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2> 히말라야 산자락 층층이 계단식 논, 우리 다랭이 논 떠올라
2019년 05월 23일(목) 00:00
10부 ‘네팔’ (3) 뿌리 깊은 농경사회가 빚어낸 문화
대표작물 쌀·감자… ‘품앗이’‘두레’ 공동체 문화 중요시
풍년기원 4월 신년축제, 칠석동 ‘고싸움 놀이’와 흡사
평야 사람들의 넉넉한 인심, 호남인들과 비슷한 삶 엿보여
‘산은 선택한 사람만 받는다.’(네팔의 속담)

히말라야는 인간에게 자신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듯 거칠었다. 하지만 그 품을 넓었다. 하늘을 향해 높게 뻗은 산맥은 구름을 만들었고 부족함 없이 비를 뿌렸다. 연중 따스하고 포근한 날씨에 산줄기 끝 자락 넓게 펼쳐진 땅은 농사를 짓기 안성맞춤이었다.

산 민족 사람들의 생김새는 초원의 사람과 닮았지만 삶과 문화는 다르다. 생(生)을 위해 삶의 터전을 옮겨 다녀야 했던 초원의 사람들과 달리 네팔의 사람들은 논과 밭을 일구며 땅에 터전의 뿌리를 내렸다. 포근한 날씨와 적당한 비, 기름진 땅 위에서 누군가의 것을 빼앗기 위해 목숨을 걸고 험한 산줄기를 넘을 필요도 없었다. 농사를 업으로 사는 그들에게 누군가를 침략한다는 것은 농사를 짓기 위해 꼭 필요한 인력(人力), 즉 노동력을 잃는 행위나 다름없었다.

네팔은 뿌리 깊은 농경문화를 가지고 있다. 산과 농경사회가 만든 그들의 문화는 우리 한민족 것과 매우 흡사하다. 히말라야 산 민족이 살아가는 모습은 강원도 사람들과 닮았고, 분지와 평야 사람들의 삶과 넉넉한 인심은 우리 호남인들과 비슷했다.

네팔 포카라 거리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소떼들.
강원도가 고향인 사람들을 만나면 장난스레 ‘감자’라는 별명을 붙여주곤 한다. 산악지대인 강원도에서는 감자가 많이 나오며 그 맛도 뛰어나다고 알려져있다.

네팔도 마찬가지다. 히말라야 산자락에 사는 산 민족들은 산 중턱 경사진 비탈을 개간해 층층이 만든 계단식 논과 밭을 일궜다. 우리가 ‘다랭이논’이라고 부르는 것과 모습이나 용도가 같다. 그곳의 대표적인 작물이 감자다. 분지와 평야에서는 벼(쌀)을 재배하고 있다.

네팔의 설화 중에서도 농사와 관련이 깊은 이야기가 많다. 신은 처음 황금으로 사람을 만들었는데 신이 불러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은으로 만들고 쇠로도 만들었지만 모두 말을 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가마에서 나온 잿더미와 닭에서 떨어진 조각 따위로 사람을 만들자 그제서야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에 신은 역정을 냈다.

“망할 놈, 금이나 은으로 만들었을 땐 말이 없더니, 먼지와 더러움으로 만드니 입을 여는구나. 넌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처음의 분노가 사그라 들자 사람을 불쌍히 여긴 신은 사람을 살려낸 뒤 황소를 불러 “사람에게 날마다 한 끼만 먹으라고 전해줘라”라고 시켰다. 하지만 황소는 “하루에 세 끼를 먹어라”고 잘못 전달하고 말았다. 또다시 화가 난 신은 황소에게 말했다.

“넌 사람에게 돌아가서 먹이를 바쳐야 한다. 넌 사람을 위해 일하고 그가 하루 3끼를 충분히 먹을 수 있게 해줘라.”

이게 황소가 사람을 위해 평생 일을 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한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소가 된 게으름뱅이’ 같은 전래동화가 있다. 소는 농경사회에서 중요한 도구이자 재산이었다.

산간지역에 사는 주민이 집으로 걸어가고 있다.
아직까지 주생계를 농업으로 살아가는 네팔에는 우리 조상들의 옛 문화인 ‘품앗이’와 ‘두레’ 등과 비슷한 전통도 찾아볼 수 있다. 농사철에 접어들면 마을 주민들은 서로의 농사일을 도우며 살아간다. 손이 많이 가는 농사일은 혼자선 하기 힘들었고, 사람도 많이 필요했던 탓에 이웃들은 서로의 일을 도우며 살아왔다.

이처럼 농경 중심의 사회에서는 사람이 가장 중요한 자원이 아닐 수 없었다. 노동력을 의식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역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진다. 이웃과의 다툼과 불화는 곧 노동력을 잃는 것이고, 가족들의 생계와도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농사가 시작되기 전 풍년을 기원하고, 추수철 수확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에서도 ‘관계’를 찾아볼 수 있다. 농업사회가 만든 ‘공동체 의식’은 전통놀이와 축제에 고스란히 녹아있다.

네팔의 공식 달력인 비크람력으로 신년을 맞이하고 우기가 시작되는 4월에 열리는 신년축제의 모습은 광주시 남구 칠석동의 ‘고싸움놀이’와 흡사하다. 수 백명의 마을 주민들이 힘을 모으고, 때론 다른 마을과 경쟁하며 협동심과 공동체 의식을 강하게 다진다. 농악놀이와 길쌈놀이 등 우리 농경사회에서 태어난 전통놀이처럼 네팔의 축제, 전통놀이 역시 농경사회 속 노농력을 나누기 위해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하나의 장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네팔 포카라=박기웅 기자 pboxer@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