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주 남평 ‘글라렛 수도원’] 지친 자들이여, 여기로 오라 … 모두를 환대하는 수도원
2025년 12월 10일(수) 07:30
1996년 개원…일반인 대상 수도원 스테이 운영
숙박동·24시간 무인카페·도서관·성당 등 이용
비신자 이용률 30%…“시크릿 가든으로 여기길”
수도원 아래 ‘남평미술관’ 개관…또다른 볼거리

남평에 위치한 가톨릭 글라렛 선교수도회 글라렛 영성의 집은 비신도들도 참여할 수 있는 수도원 스테이을 운영한다. 수도원 내의 작은 성당 역시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나주에도 수도원이 있네.”

올 초 취재 차 나주시에 들렀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 남평에서 낯선 이정표를 발견하고 차를 돌렸다. 가톨릭 글라렛 선교수도회 글라렛 영성의 집.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주변을 산책하는데 아담한 ‘수도원 창고카페’가 눈길을 붙잡았다. 무인 카페라 홀로 창가에 앉아 커피 한잔 마시며 잠시 머물다 돌아왔다.

11월 말 저녁 수도원을 다시 찾았다. 나주에서 100회 넘게 음악회를 이어가고 있는 무지크바움 하우스 콘서트 ‘저물녘의 노래’ 덕이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미영, 기타리스트 김정열 듀오가 ‘아베 마리아’를 연주하는 순간, 수도원의 작은 성당은 안식의 장소가 됐다. 관람객 대부분은 수도원을 처음 찾은 이들이었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참 좋다고 모두들 한마디씩 했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수도원 스테이

가톨릭 신자 뿐 아니라 모두에게 열린 공간으로, 수도원 스테이도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며칠 뒤 취재를 요청했다. 주차장에서 수도원으로 가는 길, 사람들은 인자한 모습의 작은 조각상을 만나게 된다. ‘쉬지 않고 일하는 사도’로 알려진 글라렛 선교회의 창시자 안토니오 마니아 글라렛 주교다. 마치 어린아이와도 같은 모습의 조각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무장해제시킨다.

1849년에 설립된 글라렛 선교수도회는 전 세계 67개국서 370여개 공동체를 운영중이다. 한국에는 1985년 진출해 현재 서울, 부천, 속초, 나주 지역에서 활동하고 있다. 1996년 문을 연 나주 글라렛 영성의 집에는 현재 신부 4명, 평수사 1명, 신학생 2명이 거주하고 있다.

김인환 신부 안내로 출입금지 지역을 제외한 수도원을 둘러봤다. 방문객들이 편히 쉬어갈 수 있는 휴게 공간을 지나면 홍성담 화백이 5·18을 테마로 그린 ‘사시사철-봄’이 걸린 작은 로비가 나온다. 공연이 열렸던 소박한 성당으로 향했다. 방석을 깔고 미사를 드리기도 하는데 지금은 가지런히 의자가 놓여 있다. 규모는 작지만 작은 천창으로 들어오는 빛을 받으며 걸려 있는 나무 십자가, 송현섭 신부가 직접 제작한 제대와 벽면을 채운 조각 등이 인상적이다. 사제와 피정 온 사람들만 이용하던 성당은 이제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열며 매일 아침 7시 미사를 개최한다.

비료창고를 리모델링한 수도원 창고 카페는 24시간 무인으로 운영된다.
수도원이 일반인들에게 문을 활짝 연 것은 코로나 이후였다. 코로나 당시 수도원 공사를 진행하며 원칙을 세웠다. 여느 피정센터와는 달리 개인과 소규모 그룹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특히 비신자들을 위한 수도원 스테이를 운영하기로 했다. 절에 머무는 탬플 스테이는 익숙하지만, 수도원에서의 숙박은 익숙지 않은 터라 용기있는 도전이었다. 수도원측은 낙후된 시설을 대폭 개선했다. 주로 단체실로 운영되던 공간을 1인실, 2인실, 4인실 등 다양하게 꾸몄다. 점심 식사가 가능한 식당,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동 주방, 사색할 수 있는 작은 도서관도 인상적이다. 현재 피정센터 이용객 중 비신자는 30% 정도이며 얼마 전부터는 중년 남자 신자들의 참가가 늘고 있다. 전국에서 방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고, 정기적으로 찾는 이들도 많다.

사색의 공간인 수도원 내 도서관.
◇소박한 성당, 모두의 사랑방 무인 카페

‘수도원 창고 카페’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이어갔다. 비료를 쌓아두는 장소로 오랫동안 버려져 있던 창고가 이제는 ‘모두의 사랑방’이 됐다. 신부들이 창고를 고치는 모습을 보고 한 후원자가 팔을 걷어 부쳤고, 신자들이 탁자, 의자, 그릇, 장식품, LP 플레이어, 화목 난로 등을 기증해 멋진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카페에서는 커피와 각종 차를 마실 수 있고 수도원에서 직접 키운 유정란과 수도원 맥주, 타 수도원에서 생산한 와인, 올리브유 등을 구매할 수 있다. 구매자는 모금함에 돈을 넣거나 계좌 이체를 하면된다. 모금함이 도난당한 적이 있기도 하지만 수도원은 개의치 않는다. 무인 카페는 24시간 열려 있다. 동네 주민들은 카페에 들러 차 한잔 마시고 열무 한단, 호박 몇개를 두고 간다.

“카페는 모든 마음들이 모여 만들어진 공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곳에서 와인과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속마음을 털어놓으시기도 합니다. 우리나라는 사회, 정치, 개인적으로 특유의 강박이 있어요. 수도원에서 작은 위안을 받고 가면 좋겠습니다. 신자가 아닌 분들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 오시는 듯합니다. 조금은 여행 느낌도 있고요. 고요하게 머물며 명상하고 사진을 찍으며 수도원을 산책하기도 하시죠.

사람들이 이 곳을 마음의 고향, 나만의 시크릿 가든으로 여기면 좋겠습니다. 언제나 편하게 들를 수 있는 친정집, 외할머니집이라고 생각하며 마음이 지칠 때 편한 마음으로 오십시요.”

신자를 위한 피정과 일반인 대상 수도원 스테이에 제공되는 숙소.
김 신부는 “우리 수도원은 프로그램이 없는 게 프로그램”이라며 웃었다. 얽매이는 것 없이 기본적인 이용 규칙만 지키면 자유롭게 머물다 갈 수 있다는 설명이다. 신부와 상담을 할 수도 있고, 미사에 참여할 수도 있고, 수도원에서 키우는 개 ‘마루’, ‘호두’와 산책을 할 수도 있고, 정말 ‘아무 것’도 하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한 공간’으로 만들자고 마음 먹은 수도원은 1만여평에 이르는 부지를 잘 활용하기 위해 궁리중이다. 맨발 미로 기도길을 조성했고 산책하다 명상할 수 있는 스폿도 만들어보려한다.

또 화덕 피자를 제공하고, 미니 테니스장인 피클볼장을 조성해 마을 주민들이 사용하도록 할 계획이다.

“힘들 때, 나를 늘 환대해주는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고 안심이 됩니다. 우리 수도회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가끔 젊은 친구들이 찾아와 우울증과 공황장애 등을 호소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강아지 목줄 쥐어주고 열바퀴 돌고 오라고 합니다. 강아지와 뛰어다니고, 나뭇잎 줍고, 성당에 홀로 앉아 있고, 카페에서 차마시고 이야기 나누며 조금씩 편안해지는 모습을 보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수도원이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쉬어가는 놀이터가 되도 좋겠습니다.”

수도원 주차장 아래 문을 연 ‘남평미술관’에서는 탄자니아 작가 핸드릭 릴랑가 전시를 진행중이다.
◇수도원 아래 갤러리 ‘남평미술관’

글라렛 수도원을 찾을 때 들러볼 만한 또 하나의 공간이 생겼다. 지난 11월 말 수도원 주차장 아래에 문을 연 ‘남평미술관’이다.

전남대 지역개발학과에서 함께 공부한 동료들이 꾸린 에코힐로지 협동조합(대표이사 김인서)이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당초 어린이집이었던 공간을 갤러리와 커뮤니티를 통한 정서적 치유를 탐구하는 공유공간으로 변신시켰다. 현재 개관기념전으로 아프리카 탄자니아 현대미술가 핸드릭 릴랑가 작품(2월 28일까지)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에서는 아프리카 특유의 원색을 통해 유쾌하고 따뜻함을 전하는 회화와 조각 작품을 만날 수 있다. 미술관은 수요일~일요일(오전 10시~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협동조합은 자체 프로그램과 함께 수도원과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계획이다. 협동조합 회원인 곽민재 홉플로우 대표는 수도원과 콜라보를 통해 수제 맥주를 만들고 있다. 곽 대표는 수도원 창고 카페 등에서 현재 만날 수 있는 수도원 맥주 ‘Lumen’ 두 종류를 개발·판매중이다.

협동조합은 앞으로 수도원과 같이 협력할 수 있는 치유프로그램과 철학인문서 등 함께 읽는 독서 모임을 진행할 계획이다.

수도원으로 이르는 길은 봄이면 벚꽃이 만개한다. 여름에는 수도원 구석구석에 짙은 녹음이 드리운다. 가을의 단풍, 눈내리는 겨울 역시 아름답다. ‘당신을 환대해주는 공간’, 글라렛 수도원으로 발길을 옮겨보길.

/글·사진=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