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라’
2018년 12월 21일(금) 00:00
연말이고 하니 오늘은 그리 무겁지 않은 주제를 다루고 싶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부담 없는 이야기로 뭐가 좋을까? 한참 고민하다가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한 가지 신드롬을 떠올린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열풍.

영화가 개봉되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그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프레디 머큐리란 이름의 가수도 알지 못했다. 그래 처음 제목만 들었을 땐 무슨 ‘클래식 음악 영화’이겠거니 짐작했던 거다. 이유는 단순했으니 ‘랩소디’란 말이 들어가는 리스트의 피아노곡이 먼저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나는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를 듣고 있는 중이다.)

랩소디란 단어는 클래식 애호가가 아니라면 대부분 예전 음악 시간에나 처음 접했을 가능성이 많다. 한데 이게 참 어려운 단어여서 광시곡(狂詩曲)이란 설명을 들어도 그 의미를 알기가 쉽지 않다. 한자 좀 안다 해서 자칫 ‘미친(狂) 시(詩)의 노래(曲)’쯤으로 번역했다가는 더욱 의미의 혼란만 겪게 될 뿐이다. 영화를 본 후 여기저기 뒤적이다가, 이 광시곡이란 단어가 일제 잔재가 남아 있는 한자말이라는 걸 알게 됐다. 일본에서는 ‘격식이나 운율에 구애받지 않고 속어 등을 섞은 천박한 시’를 ‘광시’(狂詩)라 한다는 것이다.



왜 ‘보헤미안 랩소디’인가



원래 랩소디는 그리스 서사시의 한 형태로 기존의 형식에 물들지 않고 미친 듯이 격한 감정을 쏟아내는 노래다. 우리 사전에서는 랩소디를 ‘관능적이면서 내용이나 형식이 비교적 자유로운 환상적인 기악곡’으로 풀이하고 있다. 다시 ‘광시곡’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랩소디와 같은 말로 돼 있다. 결국 광시곡-랩소디는 ‘자유로운 형식의 노래’라 할 수 있겠다.

프레디가 노래 제목에 ‘랩소디’를 사용한 것도 바로 이 ‘자유’에 방점이 찍혀 있는 것 아닐까. 보헤미안이란 단어 또한 마찬가지다. 보헤미안은 ‘보헤미아 사람’이란 뜻이고, 보헤미아는 체코 등의 동유럽을 의미한다. 보헤미아 지방에 집시가 많이 살고 있었기에, 15세기경 프랑스인은 집시를 보헤미안이라고 불렀다. 그러다 1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사회의 관습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는 예술가나 지식인들'을 보헤미안이라 일컫게 됐다. 때로 방랑자와 같은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는 보헤미안은 집시와도 통하는 말이다.

집시들의 최초 출신지는 보통 인도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영국에서는 처음 집시들이 이집트에서 온 것으로 잘못 알고 이집시안(Egyptian, 이집트 사람)이라 했는데, 나중에 이 말의 머리와 꼬리가 잘려 나가면서 집시(gipcy)가 됐단다. 어찌 됐든 유럽인들은 보헤미안이나 집시를 그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아서 자유로운 존재로 인식했던 모양이다.(글을 쓰는 데 열중하다 보니 귀에 꽂은 이어폰에서 음악이 이미 멎은 걸 뒤늦게 깨닫고 황급히 ‘보헤미안 랩소디’ 동영상을 찾아 ‘플레이 버튼’을 누른다.)

영화를 본 것은 관객들이 함께 따라 부를 수 있는 싱어롱(sing-along)관에서였다. 보고 나니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다. 노래 가사에 뜬금없이 나오는 ‘갈릴레오’나 ‘피가로’는 무슨 뜻일까? 궁금하면 못 참는 성격이라 또 여기저기 뒤적여 보니 많은 의견이 올라와 있었다. 우선 이 같은 말들이 그룹 ‘퀸’(Queen)의 멤버들을 지칭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 추측성 의견이다. 실제로 천체물리학 박사이기도 했던 기타리스트 브라이언 메이를 가리켜 천체물리학자 갈릴레오라 했다는 것이다. 희곡 ‘세빌리아의 이발사’ 주인공인 피가로는 드럼의 로저테일러를 지칭한다. 늘 주변에 여자 소동이 끊이지 않지만 현명하기 때문이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에 나오는 피가로가 중세 귀족을 신랄하게 비판한 인물이었다는 점과 연관시켜서, 기존의 양식을 거부했던 프레디 머큐리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도 있다. 천동설이 대세이던 시절 지동설을 주장했던 갈릴레오가 가사에 등장하는 것 역시 같은 맥락에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럴듯한 해석에 이제 어느 정도 의문이 풀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내가 사람을 죽였다’고 고백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노래 가사는 여전히 난해하다. 생전에 프레디는 가사에 관한 질문을 받을 때마다 사람들 각자에게 해석을 맡긴다고 말했다는데, 일단 가장 유명한 해석 중 하나는 그가 곡을 쓴 시기가 메리 오스틴이란 여성과 헤어진 직후임을 주목한다. 동성을 사랑할 수 있는 자신의 성적 지향성을 발견하고 메리와 헤어진 그가 이에 대한 슬픔과 혼란을 가사에 담았다는 주장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가사의 화자는 프레디 본인, 엄마는 메리, 그가 죽였다는 남자는 이성애자로서 메리를 사랑했던 과거의 자신이 된다. 기타리스트 신대철도 같은 의견을 피력한다. “이 가사는 사람을 죽였다는 게 아니라 ‘남자를 죽였다’ 즉 ‘내 안에 있는 남자를 죽였다’는 뜻일 것이다. 본인의 성적 정체성을 다른 방법으로 표현해 보고자 했던 것 같다.”



젊은이들의 마음을 훔치다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엊그제 관객 800만 명을 돌파했다. 1970~80년대를 휩쓴 록밴드 ‘퀸’을 소재로 한 영화의 주요 관객은 예상과 달리 젊은이들이 많았다. 7080세대가 아니라 2030 젊은 세대가 이처럼 영화에 푹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 속 명대사이자 실제 프레디 머큐리가 인터뷰에서도 밝혔던, ‘사회 부적응자가 부적응자들을 위해 노래한다’는 그의 철학이 관람객의 심장을 관통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든다. ‘마이너가 마이너를 위해 활동한다’는 ‘퀸’의 철학에 젊은이들이 열렬히 호응한 것이다.

근래에 젊은이들이 자주 쓰는 단어로 ‘인싸’(insider)와 ‘아싸’(outsider)가 있다. 인싸는 잘 나가는 사람이요 아싸는 일종의 ‘루저’(패배자)다. 문제는 본인을 아싸라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루저를 위해 노래한다’는 퀸 음악의 주제 의식이 현재 한국 사회의 가장 큰 화두인 ‘위로’의 문화 코드와 맞아떨어진 것 아닐까.

무대에서는 ‘핵인싸’였지만 일상에서는 늘 외로운 ‘아싸’였던 프레디. 그는 산사태에 묻힌 듯한 절망적인 현실 속에서도, ‘눈을 뜨고 하늘을 올려다보라’(Open your eyes look up to the skies and see)며 젊은이들을 위무한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The show must go on)는 그의 마지막 노래처럼 쇼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그의 노래에서 적잖은 위안을 받는다.<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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