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근식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8월 6일의 히로시마를 생각하며
2019년 08월 06일(화) 04:50
지금으로부터 74년 전 여름, 히로시마는 인류 최초로 피폭 도시가 되었다. 1945년 8월6일의 일이다. 그해 연말까지 약 14만 명이 희생되었고, 그 후유증은 이루 말할 수도 없을 정도로 컸다. 이로부터 1년 후 일본은 이른바 평화 헌법을 갖게 되었고, 4년 후에는 히로시마가 국제평화문화도시를 선언하였다. 이후 많은 사람들이 평화공원을 방문하여 전쟁의 참상을 되새기고 있다. 2016년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 이곳을 방문한 이래 관람객이 날로 증가하고 있는데, 작년에는 약 150만 명이 이곳을 찾았으며 이 중 40만 명이 외국인이었다고 한다.

히로시마 평화공원의 운영자들이나 피스투어리즘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곳을 방문하는 한국인들의 반응을 상당히 궁금하게 여긴다. 한국인들은 다른 외국인들과는 달리 자신의 소감을 잘 말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곳을 방문한 한국인들은 매우 착잡한 심정을 가진다. 히로시마의 피폭을 침략국에게 내린 천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피폭자의 약 10%가 조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근래에는 대량살상무기 자체를 반대해야 한다는 의견이 한국인 사이에서 우세해지고 있다.

전후 일본 정치가 보수파와 진보파로 나뉘고 약간이나마 균형을 이루고 있을 때, ‘8월 6일의 히로시마’를 평화로 읽을 것인가, 천벌로 읽을 것인가, 치욕으로 읽을 것인가는 사회 저변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의제였다. 그러나 근래에 점증하고 있는 우익 내셔널리즘의 와중에서 이런 문제의식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고 있다. 최근 한일 간에 전개되고 있는 경제 전쟁을 보면서, 히로시마와 가까운 곳에 선거구를 두고 있는 아베 총리가 히로시마를 어떻게 기억하고 있을까를 묻는 것도 우문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한일 우호협력은 1993년의 고노 담화, 1995년의 무라야마 담화에 기초하여 발전할 수 있었다. 한데 아베의 이번 결정은 한일 간 우호 협력의 기초를 송두리째 부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일본 정부의 도발적 조치에 대응하여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나 일본 여행 자제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과거와는 달리 아베 총리의 속내가 무엇인가를 좀 더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종종 일본의 보수 우익 정치인들이 과거의 침략을 부인하는 ‘망언’을 통해 심사를 긁은 적은 있어도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 이래 50여 년간 지속되어 온 경제협력을 훼손하지는 않았는데, 이제는 노골적으로 한국을 잠재적 적으로 간주하는 정책을 취하기 시작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행보가 단순히 한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징용이나 일본군 위안부 논쟁과 같은 탈식민 프로젝트들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는 거의 대등해진 한국의 경제력에 타격을 입히기 위하여 근본적인 정책 전환을 하였다는 경제전쟁론이나 한반도 평화 체제 수립 과정에서의 일본의 영향력을 회복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론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커지고 있다. 더 나아가 헌법 개정에 필요한 외부로부터의 긴장을 조성하기 위하여 한국을 잠재적 적으로 설정한 것은 아닌가라는 의심까지 나오고 있다.

한일 관계는 역사적으로나 지정학적으로 우열이나 승패 프레임으로만 규정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 현재의 한일 관계가 어려울수록 우리가 꼭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과도한 경제적 의존을 극복할 수 있는 기술 개발, 평화라는 보편적 가치에 호소하는 외교, 그리고 일본 평화주의 시민사회와의 실질적 연대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우익 정치가들과 건강한 시민사회를 구별할 수 있는 혜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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