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왔다 - 고성혁 시인
2025년 12월 10일(수) 00:20
겨울이 왔다. 돌아온 탕자처럼 느지막이. 황금 들판도 잿빛으로 변한 지 오래, 가로수 아래 낙엽마저 흔적 없이 자취를 감추고 호호, 입김으로 손을 녹여도 시리기만 한 바야흐로 겨울이 왔다. 새벽산책길에 봤던 정다운 이들을 볼 수 없다. 작은 자전거를 타며 어린애처럼 웃던 영감님, 보행보조기를 밀며 오가던 할머니의 건강 하라는 인사, 손을 맞잡고 들길을 거닐던 두 노인의 정겨운 모습까지. 추위 때문에 새벽 풍경이 너무 적막하다.

대추를 따먹고 탱자를 따 추억의 냄새를 맡던, 피어오른 물안개로 몇 미터 앞도 볼 수 없었던 가을이 속절없이 스러지고 황갈색 갈대가 흔들리는 겨울이 온 것이다. 역대 가장 기온이 높은 시월이라며 그 때문에 무등산 단풍이 이십 일이나 늦게 왔다는 뉴스를 들은 게 엊그제인데 돌아보니 혹한의 겨울이 빗장을 열었다. 겨울 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우리. 하지만 겨울이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어 가슴을 열면 다른 것도 보인다.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십 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이 아니라 운명이 묶였으면”(문정희, ‘한계령 연가’ 부분)

한 겨울의 폭설에 대한 영탄과 그것을 뛰어넘는 운명이라니, 그리움이라니. 파벽(破壁)의 반전이다. 눈이 부시도록 백설이 날리는 날,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운명으로 꽁꽁 묶인다는 건 얼마나 가슴 뛰는 일인가.

“바람을 찍어 와.” 선배의 말에 흔들리는 현수막을 찍어 혼이 났던 젊은 기자는 17년이 지난 어느 추운 날, 비를 맞으며 낙엽을 찍었다. 초점이 나가고 리듬이 어긋나고 흐름이 바뀌어 다시 찍기를 예순일곱 장 째. 느닷없는 자동차 헤드라이트가 비를 훑는 우연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동그마니 찍혔다. 비바람 사이의 틈을 뚫은 광휘의 덕분이었으니 양자역학의 값진 예술이 아닐 수 없다.(이준헌 님) 겨울이야말로 우연의 틈을 넘어 추위로 예술을 깎아내는 계절이기도 하다.

그러나 겨울은 무엇보다 침잠의 계절이다. 미셀 투르니에와 사진작가 에두아르 부바가 공동으로 펴낸 사진집 ‘뒷모습’을 보면 사진 속 사람들 모두 등을 보이고 있다. 뒷모습은 정직하다. 얼굴처럼 표정을 억지로 만들어내지 않는다. 뒷모습은 나타내 보이려는 세계가 아니라 그저 존재하는 세계다.

쟁기를 걸머진 농부의 마른 등을 보며 “땅에서 보리와 밀과 벼를 거두어들이는 게 천직인 저 사람이 왜 저토록 영양실조로 보여야 한단 말인가?” 라는 미셀 투르니에의 물음을 읽으면 가슴이 저린다. 꾸며 낼 수 없는 정직하고 진실한 모습으로서의 등과 어깨뿐인 뒷모습. 크고 깊고 순정한 울림이다.

우리 삶에서 정면에 대응하는 뒷면을 떠올린다면 그것은 봄에 대비되는 겨울이고, 청춘에 대비되는 노년일 것이다. ‘뒷모습’은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삶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의 사유를 준다. 사라지고 흩어져 결국 ‘모두 죽는’ 존재로서의 우리는 어떤 뒷모습이어야 할까?

추운 겨울을 맞을 때마다 육십 년 전의 사금파리가 박혔던 부랑아보호소의 시멘트 담장이 떠오른다. 담장 위로 먹을 걸 달라고 손을 흔들던 키 작은 아이들의 고사리 같은 손, 그리고 끝내 터지던 울음소리. 겨울 내내 눈밭에서 시금치를 캔 노동으로 우리를 먹였던 어머니. 생각해보면 그 광경이, 어머니가, 아직도 집 한 칸 없이 서울 바닥을 전전하는 가난한 형제들이 내 인생을 점검하는 펜치와 장도리, 보철물(補綴物) 이었다. 추위로 움츠러든 지금의 나를 돌아본다. 내가 가진 불필요한 소유와 아직도 떨구지 못한 탐욕과 내가 행하는 거친 말들과 오래 된 나의 비굴함을.

“올해도 참나무 잎 산비알에 우수수 떨어지고/ 올해도 꽃 진 들에 억새풀 가울 겨울 흔들리고/ 올해도 살얼음 어느 강가 새들은 가고 없는데/ 구름 사이로 별이 뜨듯 나는 홀로 살아 있구나”(도종환, ‘초겨울’ 전문) 시인의 말이 뼈에 사무친다. 죽어 사라질 때까지 부디 이 겨울의 상념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시간 핫뉴스

많이 본 뉴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