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惡)의 평범성’에 관하여
2016년 07월 29일(금) 00:00
한 번에 500만 원. 삼성 이건희 회장의 성매매 의혹이 ‘뉴스타파’에 의해 보도됐다. 주요 일간지에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지만(그 이유야 다들 짐작하실 테고), 회장님께서 여인들을 만나는 장면이 담긴 동영상은 지금도 널리 유포되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서 그동안 짐작해 왔던 ‘1% 귀족’들의 일탈(?)을 두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

오늘은 국민교육헌장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느닷없이 웬 교육헌장이냐 할 수 있겠다. 하지만 다 ‘그 사람’ 때문이다. 세상에는 1%의 귀족이 있다는 ‘1 대 99의 현실’을 우리에게 아프게 알려 주었던, 국민을 개·돼지로 여겼다가 ‘국민모독죄’에 걸려 파면당한 바로 그 사람. 그가 맡은 교육부 정책기획관이란 자리가 역사교과서 국정화 작업 등을 추진한 교육부 핵심 보직이었고, 국정교과서 추진은 유신시절 국민교육헌장 제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국민교육헌장은 1968년 12월 5일 박정희 대통령에 의해 선포되었다. 당시 모든 국정교과서 첫 장에는 헌장 전문을 게재하도록 했다. 또한 각급 학교 학생들은 그리 짧지 않은 전문을 무조건 암기해야 했다. 바로 그 직전 세대가 ‘반공을 국시(國是)의 제일의(第一義)로 삼고’로 시작하는 박정희의 ‘혁명공약’을 외워야 했던 것처럼.(군대 시절에 잘 생각이 나지 않아 ‘반공을 국수로 삶아먹고’라 했다가 뒈지게 맞았다는 사람도 있다)

어처구니없는 시대이긴 했지만 그래도 세월이 흐르니 그것도 이젠 몹쓸 추억이 되었다. 지금 50대 중반에서 60대 중반의 나이라면, 중고등학교 시절 헌장을 못 외워 매를 맞았던 기억을 갖고 있는 이들도 한둘이 아닐 것이다.

머리가 크게 나쁘지는 않았던지 전문을 달달 외웠던 터라, 헌장의 첫 부분만큼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사람이 태어나면 그냥 태어나지 무슨 사명을 띠고 태어날 것인가. 세월이 흐른 뒤 한 후배가 들려준 패러디를 듣고 파안대소(破顔大笑)한 적도 있다. “우리는 부모님의 일시적 장난(흥분)에 의해 이 땅에 태어났다.”

어찌 됐든 우리는 당시 주입식 교육에 의해 국민교육헌장이 천하의 명문(名文)인 줄로만 알고 자랐다. 그러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우리의 교육지표 사건’이 터지고서야 그것이 권위주의적·국수주의적·전체주의적이어서 아주 문제가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국민교육헌장 제정 소식에 자유중국의 총통 장제스(蔣介石)가‘기선을 빼앗겼다’며 부러워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한참 뒤였다. 하물며 이게 1890년(메이지 23년) 발표된 일본 무쓰히토(睦仁) 천왕의 ‘교육칙어’(敎育勅語)를 본떠 만들었다는 사실을 당시에야 어찌 알았겠는가.

일본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국 장교로 복무했던 박정희에게 저 ‘교육칙어’는 너무도 친숙했을 것이고, 거기에 담긴 국가주의·집단주의는 그를 매료시켰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 같은 문장으로 국민들의 무조건적인 충성을 강요했겠는가.

일본의 ‘교육칙어’는 2차 대전 직후인 1948년 폐지됐다. 국민교육헌장은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군사정권의 ‘권위주의 잔재’라는 이유로 교과서에서 삭제되더니, 급기야 2003년에는 선포된 지 35년 만에 폐지되었다.

그럼에도 이미 까마득히 지난 오래전의 일을 오늘 되새기는 것은 단순한 복고(復古) 취미 때문이 결코 아니다. 지금 박정희 부녀가 대를 이어서 대통령을 하면서 모든 것이 다시 그 시대로 돌아가고 있는 것만 같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서울 한복판에서 일본 자위대 창설 62주년 기념행사가 열리고, 이날 행사에 우리나라 국방부와 외교부 관계자들이 참석한 일만 봐도 그렇다. 아베 정권이 과거 식민지 지배에 대한 반성과 사죄는커녕 집단 자위권 행사를 위해 평화헌법까지 개정하려는 마당에, 서울 한복판에서 대놓고 자위대 행사로 우리 국민을 욕보인 것이다. 더군다나 그날 한쪽에서는 일본의 군대에 의해 자행되었던 한 위안부 피해자의 영결식이 진행되고 있었다는데….

그런데도 정부 측에선 일본에 행사를 허용하고, 참석 인사는 철저하게 비공개에 부쳤으며, 국내 언론의 취재는 막았다고 한다. 그리고 파문이 일자 ‘정례적인 외교 행사’라느니 ‘한-일 국방 교류와 협력 차원의 참석’이라느니 하며 얼빠진 소리를 늘어놨다. 국방 교류와 협력 좋아하네. 무슨 얼어 죽을 놈의 교류 협력인가.

이게 다 대통령 때문이다. 지나가다 개똥만 밟아도 ‘다 노무현 탓’이라 하던 시절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있었지만, 그때 그 말은 다소 농(弄)이 섞인 ‘놀이’ 성격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지금의 ‘대통령 탓’은 아무래도 ‘팩트’(사실)일시 분명하다. 놀랍게도 침략국의 수도 한가운데서 자신들의 군대 창설 기념일을 치를 수 있도록 합의해 주었다는 것은, 박 대통령의 역사의식 부재 아니고는 그 어떤 말로도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그게 설혹 대통령의 결재 사항이 아니었다 하더라도)

물론 나는 박근혜 대통령의 순수한 애국심까지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죽음을 통보받고도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라고 했다던가. 10대 초반부터 청와대에서 대통령의 딸로 살다가 퍼스트레이디 역할까지 했으니 충분히 그럴 만하다. 문제는 수십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러한 국가주의적 사고방식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우습게도 이게 다 ‘개인에 대한 국가의 절대 우위를 주장하는 파시즘의 속성’을 담은 국민교육헌장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사람은 배운 대로 행동한다. 그것은 대통령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그만큼 교육의 힘은 대단하다. 박 대통령 역시 부친으로부터 아무런 의심 없이 국가주의 가치관을 물려받았을 것이다.

영화로도 제작된 소설 ‘책 읽어주는 남자’가 갑자기 생각난다. 비록 선량한 사람이라 해도 제대로 박힌 의식이 없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악을 저지를 수 있다는,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을 가장 잘 보여 주는 이야기다. 글자도 읽을 줄 모르는 주인공 한나 슈미트의 ‘문맹’(文盲)은 2차 세계대전 중 독일인들의 ‘무지’(無知)를 상징한다. “난 그저 내 일을 했을 뿐이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몰랐다.” 그래도 그녀는 유죄였다.

우리의 대통령은 어떻게 될까. 훗날 “그저 나는 국가를 위해서 열심히 일했을 뿐이다”라고 말한다면 모든 게 용서될까? 2년도 채 되지 않은 기간이지만 남은 대통령의 임기가 너무 길게만 느껴지는 요즘이다.



〈주필〉

실시간 핫이슈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