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구의 中國 인물 이야기 <182> 황소
농민반란 주도 당왕조 멸망 결정적 역할
2019년 05월 21일(화) 00:00

<초당대총장>

황소(黃巢, 820~884)는 산동성 조주 원구현에서 태어났다. 소금 밀매상 출신으로 농민반란을 주도해 당왕조 멸망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당말 각지에서 농민반란이 빈번이 일어났다. 의종때 일어난 구보의 난, 방훈의 난이 대표적이다. 산동성 출신의 소금 밀매상 왕선지(王仙芝)가 하남성에서 반란을 일으켰다. 황소도 그에 호응하여 궐기했다. 873년 12세에 불과한 이엄이 환관들에게 추대되어 희종으로 즉위했다. 자치통감에는 “황소는 젊어서 왕선지와 함께 사염(私鹽) 판매에 종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안사의 난 이후 당왕조는 재정을 소금 전매수익에 주로 의지했다. 궁중비용, 군비, 녹봉이 소금 수입에서 나왔다. 정부가 소금 판매로 독점 이익을 누리자 사염이 성행했다. 정부는 불법인 사염 판매를 엄중히 단속했다. 이에 반발해 사염업자의 저항도 격렬했다. 황소가 거병하자 참가자가 수천명으로 늘어났다. 하남 15주를 휩쓰는 동안 수만명으로 불었다. 거병할 즈음 메뚜기 피해가 심해 농촌이 황폐해졌다. 농민이 파산하고 도둑떼가 들끓었다. 이들이 반란에 참여하면서 대규모 농민반란으로 발전하였다.

878년 왕선지가 호북성 황매현에서 패사하자 황소가 반군의 지도자가 되었다. 호북성의 패배로 5만여명의 반군이 죽는 등 타격이 컸다. 반군은 하북의 번진 세력을 피해 멀리 광동성 광주까지 남하했다. 그러나 기후가 다르고 전염병이 창궐했다. 부하들의 권유에 따라 “북으로 귀환해 큰 일을 도모하리라”는 마음으로 북벌(北伐)을 결심했다. 양자강을 건넜으나 회남 번진에게 여러번 패배하는 등 어려움이 계속되었다. 그러나 회남절도사 고변이 기회주의적으로 행동하면서 세력 회복의 기회를 제공했다. 880년 반군은 낙양을 함락시키고 12월 장안 외곽 동관을 점령했다. 환관 전량자는 희종을 호위해 사천으로 도망쳤다. 장안에 입성한 황소는 “병사를 일으킨 것은 서민을 위한 것이고 백성들은 편안히 살며 두려워할 것 없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 황제에 올라 나라를 대제(大齊)로, 연호는 금통(金統)으로 하는 신정권을 수립했다.

반군은 이내 상점을 불태우고 사람들을 죽였다. 관리에 대한 증오심이 커 많은 관리와 군인이 살해되었다. 황소가 장안을 유지한 것은 2년 4개월에 불과했다. 다양한 집단으로 구성된 반란군의 성격상 권력다툼은 불가피했다. 결정적 계기는 유력 장군인 주온의 배신이었다. 후에 당을 멸망시키고 후량을 건국한 주온은 야심있고 비정한 인물이었다. 주온이 하중절도사 왕중영의 공격을 받자 구원을 요청했는데 황소 측근인 좌군사 명계가 이를 묵살했다. 결국 황소의 감군사 엄실을 죽이고 당나라에 귀순했다. 희종은 크게 기뻐해 전충(全忠)이라는 이름을 내렸다. 안문절도사 이극용도 타격을 가했다. 터키계 사타족 출신으로 방훈의 난에 공을 세워 이씨 성을 하사받았다. 용모가 기이하고 한 눈이 작아 독안룡(獨眼龍)으로 불리웠다. 양전파에서 반군을 대파했다. 883년 4월 황소군은 장안에서 퇴각했다. 퇴각의 공으로 주전충은 선무절도사, 이극용은 하동절도사로 임용되었다. 장안 탈출 후 1년여 각지에서 당군과 치열히 싸웠다. 식량이 부족해 아사자가 속출하는 아비규환이었다. 하남성 주병현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6월 태산 동남쪽 낭호곡에서 조카 임언에게 목이 잘렸다.

민간에는 황소에 얽힌 전설이 많이 남아있다. 황소의 옛 부하 장전의가 낙양에서 승려로 변신한 황소를 숨겨주었다는 풍문이 있다. 절강성 명주 설두산의 설두선사가 사실은 황소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반란이 실패한 이유는 반군이 제대로 된 조직의 틀을 갖추지 못한 오합지졸이라는 점이다. 장안을 점령한 이후 통치 원칙이나 세부계획이 없었다. 결국 정권의 정통성을 확보하는데 실패했다. 관료, 백성들에게 황소는 그저 침략자일 뿐이었다. 외교 전략이 없어 각지에 웅거한 번진 세력과 연합할 수 없었다. “하늘을 찌르는 듯 짙은 국화향이 장안에 가득하니 장안성을 노란 국화색 황금갑옷으로 덮어버리리라”라고 뜨거운 열정을 노래했지만 세속의 투쟁에서는 처절히 패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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