정신이 결여되었다. 인권과 민주주의를 지킬 시민의 힘이 부족했다.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파시스트들이 권력을 장악했다.

독일은 바이마르 공화국이 비록 파시스트들에게 유린당했지만, 다행히 그 정신은 패전 이후 더 강한 민주주의의 기초가 되었다. 전쟁 중에 저지른 반인권 범죄에 관해서는 철저하게 사과하고 있다. 일본은 달라 보인다. 자민당이 장기집권하고 있다. 전쟁의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로 행세했다. 아베 정권은 어렵게 이뤄진 사과의 언행조차 물리며 과거로 회귀하려고 한다. 다시 전쟁하는 국가가 되고자 한다.

그런데 이제는 근대화란 것이 우리 세계의 지고의 가치는 아니다. 이미 근대화의 심각한 폐단을 경험했다. 민족과 국가의 이름으로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몰아넣었다. 유럽은 전쟁의 끔찍한 참화를 겪었다. 유럽의 통합은 그래서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필연적 노력이다. 비록 지금 흔들리기도 하지만 반드시 지켜 내야 할 평화의 길이다. 또한 과도한 공업화가 환경오염을 초래하여 지구의 안위를 심각하게 우려할 만한 상황에 이르렀다. 근대의 폐단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동북아에서 한편으론 여전히 근대성이 부족해 보이는데 다른 한편으로는 19세기 근대의 어리석음을 저지르려 한다. 위정자들이 걸핏하면 민족 감정을 일으켜 외부의 이슈로 내부적 의도를 관철하려 하고 있다. 일본의 한국 때리기도 그런 성격이 짙다. 그때도 그랬다. 이에 민족 감정으로만 대응하는 것은 과거 회귀를 일조할 수도 있어서 현명하지 않다. ‘노 재팬’이 아닌 ‘노 아베’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공감한다. 동북아의 평화를 위해, 건강한 공동체 의식과 함께 동북아 시민들의 섬세한 인권 의식과 연대 의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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