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도, 시간속을 걷다 ] <14> '반백년' 해남 영전백화점
시골에 웬 백화점? 사람 빼고 다 파는 ‘백화情’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연중무휴
농사 끝내고 막걸리 잔 기울이는 사랑방
2017년 08월 31일(목) 00:00

50년 영전백화점을 운영해 온 김병채(오른쪽)·윤재순 부부.

“사람 빼고는 다 팔아요. 없는 게 없당께.”

물건을 사던 손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밭일을 하다 급히 필요한 게 있어 가게에 들른 그가 구입한 건 대형 호스와 달달한 아이스크림이었다. 긴가민가하며 가게 안을 둘러보는데 구경하면 할수록 입이 벌어졌다. 정말 별 게 다 있다. 진짜 없는 게 없다.

얼마전 서울서 내려와 해남에 둥지를 튼 지인에게 연락을 받았다. ‘오래된 가게’를 취재 중이라는 말을 기억한 그녀는 “정말 재미있는 곳”이라며 한통의 문자를 보내왔다. “시골에 백화점이라는 간판이 있어 들어가봤더니 정말 없는 게 없는 ‘백화점’이었어요.” 함께 날아온 사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영전백화점’.

처음엔 여느 시골 구멍가게보다 조금 큰 규모의 슈퍼를 생각했고, 가게에 도착했을 땐 내 생각이 맞았다 싶었다. 얼핏 보기에 가게 입구가 너무 좁았다. 한데, 앞쪽에 놓여있는 물건들이 종잡을 수 없이 다양했다. 예초기, 장화, 소주, 시계, 수박, 파이프, 페인트, 각종 볼트에 200원짜리 자판기 커피까지. 이게 다 한 가게에서 파는 게 맞나 싶었다.

영전백화점은 김병채(71), 윤재순(73) 부부가 운영한다. 얼추 50년 세월이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거 하나 꺼내 먹으라”는 할머니 말에 음료수 하나 챙겨 백화점 구경에 나섰다. 입구가 좁았을 뿐이다. 안쪽으로 이어지는 공간은 꽤 넓다. 알고 보니 마당과 슈퍼 옆 공터와 창고에도 온갖 물건이 쌓여 있었다. 흔히 동네 가게에서 파는 기본적인 물품에 각종 농자재와 보일러 부품, 스프링쿨러, 각종 생활용품 등이 빼곡하다. 만물상이 따로 없다.

한참 ‘낫’을 고르던 최운식(86) 할아버지는 “트랙터로 밭 갈다 갑자기 낫이 필요해 사러 왔다”며 “주인장 아버지가 운영할 때부터 이용한 가겐데 큰 농자재부터 바늘까지 없는 게 없는 집”이라고 했다.

김씨 부부가 현재 자리에서 가게를 운영하기 전 김씨의 아버지는 지금은 폐교가 된 북평 남국민학교 옆에서 이름도 없는 작은 가게를 열었다. 스무살 되던 해 김씨가 가게를 이어받았고 초창기에는 ‘교동슈퍼’라는 상호를 썼다.

“가게에서 파는 물건이 하나 둘 늘면서 우리 집을 만물상이라고들 불렀어요. 이름을 바꿔보자 했는데 동네 사람들과 가게, 슈퍼 등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어요. 에라, 이왕 할 거면 제일 큰 놈으로 하세. 백화점 정도는 되야제 하고는 그냥 백화점이라고 붙여 버렸어.(웃음)”

손님이 원하는 물건이 가게에 없을 때는 메모를 해두었다가 광주 등으로 나가 구입해 가져온다. 농번기에는 1주일에 한번, 보통 때는 2주일에 한번 정도다. 가게를 둘러보다 보면 “아, 이 많은 물건을 다 어떻게 팔까” 싶은 생각이 들며 걱정이 된다. 가게를 다녀간 이들이 이구동성하는 말이란다.

“집사람은 고만 좀 사오라고, 뭐 좀 사오지 말라고 하죠.(웃음). 외지 분들도 다 판매 걱정을 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다 필요한 거예요. 농사일에 필요한 농기구나 농자재는 빠른 시간안에 꼭 구해 줍니다. 또 노인들이 닭 삶을 때 쓴다고 압력솥을 찾는데 단순한 기능의 제품을 원해 그것도 꼭 챙겨두지요. 다라이(대야) 같은 건 화순 농공단지에서 구입하고 양동시장, 잡화를 파는 충장로 5가 도매상도 자주 갑니다.”

해남에 잠시 머물렀던 한 화가는 미역을 사러 영전백화점을 찾았었다. 하지만 마침 미역이 딱 떨어진 상태. 김씨는 즉시 수첩에 메모를 한 뒤, 난감해하는 그녀에게 부엌에 있던 미역을 선뜻 건네줬다. 이야기를 전했더니 한마디 하신다. “찾는 물건 없으면 미안하제.”

사람 좋은 김씨 부부가 운영하는 가게는 마을 주민들의 사랑방이기도 하다. 힘든 농사일에 지칠 때 쯤 자연스레 모여들어 막걸리 잔 기울이며 동네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나눈다. 이날도 마찬가지였다. ‘깨 받칠 소쿠리와 큰 다라이’를 사러왔다는 아저씨와 ‘술시’가 돼 언제나 처럼 가게를 찾았다는 아저씨 등이 모여 땅끝막걸리 앞에 두고 대화가 한창이었다.

“어이, 광주백화점에 없는 게 여기에는 다 있어요. 옛날 할머니들이 쓰는 곽성냥 아요? 여기는 그런 것도 있어.” 정말 오랜만에 ‘팔각형 곽성냥’을 봤다.

영전백화점은 새벽 5시부터 밤 11시까지 쉬는 날 없이 문을 연다. 가게에 딸린 방에서 부부가 생활하는 터라 주민들이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 물건을 판다. 모내기 철이면 주민들은 새벽 4시에 일어나 일을 시작하는데 급하게 물건이 필요할 수도 있다는 걸 가장 잘 알기 때문이다.

“가게 문을 거의 닫아본 적이 없어요. 우리 둘이 딱 매어 있는 거제. 힘들기는 하지요. 하지만 우리 가게가 문닫으면 멀리 해남읍까지 나가야하니 문은 열어둬야죠. 나 상줘야 한다니까.(웃음) 저 문앞에다 2주에 한번 월요일 쉰다고 몇년 전부터 써 붙여놓았는데 한번도 쉰 적이 없어요. 가끔 동네 사람들하고 뭐 먹으러 갈 때면 그 사람들이 “언능 누구 오기 전에 문 닫고 가붑시다” 한다니까요.(웃음)”

땅끝마을을 찾는 관광객들도 주고객이다. 특히 최근에는 경기도에서 시작해 땅끝까지 이어지는 ‘삼남길’이 지나는 곳이라 도보 여행객들이 많이 찾는다. 여행자들은 물, 휴지, 컵라면 등을 산 후 가게 구경을 하곤 한단다.

김 씨가 저자가 보내줬다며 책 한권을 꺼내왔다. 도보 여행자 김달권씨가 펴낸 ‘세상에서 가장 비싼 여행-땅끝에서 땅끝까지 걸어서 2,423리’에는 영전백화점에 관한 글이 실려 있다. 터벅터벅 길을 걷던 여행자는 물도 사고 잠시 쉴겸 시골마을 구멍가게(보기에는 그랬다)에 들어선다. 사발면에 맛있는 김치, 따뜻한 공기밥까지 배불리 먹고 지불한 돈은 1500원. 여기에 주인할머니는 주먹만한 단감 두개를 배낭에 넣어줬다. 넉넉한 인심에 마음이 따뜻해진 그는 ‘만물상’같은 가게 구경을 하며 또 하나의 추억을 만든다.

취재를 마치고 몇가지 생활용품을 구입했다. 할인점에서 사는 것보다 물론 비싸지만 부부의 넉넉한 마음까지 함께 받으니 마음이 따뜻해진다. 해남 여행가는 길, 영전백화점에 꼭 들러보시라. 잊지 못할 즐거운 추억거리는 덤이다.



/글·사진=김미은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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