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문화를 품다 <3>경기도 파주 ‘지혜의 숲’] 나무가 책이 되고 책이 지혜가 되는 ‘만인의 서재’
2018년 06월 25일(월) 00:00
민간 출판도시문화재단이 운영
학자·출판사 등 기증 도서 20만권
도서 대출 안되고 15만권 열람 가능
사서 대신 ‘권독사’ 자원봉사활동
독서광들의 북스테이 ‘지지향’
전시·강연·콘서트·어린이 책잔치

20만 권의 소장도서가 빼곡하게 꽂혀 있는 지혜의숲 서가.

철제 문을 열고 들어서자 8m 높이의 대형서가가 방문객을 압도한다. 벽면을 가득 채운 방대한 분량의 책을 보니 저절로 눈이 휘둥그레해진다. 말 그대로 ‘책의 숲’이다. 빽빽하게 꽂힌 책들에선 진한 서향(書香)이 퍼져 나오고 한 장 한 장 책장을 넘길 때 마다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서가 앞이나 창문 옆에서 독서삼매경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이다. 마치 자신의 서재에서 책을 읽는 것 처럼 편안해 보인다.

서울에서 자동차로 40여 분 거리인 파주는 책과 사람, 자연이 어울려 숨쉬는 북시티이다. 40만 평이 넘는 출판단지의 중심에는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가 자리하고 있다. 지하 1층, 지상 5층, 3개동, 연면적 7만㎡ 규모로 붉은 철제 외관이 인상적이다.

그중에서 ‘지혜의숲’(1244㎡)은 북시티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나무가 책이 되고, 책이 지혜가 되는 ‘만인의 서재’를 지향한다. 6~8m의 천장높이까지 가득 채운 서가 길이는 약 3.1km.

지난 2014년 6월19일 문을 연 ‘지혜의숲’은 3개의 공간으로 구성됐다. 정문으로 들어가면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지혜의숲 1’(오전 10시 ~ 오후 5시 운영)은 학자, 지식인, 연구소에서 기증한 도서를 소장한 공간이다. 기증자가 평생 읽고 연찬한 책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공유서재다. 한 분야의 일가를 이룬 지식인의 삶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각국에서 구해온 서적, 연구의 초석이 됐던 전문서까지 거장들의 지적 편린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뜻깊은 곳이다. 석경징(서울대 영문과 명예교수), 유진태(재일역사학자), 유초하(충북대 철학과 명예교수), 한경구(서울대 자유전공학부 교수), 이병혁(서울시립대 도시사회학과 교수), 한승옥(숭실대 국문과 명예교수) 등 30 여명이 그 주인공들이다.

서가를 따라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지혜의숲 2’(오전 10시~오후 8시 운영)가 나온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유명 출판사들이 기증한 도서들로 꾸며진 곳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과 간단한 음료를 즐길 수 있는 카페, 서점 등이 들어서 있다. 분야와 주제별 분류가 아닌 출판사별 분류를 통해 우리나라 출판문화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는 공간이다. 다른 공간과 달리 어린이 책 코너가 별도로 마련돼 있어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단위 방문객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

경기도 파주 출판문화단지에 자리한 ‘지혜의숲’ 내부 모습.






‘지혜의숲 3’은 2관에서 서점 옆 구름다리로 건너가면 만나게 되는 공간이다. 2관과 마찬가지로 출판사들의 기증도서로 꾸며져 있으며 북스테이를 표방한 게스트하우스 ‘지지향’(紙之香)의 로비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다른 2개의 공간과 달리 연중 무휴로 24시간 개방된다. 소파에서 편하게 책을 읽거나 인터넷에 접속하는 등 시민들의 문화사랑방으로 각광받고 있다.

‘지혜의숲’은 국가나 지자체의 소속이 아닌 민간조직인 출판도시문화재단(이사장 김언호)이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출판단지조합이 출자하고 문화체육관광부가 설립을 허가한 비영리 재단법인이다.

운영 방식 또한 기존 공공도서관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도서관 업무의 기본인 도서대출이 불가능하다. 대신 ‘지혜의숲’에선 누구나 책을 열람할 수 있고 서점에서 구입하거나 집에서 가져온 책을 읽을 수 있다. 방문객이 직접 책을 검색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는 것도 특징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자신이 원하는 책의 출판사를 정확히 알고 있으면 도서관내에 있는 직원들이 친절하게 안내한다.

또한 지혜의숲에선 여느 도서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서를 만나기가 힘들다. 그렇다고 놀랄 필요는 없다. ‘권독사’라는 독특한 이름의 자원봉사자들이 방문객을 맞기 때문이다. 독서를 권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권독사는 독자들에게 책을 안내하고 도서관을 ‘지키는’ 역할을 한다.

개관초기 부터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권독사는 33명 안팎. 파주와 경기도는 물론 서울에 거주하는 이들은 30대 회사원에서부터 60대 시니어들까지 다양하다. 나이와 직업은 다르지만 책을 좋아하고 ‘지혜의숲’을 사랑하는 열정을 지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교대로 근무한다.

40대 회사원인 권독사 한우헌씨는 “개관 초, 우연히 이곳에 들러 책을 접한 후 ‘지혜의숲’ 매력에 빠져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게 됐다”면서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어린이들이 도서관 그림책 코너에서 스마트 폰 대신 책을 읽는 모습을 볼 때면 그렇게 흐믓할 수 가 없다”고 말했다.

매년 5월에 열리는 ‘어린이책잔치’.






도서관에서 만난 정성희(38·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풍동)씨는 “특별한 일정이 없으면 주말마다 가족들과 함께 파주 출판단지를 찾는다”면서 “인근에 미메시스아트 뮤지엄, 수백여 개의 출판사와 서점이 모인 책방거리, 북카페 등도 많아 문화나들이로 최적의 장소인 것 같다”고 즐거워했다.

현재 지혜의숲이 소장하고 있는 도서는 약 20만 여 권. 이 가운데 15만 권은 누구나 열람할 수 있고 나머지 희소성이 높거나 훼손 우려가 있는 도서 5만 권은 정보도서관에 별도로 보관하고 있다.

지혜의숲의 또다른 특징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점이다.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독서공간이자 전시와 인문학 강연, 축제, 콘서트 등을 즐길 수 있다. ‘어린이 책잔치’와 ‘파주 북소리 축제’, ‘출판도시 인문학당’, ‘해설사와 함께 하는 책마을 따라걷기’ 등이 대표적인 콘텐츠다. 지난해 ‘열독 열정’이라는 주제로 열린 파주북소리 축제에서는 북콘서트, 심야책방, 독서치료, 작가와의 만남, 라디오 소설극장 등 200여 개의 프로그램이 펼쳐져 30만 여명이 다녀갔다.

출판문화도시문화재단의 김태연(홍보담당)씨는 “올해 ‘책의 해’를 맞아 파주 북소리 등의 행사를 개최해 독서문화를 활성화시킬 계획”이라면서 “특히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지혜의숲 3인 ‘지지향’은 오로지 책에만 집중할 수 있어 독서광들의 북스테이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파주=박진현 문화선임기자

jhpark@kwangju.co.kr

/사진=김진수 기자 jeans@kwangju.co.kr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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