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천 기자가 추천하는 책] 꽃, 씨 신화 - 전미경 지음
2025년 10월 23일(목) 19:30 가가
108 산사에서 만난 꽃과 씨앗이 피워 낸 생명의 신화
세상은 아니 지구는 하나의 거대한 캔버스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오브제이고 피사체이다. 생긴 그대로 세상에 존재한다. 저마다의 모습과 정체성이 있고,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캔버스 범위를 확장해보면 우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무한대다. 처음과 끝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다.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별과 행성, 은하가 있다. 그것들은 우주라는 캔버스에 나름의 법칙에 따라 존재한다.
전미경은 압화 작가다. 직접 나무껍질을 비롯해 씨앗, 꽃잎 등 자연에서 얻은 재료를 말리고 오려 붙여 작품을 완성한다. 어린 시절 땅은 친근하면서도 경이로운 캔버스였다.
처음으로 그림을 가능하게 한, 꿈을 꾸고 키워준 캔버스였다. 돌멩이는 땅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구’였다. 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피어나는 갖가지 풀꽃은 그 자체로 색이 돼 주었다. 씀바귀, 냉이, 개망초와 같은 자연의 물감은 그에게 인공물감과는 다른 감성과 향기를 선사했을 것이다.
그렇게 자연은 평생의 화두이자 추구해야 할 가치였다. 무엇보다 자연과의 교감은 번뇌를 사라지게 하는 중요 기제다. 몰입하는 순간 번뇌는 사라지고 수행자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전미경 작가가 압화(押花)를 모티브로 풀어낸 ‘꽃, 씨 신화’는 자연, 예술, 사람, 수행에 대한 이야기이다. 지난 11년간 전국의 사찰을 오가며 받았던 감성을 특유의 그림과 글로 표현했다. 꽃잎이나 나뭇잎 등 식물을 누르고 말려 콜라주 방식으로 구현한 압화의 작품 108개가 담겨 있다.
108개의 작품은 아마도 백팔번뇌(百八煩惱)를 상징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번뇌를 108개로 분류한 것을 백팔번뇌라 하는데, 수록된 108개의 그림은 산술적 의미에서 다양한 욕망과 고통을 전제하는 것 같다. 그만큼 삶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한 번뇌가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의미일 게다.
제1회 전국 야생화 꽃 누르미 문화상품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전 작가는 ‘풀꽃으로 그린 풍경’, ‘풀꽃 그림’, ‘풀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 등을 펴냈다. 유년 시절 땅에서 발아한 식물 로 그림을 그렸던 추억이 더 깊어지고 더 넓어져 하나의 범주를 이뤘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에는 2008년 여름 봉선사에서부터 2019년 봄 수덕사에 이르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이 녹아 있다. 작품 하나하나는 따로 또 같이 어울리며 파노라마처럼 연계된다. 햇살과 바람, 구름이 풀어낸 자연의 언어는 일반의 그림과는 차원이 다른 아우라를 발한다.
20대 때 법정스님의 ‘무소유’를 읽고 감동을 받았던 저자는 나무껍질과 씨앗, 꽃잎을 매개로 ‘꽃씨-송광사, 불일암의 사월’을 구현했다. ‘물소리 바람소리’, ‘오두막집’, ‘새들이 떠나간 숲은 적막하다’ 등 주옥 같은 문장을 담은 법정스님의 책을 통해 사제의 인연을 맺었다. 세월의 향기가 깃든 나무와 무늬가 전하는 고적한 운치, 그리고 금방이라도 울릴 듯한 맑은 풍경소리가 오랜 여운을 준다.
고창 선운사를 매개로 표현한 ‘꽃씨-선운사1’은 눈앞에서 동백 꽃잎이 흔들리는 듯한 감성을 피워낸다. 추운 계절 모든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 토하듯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동백의 생리는 안타까움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저자는 사찰에서 보았던 동백꽃을 꿈결처럼 떠올리며 꽃이 주는 기운을 화폭에 담아냈다.
담백한 목어가 인상적인 내소사는 채색이 들어가지 않은 야생의 분위기가 이채롭다. 물속에 사는 생물에게 깨어날 것을 알리는 목어는 사찰의식에 사용되는 도구 중 하나다. 내소사 목어는 나무를 깎아 문양만을 넣은 것인데 저자에게는 가장 아름다운 목어로 남아 있다. 나무껍질, 씨앗, 금박, 아크릴 등을 활용해 표현한 ‘꽃씨-내소사, 목어1’은 깨어 있음의 의미를 환기한다.
이밖에 책에는 길상사, 해인사, 통도사, 미황사, 부석사 등의 사찰에서 보았던 풍경과 그곳을 모티브로 구현한 압화들이 담겨 있다.
한편 저자는 ‘작가 노트’에서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 스치는 모든 것들과의 소중한 인연들, 그 기억의 풍경 속에서 꽃씨들이 춤을 춘다”고 말한다. <비엠케이·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캔버스 범위를 확장해보면 우주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넓다. 무한대다. 처음과 끝이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인지 가늠할 수 없다.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별과 행성, 은하가 있다. 그것들은 우주라는 캔버스에 나름의 법칙에 따라 존재한다.
처음으로 그림을 가능하게 한, 꿈을 꾸고 키워준 캔버스였다. 돌멩이는 땅에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화구’였다. 뿐만 아니라 계절마다 피어나는 갖가지 풀꽃은 그 자체로 색이 돼 주었다. 씀바귀, 냉이, 개망초와 같은 자연의 물감은 그에게 인공물감과는 다른 감성과 향기를 선사했을 것이다.
108개의 작품은 아마도 백팔번뇌(百八煩惱)를 상징하는 듯하다. 일반적으로 번뇌를 108개로 분류한 것을 백팔번뇌라 하는데, 수록된 108개의 그림은 산술적 의미에서 다양한 욕망과 고통을 전제하는 것 같다. 그만큼 삶에 대한 집착과 그로 인한 번뇌가 우리 삶을 짓누르고 있다는 의미일 게다.
제1회 전국 야생화 꽃 누르미 문화상품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전 작가는 ‘풀꽃으로 그린 풍경’, ‘풀꽃 그림’, ‘풀꽃으로 그리는 그림 압화’ 등을 펴냈다. 유년 시절 땅에서 발아한 식물 로 그림을 그렸던 추억이 더 깊어지고 더 넓어져 하나의 범주를 이뤘다는 것을 보여준다.
책에는 2008년 여름 봉선사에서부터 2019년 봄 수덕사에 이르는 10년이 넘는 긴 시간이 녹아 있다. 작품 하나하나는 따로 또 같이 어울리며 파노라마처럼 연계된다. 햇살과 바람, 구름이 풀어낸 자연의 언어는 일반의 그림과는 차원이 다른 아우라를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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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의 무소유 가르침이 환기되는 ‘꽃씨-송광사, 불일암의 사월’ |
고창 선운사를 매개로 표현한 ‘꽃씨-선운사1’은 눈앞에서 동백 꽃잎이 흔들리는 듯한 감성을 피워낸다. 추운 계절 모든 에너지를 머금고 있다 토하듯 붉은 꽃망울을 터트리는 동백의 생리는 안타까움과 탄성을 자아내게 한다. 저자는 사찰에서 보았던 동백꽃을 꿈결처럼 떠올리며 꽃이 주는 기운을 화폭에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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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미가 느껴지는 내소사 목어를 모티브로 한 ‘꽃씨-내소사, 목어1’ |
이밖에 책에는 길상사, 해인사, 통도사, 미황사, 부석사 등의 사찰에서 보았던 풍경과 그곳을 모티브로 구현한 압화들이 담겨 있다.
한편 저자는 ‘작가 노트’에서 “자연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자연, 스치는 모든 것들과의 소중한 인연들, 그 기억의 풍경 속에서 꽃씨들이 춤을 춘다”고 말한다. <비엠케이·2만원>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