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1000년 호남을 바로 세우자 <2>동아시아에서 바라본 전라도
역사·문화·종교·환경 … 호남의 전통, 한류를 잉태했다
2017년 01월 10일(화) 00:00
필자는 2016년 12월31부터 2017년 1월2일까지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에서 꼭 2년을 보내며 송구영신의 행사와 함께 새해 첫날 천지 위에서 새해를 맞았다. 금년으로 18년째 빠짐없이 하는 행사지만 매년 새롭고 가슴 벅찬 감명을 받으면서 새해 백두산 정기를 받아 함께 참여하지 못한 분들에게 마음으로 나누어주는 행사를 해왔는데 새해 백두산 정기를 광주일보 독자들에게 나누어 드린다.



호남은 한반도의 서남쪽에 위치하여 바다를 끼고 있으면서 비교적 기후가 온화하고 비옥하며 넓은 농토를 지녀 예로부터 풍부한 농산물과 수산자원을 생산해 지역민들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를 배부르게 해왔다.

더 나아가 호남이 오랜 전통문화의 산실로서 역할을 해왔고 우리 한문화의 진수를 간직하여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여러 나라에도 크게 기여하여 왔다는 것은 부인할 수도 숨길 수도 없는 엄연한 사실이다.

호남의 역사를 통해 동아시아에서 위치와 위상을 살펴보면 언제나 역사를 주도해 온 흔적이 뚜렷이 나타나고 있다. 일찍이 우리 민족의 형성에 대해서는 여러 갈래의 학설이 있어왔다.

한민족 기원의 첫 갈래는 이렇다. 시베리아의 바이칼호 지역에서 살던 주민들이 알타이산맥을 넘어 이동을 계속하면서, 흑룡강을 따라 이주를 계속하면서 토착민들과 결합하고 남쪽으로 이동하여 청동기 문화를 갖고 한반도의 동해안을 따라 들어와 한반도의 선주민들과 결합해 종족을 이룸으로써 한민족 기원의 한 갈래를 형성했다.

그들이 자리 잡은 지역이 주로 농경이 용이한 한강변과 금강·영산강· 섬진강·낙동강 유역으로 추정하고 있다. 또 한 갈래는 중국 내몽고지역에서 발원한 요하(遼河) 중상류 및 대능하 유역에서 현재 발견되고 있는, 기원전 7000년을 기점으로 한 세계 최고의 문명이라고 말하는 소위 요하문명으로부터 비롯한다.

요하문명은 소하서 문화-흥륭와 문화-사해 문화-조보구 문화 등의 신석기 문화와 이어서 신석기 청동병용기 문화인 홍산 문화-소하연 문화를 거쳐 청동기문화를 이어온 하가점 하층문화를 포함하고 있는데, 이런 문화의 주인공들 가운데 한 갈래가 기후변화로 인해 자기들의 터전을 버리고 농경이 용이한 지역으로 이동한다.

중국의 산동지방과 한반도 서해안을 따라 이동한 동이족(東夷族) 본류 종족인 예맥(濊貊)이 자리 잡은 곳이 한반도의 대동강, 예성강으로부터 남쪽으로 한강, 금강, 섬진강, 영산강 등 한반도 서해안이다. 우리 한반도에는 대략 큰 줄기의 종족으로는 한족과 예맥족을 들 수 있다.

호남지역에서는 선주민 한족들이 자리 잡은 지역에 예맥족이 대거 이주해 와서 다른 지역과 다르게 두 종족이 함께 자리하면서 처음에는 서로의 이해관계로 인한 다툼도 많았지만 서로가 융합하면서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기도 하였다.

특히 호남지역에는 큰 두 줄기의 종족이 하나의 민족인 한민족으로 태어나는 과정은 아마 계속 이어지는 다른 전문가들이 여러 분야에서 잘 분석해 줄 것으로 본다.

무엇보다도 이질적인 집단의 구성원들 속에서 하나를 이루는 과정에서 만들어낸 역사적, 문화적, 종교적, 환경적인 여러 문제들이 폭 넓으면서 섬세하고 자상한 특색을 갖고 있으며 우리나라, 주변 지역, 나아가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영향을 끼쳐 우리나라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 잡은 것은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역사적으로는 백제 근초고왕이 동북아의 패자로 군림하여 요서지방, 산동반도와 일본 규수지역을 지배하였고 오랫 동안 일본에 문화를 전파하고 일본의 문명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

백제 멸망 이후에 백제 유민들은 일본에 새로운 문화를 전파하여 일본을 더욱 문명된 세계로 발전시킴으로써 현재에도 일본 왕실마저 조상 국으로 직접 말하고 있다. 이같은 역사적 사례 외에도 동아시아에서 호남이 갖는 위상은 다음의 사례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청해진(완도)을 열어 서남해를 호령하던 장보고의 기개가 있었다. 국가가 누란의 위기를 당한 임진왜란 당시에 분연히 일어난 의병장 고경명, 김천일, 김덕령 등의 활동이 있었다. 폭정과 외세를 배격하여 분연히 일어났던 전봉준의 동학의거가 있었다. 일제강점기 학생운동에 불을 붙인 나주학생운동이 있었다.

이같이 많은 의로운 일들을 만들어 간 호남인의 기개를 통해 오늘날 우리는 호남인들이 갖고 있는 불굴의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이런 호남인의 기개, 불굴의 의지는 다른 지역과 달리 이질적인 사람들이 굳게 뭉쳐 하나가 되어 발휘하는 힘이 아닐까 한다.

오늘날 호남인들이 선도해가고 있는 음악, 미술, 스포츠, 오락 등과 같은 여러 분야에서 국위선양은 동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것으로 자리매김 한지가 오래다. 이런 국위선양 위상은 한국의 명가 사례에서 찾아볼 수 있는 호남인의 특질과 저력을 면면히 이어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호남에 자리 잡은 그러한 한국의 명가를 소개하면 대표적인 전통가옥으로 해남의 고산 윤선도의 녹우당(綠雨堂), 남원 수지면 홈실의 죽산박씨 몽심재(夢心齋), 광주광산구 너브실의 애일당(愛日堂), 전북에 있는 백낙중의 학인당(學忍堂), 표암 송영구의 망모당(望慕堂), 인촌 김성수의 생가 등이 유명하다.

특히 표암 송영구의 망모당 현판은 중국의 문장가 주지번(朱之蕃)의 글씨인데 주지번이 사신으로 조선에 왔다가 연행사로 중국을 갔던 송영구와 교류하면서 그의 인품을 존경하여 서울에서 먼 길 익산까지 찾아가 현판을 써 주면서 존경의 표시를 하고 전주 객관의 현판인 풍패지간(豊沛之館)이란 현판을 써주고 남원의 안처순 정자 영사정(永思亭)의 현판도 써 준 것으로 전한다,

이들 명가들이 만들어간 문화의 면면을 보면 해남의 고산 윤선도 고택은 덕음산 자락 50만평의 장원을 소유하고 만 여평의 대지에 자리 잡은 규모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한옥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곳에서 지은 40수의 어부사시사는 너무나 유명하여 오늘날까지도 전하고 있다.

또한 정다산은 18년 동안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하면서 그의 외가인 고산 윤선도의 수많은 장서를 읽고 500여권의 저술을 남겨 오늘날까지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리산 밑의 호음실의 죽산박씨 종택 몽심재는 호남의 명당으로 특히 원불교 종교지도자를 많이 배출하였으며 만석꾼의 재산가로 주위의 많은 가난한 사람들을 규휼하기도 하여 음덕을 입은 데다가 명당으로 500년을 지탱하기도 한 명문가로 널리 알려져 있다.

광주 너브실(광곡마을)의 기세훈가 사랑채인 애일당은 풍수지리상 명당 중 명당으로 퇴계 이황과 필적할 수 있을 정도의 대학자 기대승을 배출한 가문이며 창평의 고경명가와 더불어 호남의 대표적 명 가문이다.

특히 너브실은 기씨 집성촌으로서 고봉 기대승을 숭모하는 월봉서원이 있고 고봉 사상을 연구하는 고봉 학술원이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의 경치가 빼어난 곳이기도 하다.

이외에도 서화, 판소리, 음식, 민속 등 다방면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것으로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고 특출하여 호남의 전통이 바로 세계적인 한국의 자랑거리가 되고 있다.

오늘날, 오래 동안 몸 담고 있는 이곳 북간도 땅에서도 전라도 먹거리는 한국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매김 한지 오래다. 일제 강점기에 만주 땅에 이주한 전라도 사람들은 전통문화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지키면서 꼭 함께 어울려 마을을 이루고 상부상조하면서 살아왔다. 일제강점기 이래 오늘날까지 호남출신 사람들의 공동체 문화, 전통문화는 호남인의 부지런한 심성과 공동체문화 뿐 아니라 나아가 면면히 이어져온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까지도 일깨워주고 있다.

/양대언 연변대 교수·한국학 연구소장





*양대언 프로필

-연변대 과학기술대학 사회교육원장

-연변문화발전추진회 상임고문

-한국고대사 연구원 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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