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의 문화자산, 박물관 산책 - 김미은 여론매체부장·편집국 부국장
2026년 01월 21일(수) 00:20
지난해 말 10여년 만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찾았다. 서울 방문 땐 언제나 박물관보다는 미술관이었지만 이번에는 ‘국중박’이 일순위였다. 국중박은 ‘케이팝데몬헌터스’의 인기로 연일 화제의 중심이었다. 지난해 방문객은 2024년보다 72%가 증가한 650만명에 달했다. 2024년 1·2위를 차지한 루브르박물관과 바티칸박물관 방문객은 874만명과 683만명이었다. 박물관 굿즈인 ‘뮷즈(MU:DS)’ 매출액은 400억원을 넘어섰다.



개인이 일군 ‘비움박물관’ 10주년

박물관은 평일인데도 소문처럼 사람이 많았다. 국보 ‘반가사유상’ 두 점이 나란히 전시된 ‘사유의 방’은 단연 압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기증관’, 카타르 도하 이슬람예술박물관과 협업한 ‘이슬람관’이 좋았다. 화제의 뮷즈 판매장은 사람들로 넘쳐났다. 품절 표시가 붙어 있는 ‘취객선비 3인방 변색잔’을 비롯해 ‘까치 호랑이 뱃지’ 등 상품 종류에 놀랐다. 오랜만의 국중박 나들이에, 국립광주박물관을 떠올렸다.

지난해말 문을 연 도자문화관이 궁금해 며칠 전 국립광주박물관을 찾았다. 마지막 방문이 2022년 ‘이건희 회장 기증 특별전’이었으니 오랜만이었다. 본관에서는 마침 도자문화관 개관을 기념해 ‘푸른 세상을 빚다-고려 상형 청자’전(3월15일까지)이 열리고 있었다. 동물, 식물, 인물 등의 형상을 본뜬 도자기들이라 아이들도 흥미롭게 감상하는 모습이었다.

4년간의 준비 기간을 거쳐 국립박물관 최초로 문을 연 도자문화관은 지상 2층 규모로 총 7000여 점을 전시중이다. 한국도자 1000년의 숨결이 깃든 500여 점을 만나는 전시실과 함께 무엇보다 인상적이었던 건 ‘신안해저 도자 전시실’이었다. 마치 역사의 한 장면 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 들어서다. 1975년 신안 증도 앞바다에서 한 어부가 68㎝짜리 청자 꽃병을 발굴하며 시작된 ‘신안 해저선’ 유물 발굴은 9년간 이어졌고 커다란 배와 2만 7000점의 유물을 확보했다. 전시장에는 바다 밑 진흙 속에서 700년간 원형을 유지한 청자·백자·흑유, 동전 등 6500여점을 만날 수 있다.

유물도 유물이지만 무엇보다 관람객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개관 초라 방문객이 많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광주에서 열렸던 그 어느 전시에서도 이렇게 몰입하며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휠체어에 탄 노모에게 작품을 설명해주는 아들, 아들의 이야기를 듣고 옛 시절을 떠올리던 어머니, 아이들과 함께 도자기 제작 과정 영상을 하나하나를 찾아보던 부부, 유물을 꼼꼼히 살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던 젊은 커플까지 모두가 전시에 몰입한듯했다.



신안해저선 만나는 ‘도자문화관’

국가가 나서 수집한 수많은 유물에 감탄하다 어딘가에 마치 설치미술처럼 전시돼 있는 수백 개의 ‘흰 막사발’과 ‘항아리’가 생각났다. 아름다운 베개 자수, 커다란 똥 항아리, 어둠을 밝히는 등잔, 누군가의 먹을거리가 담겼을 쪽박, 갓 등 수 만점의 민속용품도 떠올렸다. 올해 개관 10주년을 맞는 ‘비움박물관’에 전시된 우리 삶의 흔적들이다. 관장 ‘홀로’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발품을 팔아 사라져가는 것들을 한 자리에 모은 비움박물관의 소장품을 볼 때마다 경이로움을 느낀다.

황지우 시인은 2016년 개관 당시 “비움박물관 컬렉션은 1960년대 전후 우리네 ‘삶의 꼴’이 근대 이행의 진공청소기 속으로 빨려들어감으로써 소거해 버린 ‘상실의 시간들’을 아슬아슬하게 붙잡아둔 생활사의 보고”라고 말했었다.

방명록에는 담긴 글귀도 마음을 울린다. 이제는 세상에 없는 엄마를 떠올리게 해주어서, 수십년만에 다시 찾은 고국의 진짜 모습을 알게 해주어서 고맙다는 글귀가 눈길을 끌고 ‘색다른 한국의 모습’을 알 수 있었다며 찬사를 보낸 외국인들의 글도 이어진다.

아쉽게도 아직까지 지역에서 비움박물관의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다. 얼마 전 중학생 아들과 박물관을 다시 찾은 부산의 한 교육자처럼 외지 방문객들의 반응은 열렬한 데 비해 지역민들의 호응은 낮은 편이다. 가까이 있어 소중함을 모르는 것일까.

지역에는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고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많다. 구석구석에 박혀 있는 이런 공간들은 도시의 모세혈관과 같다. 소중한 공간을 지키고 발전시키는 것은 우리들의 몫이다.

금관을 보러 경주국립박물관으로, ‘백제대향로관’을 찾아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떠나듯 신안해저선의 흔적과 한국도자기의 역사를 만나러 국립광주박물관으로 전국민의 발길이 이어지면 좋겠다. 더불어 비움박물관 등 민간이 운영하는 공간에도 관심을 기울이면 좋겠다. 우선 두 박물관을 먼저 방문해 보시라. 시간을 넉넉히 갖고 느긋이 관람하며 역사 속으로 빠져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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