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문화 원류를 찾아서] 게세르 신화 단군신화 닮았다
[9부 몽골 브럇트편-영웅서사시]
하늘신 탱그리나 탱크리 둘째 아들 게세르
지상에 내려와 악신 제압하고 나라 세워
서낭당 ‘후셀링 오보’·단군신화 ‘신단수’
인간 위한 신화·인간적 영웅 등장 등 유사
동북아·시베리아서 발견되는 영웅 서사시
2016년 03월 21일(월) 00:00

게세르 신화에 등장하는 후셀링오보는 일종의 우리네 서낭당과 같은 신성한 공간이다. 사진은 지난해 12월 26일 러시아 이르쿠츠크 브럇트 마을 입구의 신성한 공간을 둘러보고 있는 관광객.

여기 두 가지의 옛 이야기가 있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살짝 이야기를 흘리자면, 많은 학자와 사람들은 이 두 이야기가 매우 유사하다고 여긴다.

하나의 이야기는 시베리아 일대에서 매우 광범위하게 전해져 온다. 게세르(Geser) 신화는 동북아시아와 시베리아를 아우르는 넓은 지역에서 발견되는 영웅 서사시의 제목이자 등장 인물의 이름이다.

게세르는 하늘에 사는 가장 높은 신, 탱그리나 탱그리의 아들이다. 게세르는 하늘의 신의 아들로 여겨진다. ‘아바이’ 게세르는 전쟁영웅 서사시다. 하늘에 살던 게세르가 혼란에 빠진 지상계에 내려와 평화를 가져온다는 내용이다. 흔히 아바이는 아버지 등 존경의 대상을 부르는 말이다.

게세르 신화의 얼개는 이렇다. 신들의 전쟁에서 악신들이 지상으로 추방되자 지상은 혼란에 빠진다. 이때 아바이 게세르가 33명의 무사를 이끌고 내려와 악신을 무찌르고 지상의 평화를 가져온다. 게세르는 지상에서 전투를 벌여 승리한 뒤 결혼해서 아들을 낳는다. 게세르는 악한 무리와 전투를 벌인 뒤 지상의 악을 멸하고 제국을 건설한다. 그후 자손들과 승리의 주역들은 동서남북으로 확산, 제국을 확장시킨다.

게세르 신화는 영원한 푸른 하늘이 존재하고, 인계를 지배하기 위해 게세르가 인간 세상으로 나타나게 된다. 이 과정에 신비한 상징조작이 일어나고, 신시가 열리고, 토템이 생겨나고, 다양한 하부 종적들이 토템을 통해 생겨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이야기는 단군신화다. 단군신화도 닮은 꼴이다. 지상세계의 문제를 목격한 환웅이 환인의 허락을 얻어 무리 3000명과 함께 지상으로 내려온다. 이후 환웅은 신시(神市)로 일컬어지는 하늘신의 직접 통치구역을 설정하고 우사, 풍백, 운사 등과 함께 지상에서 인간들을 괴롭히는 악의 무리를 제압한 뒤 지상과 우주의 조화를 복원시킨다.

학자들은 게세르 신화에서 하늘신인 히르마스가 맏아들이 아닌 둘째(게세르)를 내려보내는 것과 단군신화에서 적자(嫡子)가 아닌 서자(庶子)를 보내는 것도 유사한 이야기 구조로 보고 있다.

이들 이야기의 신화적 구조도 흥미롭다. 단군신화는 하늘 세계인 환국과 태백산정에 세워진 환웅천왕의 신시, 신단수 등 성선과 곰신과 호랑이신이 거주하는 동굴, 웅녀의 아들 단군이 건국한 조선, 산신인 아사달산 등을 배경으로 한다.

게세르 신화의 구조는 좀 더 복잡하다. 악신과 선신이 동서로 나눠진 하늘세계, 하늘의 영웅 게세르가 악의 화신(망가스)을 정탐하는 중간계, 300가지 언어를 가진 만물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후셀링오보 서낭당이 있는 신성공간, 게세르가 인간으로 태어난 하탄강, 악의 화신 망가스들의 세계인 호닌호트, 영웅신이 백성들과 행복을 누리는 금강사원의 놀롬평원 등이 주요 신화 공간이다.

두 신화의 구조가 다소 복잡하게 얽혔지만 학자들은 기본적 신화적 우주관은 삼단적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요약하자면, 선신이 사는 영상계와 악령의 공간 암흑하계와 그 중간인 인간세계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브럇트인들은 여전히 하늘에는 신이 살고, 땅에는 조상과 악령이 존재하며, 땅 위에는 인간이 살고 있다고 믿는다.

단군신화와 게세르신화에서 신성한 공간(상계)의 특징은 하늘의 영웅이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며 관찰한다는 점이다. 게세르신화에서는 아예 인간세계와 가까운 곳으로 내려와 3년 동안 중간계를 날아다니며 지상세계를 탐색하기도 한다.

두 신화의 차이도 분명하다. 게세르신화에서는 퇴치대상인 망가스가 거주하는 곳이 등장한다. 하지만 단군신화에서는 하계에 대한 서사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일부 학자들은 이를 하계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니라 영웅에 의해 구제되야 할 부조리한 지상세계를 상징적으로 형상화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 하계가 지표면을 중심으로 반드시 지하세계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이들 신화 속 영웅이 힘을 발휘하는 곳도 상계가 아니라 지상이라는 점도 유사하다. 지상세계에서의 일들이 이들 신화에서 매우 중요하게 다뤄지고 있다.

이들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공통점은 신단수의 의미에서 더욱 확실해진다. 단군신화에서 신단수에서 곰과 호랑이가 인간이 되기를 빌어 곰이 웅녀가 됐고, 단군을 잉태했다.

게세르신화에서는 신단수와 비슷한 기능으로 후셀링 오보라는 서낭당이 등장한다. 오보는 현재도 바이칼, 몽골 일대 마을에 흔하게 내려져오고 있다. 이 곳에서 300가지 언어를 가진 여러 만물들의 소원이 통역되고 그것을 통하여 오보군지드라는 산신령은 중생의 소원을 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산신령 오보군지드는 온통 호랑이 가죽으로 둘러싸고 동굴에 살기도 한다.

학자들은 이들 신화 속 곰과 호랑이 역시 기존 신화에서 등장하는 동물형 산신의 변이형으로 보고 있다. 단군신화 속 곰이 등장해 사람을 잉태하는 아리송한(?) 부분도 이 같은 범주 속에서 이해될 수 있다.

또 이들 신화가 인간의 수호신인 영웅신에 집착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단군신화에서는 천신의 아들 환웅이 산신격인 곰과 호랑이를 축출하거나 포섭하고, 게세르 신화에서는 산신을 차지하기 위해 천신들이 전쟁을 하기도 한다.

이 같은 영웅 신화는 본질적으로 신을 위한 신화가 아니라 인간을 위한 신화이기 때문에 인간적인 영웅의 형상이 자주 등장한다는 점도 유사하다.

이처럼 게세르 신화는 단군신화를 이해하는 또 다른 텍스트이며, 바이칼 일대를 무대로 수많은 설화와 전설을 만들어 낸 고대 종족의 문화 원형을 찾아가는 중요한 길잡이인 셈이다.

/kroh@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