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아서] ① 베니스에 첫발을 딛다
지중해 물빛 닮은 자유로운 영혼 찾아 떠난다
2017년 04월 20일(목) 00:00

베니스의 명물 수상택시는 시민과 관광객을 실어나르는 주요 운송수단이다.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나가는 수상택시 주위로 이국의 정취가 넘친다.

나는 작년 가을에 베니스에서 배를 타고 그리스 크레타 섬까지 간 적이 있다. 영화나 책에서 보았던 쪽빛 물감을 풀어놓은 듯한 지중해의 물빛과 무시무종(無始無終)의 은유 같은 수평선과 조우하기 위해 크루즈여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굳이 동서와 남북의 문명이 교차했던 그리스의 크레타 섬만 보려고 했다면 굳이 베니스의 마르코 폴로 공항으로 가지 않고 바로 이스탄불 공항에서 내렸을 터이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 대문호 카잔차키스가 쓴 산문집 ‘지중해기행’을 일독하고 나서 그리스로 떠나는 크루즈 배를 탔다. 물론 대학시절에 사숙했던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는 카메라 가방에 챙긴 뒤였다.

따라서 연재제목인 ‘그리스인 조르바를 찾아서’는 역사적인 관점의 날줄인 셈이고, 눈에 담아온 ‘지중해의 물빛’은 글의 배경이라고 할 수 있는 씨줄의 공간이 될 것 같다. 날줄과 씨줄을 잘 엮은 촘촘한 직조(織造)의 기행문이 됐으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또한 이 글의 특징은 나의 대학시절 은사인 문학평론가이자 동국대학교 전 총장 홍기삼 박사의 선상강의를 단편적이나마 요약해서 기록할 것이라는 점이다. 사실 제자 몇 사람이 미수를 맞이한 은사를 모시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은사는 한사코 무임승차할 수 없다며 젊은 시절에 당신이 공부했던 헬레니즘이나 헤브라이즘, 르네상스, 고전주의, 낭만주의, 인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을 강의해 주셨던 것이다. 강의노트 없이 즉석에서 이루어진 선상강의였지만 놀라운 기억력, 예리한 통찰력, 격조 있는 언어 등으로 차려진 지식의 성찬을 맛보았으니 제자로서 정복(淨福)이 아닐 수 없었다.

나는 소설가로서 기록자 혹은 감상자로서 기행에 충실하려고 한다. 왜냐하면 역사전공자도 아닐 뿐더러 더욱이 철학자도 아닌 사람이 그리스 혹은 유럽의 종교와 역사를 넘나들며 이야기한다는 것은 분수를 모르는 지적 허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감흥이나 감상, 소회 등은 작가로서 이미 허락받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날것 그대로 쓰려고 한다. 이쯤이면 내가 왜 그리스인 조르바를 찾겠다고 했는지 속내를 들켜버린 셈이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역사가나 철학자의 지식을 내 것이라고 말하는 무례를 경계하고자 고백체의 제목을 의도적으로 붙인 것이다. 조르바 속에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남긴 눈먼 시인 호메로스와 니체를, 무엇에도 걸림 없이 살았던 영원한 자유인 원효와 경허를 떠올리는 것은 작가의 몫이 아니겠는가. 그렇다. 이번 여행의 목적 중 하나인데 조르바 속에서 원효나 경허를 찾고 싶었던 바, 쩨쩨하지 않고 흥과 끼가 넘쳐나는 한국인의 원형(原形)을 살피고자 갈망했던 것이다.



이스탄불 공항에서 베니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몇 시간을 기다린 것 같다. 무료함을 견디고자 카잔차키스의 ‘희랍인 조르바’를 카메라가방에서 꺼내보았지만 읽을 수가 없다. 발간된 지 오래된 책이라 활자가 너무 작다. 돋보기를 써야만 보이니 나도 묵은 사람임이 분명하다. 서가 한 구석에서 꽂힌 책을 뽑아 온 것이므로 고서처럼 퀴퀴한 곰팡이 냄새까지 난다. 이윽고 베니스행 비행기에 오른다. 마르코 폴로 공항까지는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다. 비행기는 지중해 상공을 난다. 두어 시간이 지나자 창밖으로 바다를 향해 부챗살 모습으로 뻗은 도시 하나가 언뜻 보이는가 싶더니 비행기가 부드럽게 착륙한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다. 손목시계의 시침을 두 시간 뒤로 돌린다. 시차 덕분에 마르코 폴로 공항이 준 시간의 선물이다. 이탈리아 4대 공항 중 하나지만 우리나라의 김해공항 정도이다. 공항에서 구도심까지는 13㎞쯤 떨어져 있다고 한다. 우리가 예약한 숙소는 공항과 마찬가지로 메스트레(Mestre) 지역이니 급히 움직일 필요는 없다. 일행은 어슬렁거리며 공항을 나선다. 섬들로 이뤄진 어항(漁港)인데도 비릿한 생선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마도 관광도시로 탈바꿈해서 그럴 것 같다.

마르코 폴로 공항. 처음 발을 딛는 곳이지만 낯익은 느낌이다. 학창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공항 이름 때문이다. 마르코 폴로는 ‘동방견문록’의 저자이다. 다 알다시피 마르코 폴로는 베네치아(베니스의 옛 지명)의 상인이었던 아버지 니콜로와 삼촌 마페오를 따라서 중국의 원나라를 향해 떠났다가 황제 쿠빌라이 칸의 배려로 16년 동안 머문 뒤 돌아온다. 이후 제노바 전쟁에 참전하는데 포로로 잡혀 동료 죄수이자 영국출신 작가인 루스티첼로에게 구술해 남긴 여행기가 바로 ‘동방견문록’인 것이다. 중학생 시절에 읽은 책이라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잊히지 않는 부분이 있다면 몽골에도 ‘문지방을 밟지 말라’는 금기가 있다는 구절이었다. 어린 시절부터 복 나가니까 문지방 밟지 말라는 지적을 어른들에게 자주 들었으므로 책 속의 그 구절이 몹시 신기했던 것이다.

건망증이 심한 나로서는 불가사의한 일 같기도 하다. 연재를 집필하기 위해 내 기억이 맞는지 ‘동방견문록’을 새삼 펴보니 다음과 같은 구절이 확실하게 있다.

‘궁궐의 모든 문과 대칸(大汗)에게 가는 여러 문마다 수문지기 두 명이 지키고 있다. 손에 몽둥이를 들고 문 양쪽에 한 명씩 서 있는데, 문을 출입하는 사람들이 문지방을 밟지 않도록 살펴보고 있다. 만약 누군가 문지방을 밟는다면 그의 옷을 벗긴 뒤 압수한다. 그러면 돈을 내고 사가거나 매를 맞고 가져가야 한다. 그들은 다른 지역의 방문자들이 문지방 금기를 모른다면 미리 관원을 파견하여 알려주어 위반이 생기지 않도록 한다. 그들은 궁궐 문의 문지방 밟는 것을 매우 불길한 징조로 보았기 때문이다.’

마르코 폴로는 원나라 궁궐 문에서 본 금기만 소개하고 있지만 사실은 몽골제국 어디에서나 퍼져 있었던 풍속이 아닐까 싶다. 이는 주거공간과 바깥세상을 구분하는 경계의 신성화(神聖化)에서 비롯된 금기라는 생각도 든다.

일행은 공항 지척에 있는 메스트레역 앞의 숙소에서 여장을 푼 뒤 곧장 산타루치아역까지 택시로 이동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점심은 메스트레역 옆의 맥도날드가게에서 각자 취향대로 해결하기로 하고. 열차로 갈 수 있는데도 기다리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본섬까지 택시를 타기로 한 것이다.

가을로 접어든 탓인지 관광객은 소문보다 덜하다. 베니스 전체 인구는 30여 만으로 우리나라 순천시 정도라고 보면 된다. 관광지인 본섬만의 인구는 4만8천여 명인데 하루 평균 관광객은 6만여 명이라고 하니 손님들이 주민의 숫자보다 많은 셈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듯 부작용이 제법 클 것 같다. 실제로 주민들이 환경오염, 혼잡과 소음 때문에 ‘우리는 당신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피켓을 들고 관광객들 앞에서 시위했다는 기사를 어느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결국 베니스 시청은 일일 관광객 수를 조절하겠다고 발표했다니 우리 처지에서 보면 행복한 비명 같다.

11월 초인데 날씨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해가 엷은 구름장 뒤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청명한 날도 아니고 우중충한 날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래도 가끔 순간적이나마 금싸라기 같은 햇살이 축복처럼 쏟아져 칙칙한 고건물들의 표정이 밝아지곤 한다. 수상택시(Water Taxi) 승차장은 산타루치아역으로 가는 다리 밑에 있다. 참고로 산타루치아는 나폴리를 지켜주는 수호성녀라고 한다. 일행은 중년의 과묵한 선장과 흥정하고는 곧장 승선한다. 수상택시 말고도 수상버스, 노를 젓는 거룻배 같은 곤돌라가 있지만 일행은 쾌속에 몸을 맡기고 싶었던 것이다. 창공의 빛난 별, 물 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아름다운 동산, 행복의 나폴리/ 산천과 초목들 기다리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정든 나라에 행복아 길어라/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나는 물살을 가르며 달리기 시작한 수상택시 안에서 나폴리 어부들이 불렀다는 민요 ‘산타루치아’를 흥얼거려 본다. 때마침 갈매기 한 마리가 나타나 장단 맞추듯 너울너울 날갯짓을 해준다.

/베니스=글·사진 정찬주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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