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아서] (8) 유물복원이란 옛 정신을 되살리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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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7월 27일(목) 00:00

여신 아테네와 포세이돈이 주신(主神)인 에레크테이온 신전.

파르테논 신전 왼편에 기둥과 입상(立像), 벽면이 있는 좀 복잡한 구조의 신전이 보인다. 아테네의 전설적인 왕 에레크테우스의 이름을 딴 에레크테이온 신전이다. 이 신전의 주신은 여신 아테네와 포세이돈, 에레크테우스이다. 신전 주변에는 깨어진 기둥들이 널브러져 있다. 내 눈을 먼저 사로잡은 유물은 깨어진 기둥머리 장식이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은 파르테논 신전과 달리 이오니아식 기둥의 건물이다. 기둥머리에는 덩굴손 문양이 조각돼 있다. 내가 보기에는 우리나라 여인의 쪽진 머리 같다. 신전 안에 포세이돈이 괴력을 자랑한 삼지창의 흔적이 있다는데 찾지 못하겠다. 다만, 여신 아테네가 신들에게 선물했다는 올리브나무는 신전 서쪽 벽 앞에 있다. 물론 신화시대의 올리브나무가 아니라 후대에 심은 것이리라.

에레크테이온 신전이 이형(異形) 조합의 건물로 보이는 이유는 3위의 신들을 상징해서 짓다 보니 그랬을 것이라고 한다. 기원전 421년에 건축가 필로클레스가 감독, 조성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393년쯤 완성했다는데 아테네 전성기의 최후걸작이란다. 이 신전 역시 신화에 의해 조성된 건축물인 셈이다. 그러니 신화를 알아야만 신전을 감상하는 즐거움이 배가되지 않을까 싶다. 에레크테이온 신전에 얽힌 신화는 대충 이렇다.



여신 아테네와 포세이돈은 아테네 도시의 주신이 되기 위해 경쟁한다. 아테네 왕 케크롭스는 증인이 됐고, 신들은 심판관을 했다. 여신 아테네와 포세이돈은 신과 사람들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여신 아테네는 올리브나무를 솟아나게 했고, 포세이돈은 소금 샘을 만들어 보였다. 올리브나무는 척박한 그리스 본토와 섬사람들에게 일용할 양식이나 다름없는 생명의 나무였다.

그리스 땅은 다른 나무가 잘 자라지 못하는 박토였던 것이다. 반면에 포세이돈이 보여준 소금 샘은 없어서는 안 될 것이기는 하지만 소금은 음식에 간을 맞추는 보조재일 뿐이었다. 케크롭스는 아테네의 손을 들어주고 싶었지만, 전승에 의하면 신들이 투표해서 결정하도록 미뤘다고 한다. 투표결과 동수가 나왔으므로 제우스가 자신의 딸에게 표를 던져 아테네가 승리했는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신들의 세계도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다. 이러한 혈연투표(?)는 플라톤의 이데아나 불교의 진여문(眞如門)에서는 결코 도덕적, 윤리적으로 있을 수 없는 부정한 일이지만 그리스 신들 세계에서는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신성과 세속성이 혼재했다는 방증이 아닐까.

그래도 포세이돈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중요한 신으로 대접을 받았다. 제우스의 딸인 아테네와 경쟁에서는 졌지만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주신(主神)이 됐으니 말이다. 이는 그리스가 섬들로 이루어진, 즉 선자(船者)의 나라였기 때문이다. 농부가 땅을 의지하듯 뱃사람들은 바다에서 산다. 뱃사람들에게 삶의 터전은 바다이고, 포세이돈은 바다의 신인 것이다. 또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보면 포세이돈을 ‘대지를 흔드는 통치자’라고 부르는데, 이는 지진이 대지의 깊은 곳에 있는 물로부터 일어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문득 우리나라 어부들의 해신(海神)인 용이 떠오른다. 우리 선조들은 바다 속에 용궁이 있고 용은 바다를 다스린다고 믿었다.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사로 부임해 가서 왜군의 침략을 예견하고 만든 비밀전선 거북선도 우리 선조들의 용사상이 담겨 있다고 봐야 한다. 거북선의 머리 모형은 용두(龍頭)이다. 거북선에 용두를 단 것은 용의 힘을 빌려 바다를 제압하겠다는 염원의 발로이다. 임진왜란 당시 전라좌수영 남문이 ‘바다를 진압한다’는 뜻의 진해루(鎭海樓), 객사를 진남관(鎭南館)이라고 이름붙인 것도 의미는 같다고 본다.

그러고 보니 에레크테이온 신전이나 파르테논 신전 모두 너무나 인간적인 그리스정신이 담겨 있는 것 같다. 그리스 신들은 자신들이 자유를 누리듯 인간을 도덕률 속에 가두어 하인처럼 부리지 않고 있어서이다. 이쯤에서 나는 은사님께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종교나 도덕이 인간을 타락시키지 않는 소금과 같은 것이기는 하되 또한 인간의 잠재능력과 행동을 답답하게 가두어버린 감옥 같은 것도 아닐까요?”

“한두 마디로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런 측면이 있어요. AD3세기에서 13세기까지를 중세, 다크 에이지(Dark Age) 즉 암흑시대라고 말해요. 왜 암흑시대냐면 그 관점에 대해서 좀 설명해야 할 거 같아요. 그때 뭐 전기가 안 들어와서 암흑시대라고 한 것은 아니지요. 그리스가 가지고 있었던 인간 존중사상이 기독교 신의 사상에 억압당하고 은폐된 그런 시대였던 거지요. 다시 말하면 AD3세기까지는 인간이 존중됐지요. 신들까지도 인간처럼 살았어요. 또 인간은 신에 의해서 지배된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상당히 자유롭게 살아가는 존재였어요. 그런데 이제 신의 말씀이 아니고서는, 십계명을 저촉해서는 인간이 자유로울 수가 없어지게 됐어요.

이때부터 기독교 논리에 의해서 억압당하기 시작했던 거지요. 심지어 그레고리우스 5세라는 교황의 정치 슬로건은 이거예요. ‘무지는 신앙의 어머니다’ 인간이 똑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분서갱유를 진시황처럼 똑같이 해요. 진시황이 갱유, 선비들을 산 채로 땅에 묻어버렸잖아요. 그리고 분서, 서적들을 다 불태워 버리잖아요. 그레고리우스 5세 교황도 진시황처럼 행동했어요. 그래서 인간의 권능은 신의 권위에 의해서 암흑 속으로 던져져버렸던 거지요. 서양역사에서 미들 에이지(Middle Age)를 다크 에이지(암흑시대)라고 하는 이유는 신에 의해서 인간의 자율성과 인간의 감성, 이런 것들을 은폐시켜버렸기 때문에 그래요.”

분서갱유가 동양역사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서양역사에도 있었다니 인간의 어리석음이란 백인종이나 황인종이나 대동소이한 것 같다. 은사님의 말씀은 신본주의 암흑시대를 지나 어느 새 인본주의를 지향하는 르네상스를 맞이하고 있다.

“13세기까지 내려온 암흑시대는 군사정변에 의해서가 아니라 문화적 변고에 의해서 차츰 변화를 일으키게 되지요. 그게 뭐냐 하면 르네상스이지요. 르네상스라고 말할 때 ‘르’는 ‘다시’이고 ‘네상스’는 ‘살아나다’라는 말이죠. 그러니까 르네상스란 ‘다시 살아나다’라는 말인데, AD3세기부터 13세기까지 천년에 걸쳐서 은폐됐던 그리스의 인본주의 문화, 인간중심 문화가 다시 살아났다는 그런 뜻이지요.

1000년 정도 인간은 없었고 신의 말씀만 있었던 셈이지요. 물론 건축이나 미술사에서 기독교 신의 영광과 말씀을 전하는 예술품이 나오고, 또 문학에서도 성극이라고 해서 신의 권능을 예찬하는 희곡이 나오곤 했지만 문학다운 문학은 천년 동안 나오지 않았다고 봐요. 서양역사에서 아주 심각한 침체기였다고 말할 수 있지요. 아무튼 인본주의 문화가 다시 살아나기 시작했어요. 천년 동안 지배했던 기독교문화가 서서히 걷히면서 다시 인본주의가 살아났는데 그걸 고전주의라고 해요. 그때 문학에서 누가 역할을 했냐면 단테, 페트랄카, 보카치오 같은 작가들이었어요. 단테에 대해서는 시간을 보아 다시 얘기하기로 하지요.”

일행은 에레크테이온 신전의 유물 중에 코레스 혹은 카리아티테스라고 불리는 여섯 개의 소녀상 사진을 찍느라고 바쁘다. 코레스는 ‘소녀, 젊은 여자, 딸’이고, 카리아티테스는 ‘카리에스 지방의 소녀들’이란 뜻이란다. 여섯 개의 입상인데, 한 개는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고, 지금 서 있는 여섯 개의 소녀상은 모두 모조품인바 다섯 개의 진품은 아크로폴리스박물관에 전시돼 있다고 한다.

아크로폴리스의 신전들을 복원하고 있는 공사를 단순하게만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것 같다. 은사님 말씀을 따르자면 신의 권위에 의해서 인간의 권능이 암흑 속으로 던져졌지만 복원공사란 인간정신을 되찾는 의지임이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그렇다. 유물복원이란 옛 시대정신의 복원이라는 말과 동의어가 아닐까 싶다. 일행은 다시 전망대로 향한다. 아크로폴리스가 신들의 도시이기도 했지만 아테네인들에게는 요새였던 때도 있었으니 지금의 전망대는 적군을 감시하는 망대였으리라. 전망대에는 그리스 국기가 에게 해 쪽에서 불어오는 동풍에 펄럭이고 있다. 신과 인간이 친근한 이웃사촌처럼 공생했던 고대 그리스정신이 바람을 타고 산지사방으로 멀리 퍼져가기를 소망해 본다.

/글·사진 정찬주 작가

※이 글은 지역신문발전기금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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