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만약 일생이 하루라면
2019년 05월 17일(금) 00:00
하루살이. 하루를 사는 인생. 눈을 뜨는 순간 인생을 시작해서, 눈을 감을 때 인생을 마감한다. 눈을 감았다는 표현은 죽음에 대한 비유로 흔히 쓰인다. 만약 인생이 하루라고 하면, 그래서 눈을 뜨는 순간 인생을 시작해서 눈을 감는 순간 인생을 마감한다면, 인생은 어떤 모습일까? 어떻게 살더라도 밤이 찾아오면 눈을 감는다. 9시가 되기도 전에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12시가 다 되도록 자지 않고 뒤척이는 사람도 있고, 그때까지 이것저것 밀린 일을 하느라 바쁜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일생이 하루라면 유아기는 일어나 눈꼽 떼고 세수하는 정도의 시간까지 일 것이다. 일어나서 방 밖으로 나올 수준 정도는 되어야 밥을 먹든 출근을 하든 뭘 하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춘기 이전의 어린 시절은 아침 먹고 집을 나서기 전까지 일 것이다. 이때까지도 역시 어른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다. 물론 혼자 할 수도 있겠지만 누군가 아침을 챙겨주면 하루가 한결 편하고 여유로울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한다면 피곤한 출근 시간을 피할 수 없다. 꼭 그래야만 될 이유는 없지만 다들 그렇게 한다. 다들 그렇게 하니 나도 그렇게 한다는 건 나의 용기 없음에 대한 핑계일 뿐이다. 아침부터 출근하느라 진을 빼고 나면 하루가 다 간 기분이다. 요즘 청춘은 마치 아침부터 지옥철에 시달리는 직장인들처럼 시작부터 삶이 고달프다. 그들을 짓누르는 삶의 무게 때문에 여유로운 모닝 커피는 꿈에서나 가능할 법하다.

오후가 되면 한바탕 피곤과 졸음이 몰려오듯, 인생의 오후가 되면 누구에게나 위기가 찾아오기 마련이다. 이런저런 눈치 보지 않고 잠깐이라도 쉬면 남은 시간동안 몸이 훨씬 가볍다. 인생의 한가운데에 찾아오는 위기를 극복하는 가장 좋은 방법 역시 잠시 쉬면서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차분하게 살펴보는 것이다.

밤이 되면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하루의 피로를 푼다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오히려 심신을 더 피로하게 한다. 집에 가면 쓰러져 자는 것이 남은 일의 전부다. 설령 일을 마치고 곧장 집으로 퇴근하더라도 멍하게 스크린만 쳐다보다 잠이 드는 사람들도 많다. 일생이 하루라면, 지금의 나처럼 야근 중인 사람들도 많다. 창밖은 어두운데 사무실은 형광등 불빛으로 환하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허둥지둥 서두르다 하루가 다 가 버린다. 그래서 해가 서녘 하늘로 뉘엿뉘엿 지는 노년기가 되어서야 어떻게 살아야 될 지 조금이라도 감이 온다. 그러나 남은 시간은 어둔 밤 뿐이다. 일생을 시작할 때부터 세상 사는 법을 알고 있어야 하루 밖에 안되는 일생이 아깝지 않은데 이런… 이미 늦었다.

우리는 과연 인생의 아침이라 할 수 있는 청소년기에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삶을 시작할 수는 없는 것일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쫓기듯 하루를 살아가게 하는 것일까? 누가 우리의 여유롭고 행복한 하루를 방해하는 것일까?

일생이 하루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 우리들이 얼마나 삶을 허비하며 살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욕망에서 벗어난 사람은 정신적 괴로움이 없고 집착에서 벗어난 사람은 모든 두려움을 초월한다.

존재하려는 욕망이 파괴되어 버리면 죽음은 공포가 아니라 단지 천근의 짐을 내려놓은 것에 불과하다.” 법구경에서 상낏짜라는 어린 사미가 한 말이다.

바라는 바대로 되지 않으면 괴롭지만 두렵지는 않다. 욕망이 깊어지면 통제력을 상실하게 되고 통제력을 상실한 욕망을 우리는 집착이라 부른다. 집착은 삶에 불안과 두려움의 그늘을 드리운다. 집착 중에서 가장 뿌리 깊은 집착은 자신에 대한 집착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 삶에 대한 집착, 상낏짜 사미가 말한 존재하려는 욕망이 바로 이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삶을 집착하기 때문에 허둥지둥 쫓기듯 자신의 삶을 허비한다. 움켜쥐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더 거세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 나가 버리는 모래알처럼, 우리들에게 삶이 그러하다.

욕망의 노예가 되어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한 자는 지는 노을처럼 스러지는 자신의 일생을 후회하고 한탄하며 남은 삶에 조바심을 낸다. 이 모든 것이 고작 내 마음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탓이다.

니체는 짜라투스트라의 입을 빌려 영원히 반복되는 삶의 무서움을 알고 난 다음, 현재를 후회 없이 살아야 한다고 했다. 하루살이 같은 인생이 무한 반복된다. 어쩌면 그것이 인생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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