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모닝 예향] 역사의 아픔, 기억하는 여행 ‘다크 투어리즘’<하>
80년 그날의 현장… 오월길을 걷다
DMZ·서대문형무소·제주4.3평화공원· 5·18민주묘지 ·여순사건 유적…
‘5·18 자유공원’ 법정·영창 체험 이어 나눔 정신 주먹밥 체험
민주화운동 사적지 찾아 ‘인권·민중·의향·예술·남도’길 답사
2019년 05월 16일(목) 00:00

국립 5·18민주묘지 내 유영보관소를 찾은 한 가족이 영정사진을 보며 고인들을 추모하고 있다.

‘탁탁!’ 사무실을 울리는 곤봉소리에 학생들이 깜짝 놀란다.

“다들 조용히 하지 못해! 똑바로 해! 너 빨갱이지? 폭도지? 저기 보이는 저 놈처럼 시키는대로 사인하지 않으면 뒈질(죽을)줄 알아! 빨리 사인해!”

‘공포의 방’에 끌려온(?) 초등학생들이 몽둥이를 든 헌병 앞에서 꼼짝 못하고 서 있다.

“80년 5월, 광주에 있는 놈들은 모두 무조건 빨갱이들이다. 군인들에게 돌을 던지고 정부가 하는 일에 반대하는 너희들은 모두 폭도들이다. 저기 저 놈들도 금남로에서 어슬렁 거리던 놈들을 잡아온 거야. 그래서 너희들을 이렇게 다루는 거야. 다들 입 다물어.”

5·18 당시 끌려온 시민들을 취조하는 모습을 재현하는 헌병을 보며 웃던 학생들이 어느새 움찔하며 입을 다물기 시작한다. 인솔하던 선생님조차 헌병과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시선을 아래로 떨구고 만다. 이곳은 80년 5월, 광주 시내에서 계엄군에 끌려온 시민들을 취조하던 헌병대 본부 사무실의 ‘공포의 방’이다.

◇법정·영장 체험 ‘5·18 자유공원’=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을 한 달 여 앞둔 4월 중순, 광주 상무지구에 위치한 ‘5·18 자유공원’에 많은 학생들이 찾아왔다. 5·18 자유공원은 계엄군에 의해 끌려온 광주 시민들이 고문을 당하고 영창에 갇히고 법정에서 군사재판을 받던 상황을 체험해 보는 곳이다.

1984년 상무대 지역을 신도심으로 개발하면서 역사 현장인 법정·영창이 방치되자 1999년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재사용이 가능한 자재들을 활용해 본래 위치에서 100m 떨어진 곳에 원형으로 복원, 재현했다.

이날 자유공원을 찾은 학생들은 단체 체험신청을 한 광주 무등초등학교와 목포 대성초등학교, 순천 복성고등학교 학생들이다. 학생들은 20여명씩 팀을 이뤄 차례대로 체험에 나섰다. 무등초등학교 6학년 3반(인솔교사 변경애) 학생들을 따라 먼저 들어선 곳은 자유관 영상실. 준비된 좌석에 앉자 영상이 시작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자막을 시작으로 80년 5월, 광주의 이야기가 영상과 함께 흘러나온다.

“…비상계엄령은 전국으로 확대되고, 5월 18일 광주시민들의 항쟁이 거세지자 공수부대는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시작합니다. M16 자동소총에 착검까지 한 채 시민항쟁을 진압하는 공수부대는 광주시내를 온통 공포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습니다…”

당시 촬영된 사진과 함께 10여 분 이어진 상영은 80년 5월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데 도움이 됐다. 영상 상영 후 ‘나눔의 체험’ 시간. 재래시장 아주머니들이 만들어 나눠줬던 그 주먹밥을 직접 받아 나눠 먹는다. 주먹밥을 먹고 나오니 이슬비가 내리고 있다. 주먹밥이 맛있었다며 재잘거리는 사이 학생들은 어느새 헌병대 본부 사무실 앞에 도착한다.

이름만으로도 전율이 느껴지는 ‘공포의 방’. 시내에서 계엄군에 끌려온 시민들을 조사했던 곳이다. 수사관들은 끌려온 시민들을 조사하기 전부터 무조건 진압봉으로 무자비하게 구타하여 무력감에 빠지게 했다. 바로 옆에서 구타당해 피투성이가 되는 장면을 지켜본 시민들은 맞지 않기 위해 허위자백이라도 해야 했다.

‘헌병대 식당’은 군인들이 이용하는 식당이었으나 1980년 5·18 민주화운동 당시 연행자들을 고문하고 조사하는 임시 취조실로 사용되었다. 수사관들은 잡혀 온 시민들에게 매일같이 자술서와 진술서를 쓰게 했으며, 이 과정에서 조금이라도 틀리면 온몸이 피범벅이 되도록 구타를 했다. 물과 고춧가루를 이용한 고문도 자행됐다.

당시 상무대 헌병대 영창이라고 불렸던 영창.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들이 구금됐던 곳이다. 폭도라는 누명을 씌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온갖 고문 수사에 몸과 마음이 상했고 하루 16시간 움직이지도 못한 채 정좌좌세로 고통을 받아야 했다. 30명 정원의 한 방에 150명씩 수감되거나 하루에 감자 하나만 먹이기 일쑤였다.

“자 모두 영창 안으로 들어간다. 실시! 실시!”

영창에도 여지없이 헌병이 대기하고 있다가 학생들을 방으로 들여보낸다. 영문도 모른채 따라 들어간 학생들은 쇠창살이 닫히자 당시 시민들이 그러했듯이 시키는대로 정좌자세로 앉는다.

“너희들은 폭도로 잡혀왔으니 지금 이 시간부터 하루 16시간 동안 이렇게 앉아서 반성한다. 움직이면 맞는다. 하루에 감자 하나씩 주겠다. 감사히 먹도록! 알겠나!” 학생들은 꼼짝없이 앉아 감옥살이를 체험할 수 밖에 없었다.

법정은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으로 1980년 8월, 5·18 군사재판을 위해 급하게 지어졌다. 역사를 증언이라도 하듯 법정 건물 머릿돌에 ‘1980.8’이 뚜렷하게 새겨져 있다. 당시 군사재판은 진상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정에 총으로 무장한 헌병까지 입장시켜 공포분위기를 조성하고 비공개로 약식재판을 진행했다.

법정 체험까지 모두 마치고 나오는 학생들의 걸음이 처음보다 무거워진 듯 하다. 학생들을 인솔한 변경애 교사는 “6학년 사회교과서에 잠깐 나오기도 하고 5·18 주간에는 학교에서 별도로 교육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단순하게 동영상을 보거나 책을 읽는 것 정도였다”며 “학생들이 이렇게 역사 체험을 함으로써 중간중간 무서워하기도 했지만 그때의 상황을 좀 더 실감나게 느낄 수 있었던 것 같아 현장 교육을 적극 추천한다”고 말했다.

5·18 자유공원 법정·영창 시설 견학은 연중 실시된다. 5·18 행사주간이나 봄·가을 소풍시기에 많이 찾고 있으며, 초등학생부터 일반인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062-376-5183.

◇국립 5·18민주묘지·오월길 걷기=5·18 추모기간이 다가오면 광주의 분위기는 엄숙한 가운데 분주해진다. 항쟁의 격전지였던 금남로와 5·18민주광장, 국립 5·18민주묘지, 5·18자유공원 등을 찾는 광주시민과 외지인들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단체로 견학을 오는가 하면, 주말이면 부모의 손을 잡고 찾는 어린아이들도 많아진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3명의 남학생들이 국립 5·18민주묘지 곳곳을 다니며 수첩에 무언가 열심히 적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우리지역 문화유산 견학이라는 학교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찾아온 학생들이다. 입구에서 방명록을 작성한 다음 안내원이 나누어준 체험지를 들고 문제 해결을 위해 곳곳을 찾아 헤맨다. 어린이 체험학습관에 들어가 5·18 민주화운동에 대해 간접적으로 체험하기도 하고 추모탑 앞에서는 숭고한 희생자들을 위해 고개 숙여 참배도 한다. 추모관에 들러서는 전시물과 영상물을 관람하고 5월 영령들에게 감사의 메시지를 적어 붙여놓기도 했다.

이맘때가 되면 ‘오월길’을 걷는 이들도 많아진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이 품었던 민주화를 향한 열망에서 시작된 ‘오월길’을 걸으며 39년 전 죽음을 직감하면서도 항쟁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갔던 그들과 교감해 보는 길이다.

오월길은 5·18민주화운동의 열망이 담긴 사적지를 찾아가는 ‘오월인권길’, 오월광장에서 뜨겁게 타올랐던 시민들의 발자취를 발견하는 ‘오월민중길’, 오월정신의 역사와 교감하는 ‘오월의향길’, 광주의 오월 문화·예술을 만나는 ‘오월예술길’, 오월정신을 따라 새로운 여정을 만나는 ‘오월남도길’ 등 5개 테마 18개 코스로 구성돼 있다. 5·18민주화운동 26개 사적지와 연결돼 있다.

안내해설사 ‘오월지기’의 해설과 함께 오월길을 걷고 싶을 경우 답사 예정일 최소 일주일 전까지 신청하면 된다. 오월지기는 답사자 20~30명 기준으로 해설사 1명이 배치된다. 별도의 추가 비용은 없다. 오월길 홈페이지(https://518road.518.org)나 전화(062-360-0518)로 신청하면 된다.

/이보람 기자 boram@kwangju.co.kr

/사진=최현배·김진수 기자 cho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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