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무’ 없이 연구에 집중…‘갑질 피해’ 사라져야
2025년 10월 21일(화) 20:15
[꼰대들의 대학원’ 노예가 된 학생들] <4> 해외 유학생들이 본 개선 대책
지도교수는 상급자 아닌 동료…행정 담당 직원 따로 있어
독일·미국·호주 등 노조·대학원생 권리보호제도 ‘활성화’
일본 대학교, 갑질 실태조사·교육 의무화 등 피해 예방도

/클립아트코리아

미국의 한 공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A씨는 한국 대학원을 다니다 미국으로 떠났는데,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 덕분에 갑질 피해를 받을 일이 전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는 연구실 관리 업무, 행정 처리 등 연구 외의 일이 많은데, 미국은 행정을 담당하는 직원을 따로 두고 있어 자신은 학자 답게 연구만 해도 괜찮다는 것이다. A씨는 “미국에 와서 대학원생이 연구와 학업에만 매진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교수와 학생, 학교와 국가를 위한 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며 “한국도 제도적 견제 장치를 마련해 대학원생이 연구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 베를린에서 1년째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정은영씨는 독일에서 노동자로서 충분히 권리를 보호받고 있음을 느꼈다고 한다. 독일은 학생으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하고 노동을 하더라도 자발적 선택, 혹은 계약에 따른 공정한 임금과 시간을 준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씨는 “연구수업 당 1명의 학생대표가 연구조교로 고용돼 보조할 시 ‘주 최대 20시간’까지 근무할 수 있도록 제한하고 있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릴 일이 없다”며 “지도교수와도 조력자로서 수평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갑질’을 할 수 없는 구조다”고 했다.

반복되는 우리나라의 대학원생 ‘갑질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해외 사례처럼 각종 ‘보호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 대학원 생활을 한 이들은 지도교수의 권한을 분산하고 대학원생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는 기구 등이 갖춰져 있어 우리나라처럼 ‘갑질’ 피해를 받는 대학원생을 찾아보기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우선 해외 대학원에서는 지도교수를 ‘상급자’가 아닌, 연구 동료로 생각한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와 가장 큰 차이를 보였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버클리의 경우, 교수 공동지도 제도가 운영되고 있어 지도교수의 권한이 분산돼 있다. 교수의 휴직, 징계 등 공백 시 학생들이 다시 교수를 구하러 다녀야하는 불편도 없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대 버클리 전기공학 및 컴퓨터과학과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근무 중인 B씨는 “미국에서는 교수의 역할이 학생이 연구할 수 있도록 연구비를 확보해주고 토론하며 연구의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라 생각한다”며 “위계적인 문화를 보인다면, 소문이 퍼져 오히려 교수가 학생들로부터 고립되는 분위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호주와 독일에서는 아예 교수가 학생을 동등한 존재로 여기는 문화가 퍼져 있다. 취업 때문에 교수에게 억지로 잘 보이거나 친밀한 관계를 맺지 않고, 교수 도움으로 취업이 결정되는 경우도 드물다고 유학생들은 설명했다.

노동조합과 대학원생 권리보호기구 등 적극적인 보호제도가 활성화된 점도 차이로 꼽힌다. 행정 업무 등 노동에 정당한 보상을 약속하고, 과도한 업무를 방지할 장치를 마련해 둔 곳도 많다.

미국 대학원생노조는 대학원 학생회와 별도로 교육·연구조교 등 권한에 대해 대학과 협상 자격을 인정받고 있으며, 협상 및 회의도 매달 이뤄질 만큼 활발하다. 대학 내에서 부당한 노동행위 등이 발생할 경우 노조 차원에서 징계위원회에 참석할 수도 있다. 미국 이공계 대학원생의 경우 학비를 교수의 연구비로 충당하고, 추가로 학교 규정에 따라 최저임금 이상의 인건비를 받는 경우가 대다수인 것으로 전해진다.

호주에서는 대학원생이 유급 노동을 할 경우 연방기관인 ‘공정근로감독청’이 임금과 근로조건을 감독해 노동자로서 공정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대학 내에 차별 및 폭력 관련 상담 지원센터, 학업상담 및 심리상담 센터, 다양성·권한강화 교차적 차별반대 센터 등 창구를 갖추고 법률 지원까지 받을 수 있도록 체계가 갖춰져 있다. 대학원생을 교육 및 과학 노동조합(GEW)에 가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기도 하다.

해외에서는 정기적인 설문조사 및 피해 예방 제도를 갖추고 있는 경우도 많다.

일본은 수년 전 ‘미투’와 갑질 문제가 불거지면서 각 대학이 앞다퉈 신고 및 조사를 세분화하고 갑질 피해 방지를 위한 교육, 연수 이수를 의무화했다. 또 갑질 처벌 규정, 지도교수 변경 절차 간소화, 연구윤리교육 교원 평가 연계 등 장치가 보편화되며 피해를 사전 예방하자는 분위기가 강해졌다는 것이 일본 대학원생들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국가과학기술통계청이 나서서 매년 석·박사생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발표하고 있다. 미국 국립보건원도 매년 대학원생 실태조사를 수행하며 장기적인 고등교육 데이터를 축적하고 있다.

일본 오사카대 대학원 법학석사를 졸업한 이은혜씨는 “권리는 노동자에 가깝게, 의무는 학생답게 설계돼야 한다. 인권센터 등 창구가 있냐보다는 행정의 투명성·지도 방식·재발방지 장치·고충상담창구의 실효성이 중요하다”며 “한국에는 공동지도 의무화와 정례평가, 고충처리 독립성 강화, 연구·교육 조교 보수를 표준화해 공시하고, 내부 고발과 2차피해 방지 장치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끝>

/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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