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현의 문화카페] 시청 앞 ‘멘디니’
2019년 02월 27일(수) 00:00

<제작국장·문화선임기자>

“아시아의 문화수도인 광주를 방문하게 돼 기쁩니다. 광주시민들이 즐겨찾는 시청 광장에 제 작품이 설치돼 영광스럽습니다.”

지난 2005년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서 만난 이탈리아 출신의 세계적인 디자이너 알렉산드로 멘디니(1931~2019)는 상기된 표정을 지었다. 마이크를 통해 울려 퍼진 그의 목소리에선 미세한 떨림도 전해졌다. 국제 디자인계를 주무르는 거장의 카리스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날 멘디니가 기자들 앞에서 긴장한 이유는 디자인비엔날레 출품작인 ‘미래도시광주:기원’(기원)이 광주의 상징조형물로 시청 앞에 영구전시되기 때문이다. 디자인비엔날레가 끝난 이후에도 자신의 ‘분신’이 광주에 영원히 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기대와 부담이 교차했던 듯 했다.

당시 그는 디자인비엔날레 참여작가 가운데 가장 ‘핫’한 스타였다. 일반인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이름이지만, 디자인분야에서는 ‘21세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통하는 거물이다. 그는 보기만 해도 행복한 디자인, 동화처럼 따뜻한 스토리가 담긴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1993년 양팔을 기지개 켜는 듯한 여성의 모습을 형상화한 와인 따개 ‘안나 G’는 1분에 1개씩 팔릴 정도고, 바로크식 의자에 화가 폴 시냑의 현란한 색점(dot)을 찍어 만든 ‘프루스트 의자’ 는 세기의 명작으로 꼽힌다.

사실 그는 광주·전남과 인연이 꽤 깊다. 광주시청 앞 광장의 ‘기원’은 물론 2015 광주디자인비엔날레에 ‘프루스트 의자’를 출품해 전국적인 화제를 모았다. 행시기간 내내 ‘프루스트 의자’ 앞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람객들로 장사진을 이뤘었다. 또한 광주송정역에 설치된 캐노피 ‘빛의 꽃’과 순천만 국가정원의 전망대도 그의 손에서 탄생했다.

며칠 전 광주시청 앞을 지나다 멘디니의 ‘기원’과 마주쳤다. 시청 주변을 지날 때면 멀리서도 눈에 띄는 조형물이건만 이날은 왠지 가슴 한켠이 싸해졌다. 늘 바람에 펄럭이던 물방울 무니 천은 잠잠한 듯 했다. 아마도 지난 19일 87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난 그의 얼굴이 떠올라서였으리라.

하지만 단지 감상적인 이유만은 아니었다. 언제부턴가 ‘기원’을 애물단지로 여기는 광주시의 근시안적인 행태가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7억5000만 원을 들여 높이 20m의 7개 탑으로 제작된 ‘기원’은 당초 봄(3∼5월), 여름(6∼8월), 가을(9∼11월), 겨울(12월∼2월) 등 각 계절별로 다른 옷을 입도록 디자인됐다. 하지만 조형물의 유지·관리비 예산을 충분히 책정하지 않아 봄·가을에만 외피를 교체하는가 하면 그마저 ‘예산을 축낸다’는 이유로 철거를 고민하기도 했다.

최근 광주시는 ‘예술여행도시 광주’를 모토로 본격적인 예술관광 콘텐츠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하지만 스타작가의 조형물 하나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서 ‘예술관광’ 운운하는 게 어쩐지 주먹구구식 행정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깝다. 무엇보다 생전 광주에 각별한 애정을 보인, 거장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새로운 볼거리를 찾기에 앞서 ‘숨겨진 보석’들을 가꾸고 알리는 행정의 디테일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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