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들여다보기] 이순신과 진남관 - 김형주
전라좌수영 본영 진해루 터
충무공 애국충혼 곳곳 서려
2017년 06월 13일(화) 00:00
여수 진남관(鎭南館)은 정면 15칸, 측면 5칸 팔작지붕의 웅장한 목조건물로 현존하는 옛 지방관아 시설로는 전국 최대 규모이다. 조선시대 전라좌수영에 속한 군사 조영물로서 1599년 처음으로 지어졌으나, 그 뒤 171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중건했다.

이 건물의 터는 충무공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던 곳인데, 당시에는 진해루(鎭海樓)라는 누각이 있었다. 진해루가 정유재란 때 일본군에 의해 불에 타 소실되자 1599년 삼도수군통제사 겸 전라좌수사로 부임한 이시언(李時言)이 전라좌수영 건물로 75칸의 거대한 객사를 지어 진남관이라 명명하고 수군의 중심기지로 사용했다. 이후 1716년에 화재로 소실된 것을 1718년 전라 좌수사 이제면(李濟冕)이 다시 건립했다.

마루는 통간(通間)으로 개방했고 장대석(長臺石)을 섞어 쌓은 기단 위에 막돌주초를 놓고 민흘림두리기둥들을 세웠다. 기둥에는 주두와 첨차·소로로 공포(처마 끝 무게를 받치기 위한 기둥머리쪽 나무 부분)를 짜 올렸다.

조선시대 여수는 독립된 군현이 아니었고 순천부에 소속되어 있는 관계로 진남관은 객사의 역할도 담당했는데,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왕실을 향해 망궐례(望闕禮)를 거행하는 장소였다. 1910년(순종 4)부터 50년가량 여수공립보통학교와 여수중학교, 야간상업중학원 교사로 사용되기도 하는 등의 400년이 넘도록 남쪽을 지켜주는 거대한 보루이다.

또한 진남관 옆의 고소대에는 ‘타루비’(墮淚碑)라 불리는 충무공 추모비(보물1288호)가 있다. 공의 순절 6년 후인 1603년 휘하에 있던 군사들이 장군의 공덕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했다. 비문은 ‘영하수졸위통제사 이공순신입단갈명왈타루 개취양양인사양우이망기비즉루필타자야 만역삼십일년추립’(營下水卒爲統制使 李公舜臣立短碣名曰墮淚 蓋取襄陽人思洋祐而望其碑則淚必墮者也 萬歷三十一年秋立)이라고 적혀 있다. 즉 수영의 수군들이 통제사 이순신 공을 위하여 조그만 비석을 세우나니 이름은 타루이다. ‘중국 양양지방 사람들은 선정을 베푼 양우를 생각하면서 그 비를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렸다’는 고사를 인용한 것이다. 타루비 옆에는 1620년 전라좌수사 안륵의 주도로 건립된 ‘통제이공수군대첩비’가 있다. 관청 주도로 세워진 최초의 비석으로 빗돌은 이순신의 부하였고 이후 삼도수군통제사를 지낸 유형이 황해도 강음에서 실어왔다.

이와 함께 덕충동 마래산 기슭에는 1601년에 영의정 이항복이 발의한 뒤, 왕명을 받은 통제사 이시언이 충무공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충민사(忠愍祠)가 있다. 아산의 현충사나 통영의 충렬사보다 훨씬 앞서 세워져, 이순신을 모신 최초의 사당으로 알려져 있다.

1870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됐다가, 1971년부터 여수지역 유림들이 ‘정화 5개년사업’을 펼쳐 재건을 착수해 1978년에 완공을 보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해안시대 신해양관광지로 떠오르는 여수는 전라좌수영의 본거지로 화살의 재료인 시누대를 채취한 오동도, 거북선 등 병선을 제작한 선소(船所) 등 충무공의 애국충혼이 도처에 서려있는 생생한 역사의 현장이다.

〈광주시립민속박물관 학예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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