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계열 R&D 예산도 확대하라 - 김진균 성균관대 초빙교수
2025년 08월 26일(화) 00:20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자리에서 2026년도 R&D 예산을 올해보다 19.3% 증액한 35조 3000억원으로 편성하겠다고 발표했다. 정부출연연구소와 기업 및 대학들이 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거나 기존 지식을 응용하는 등의 연구 개발 활동을 수행할 때 이 예산의 도움을 받게 된다. 해마다 증가하는 게 정상인 R&D 예산이 감소한 때가 한 번 있었는데 2024년이었다.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예산을 “나눠 먹기식”이라고 비판한 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전면 재검토를 거쳐 2024년 예산이 전년 대비 13.9% 삭감된 21조 5000억원으로 의결됐다. 연구생태계 파괴라는 비판이 거세지자 학계에서는 환영하지도 않는 국제공동연구 예산 확대 등 논란 많은 방식으로 일부 복원되어 최종 26조 5000억원(9.4% 삭감)으로 조정되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근거도 없이 연구비 카르텔을 거론하며 다시 학계를 실망시켰고, 지원이 중단된 연구자들이 연구소를 떠나거나 해외로 유출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카이스트 졸업식에서 예산 삭감을 항의하던 학생의 입을 대통령 경호원이 틀어막는 사건까지 벌어졌다.

내년 예산 편성 계획을 발표하며 이재명 대통령이 “정상적 증가 추세로 복귀했다”고 언급한 것은 2024년의 왜곡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보인다. 정상으로의 복귀를 환영한다.

아직 정부가 내년도 인문사회분야의 연구지원에 대한 예산 편성안은 발표하지 않았지만 더 올바른 방향이 되려면 분야별 정상화까지 도달해야 할 것이다. 2025년을 기준으로 교육부가 인문사회분야에 투입한 연구지원 예산은 2996억 원으로, 이공분야에 투입한 5958억원의 절반 수준이다.

이 예산은 한국연구재단을 통해 대학으로 지원되며 인문사회분야는 교육부로부터 받는 예산이 전부지만 이공분야는 과기정통부로부터도 약 2조 3400억원의 지원을 받는다. 인문사회분야의 연구자가 이공분야보다 적어서 당초에 지원 예산을 상대적으로 적게 편성했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연구자 수가 상대적으로 적은 점을 고려하더라도 예산 편중은 지나친 수준이다.

2024년 4년제 대학의 이공분야 전임교원은 4만 1940명이고 인문사회분야의 전임교원은 3만 603명으로, 이 수치를 기준으로 한국연구재단의 지원 예산을 나눠보면 이공분야가 1인당 약 7000만 원꼴이고 인문사회분야가 1인당 약 980만원꼴이 되어 인문사회분야의 연구자 수에 비해 지원 액수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비슷한 유형의 사업을 비교해보면 연구 지원의 편중 현상을 좀더 분명히 확인할 수 있는데 2022년 이공분야의 박사후국내연수사업의 선정률은 74.5%이고 이에 상응하는 인문사회분야의 학술연구교수A유형 사업의 선정률은 21.8%여서 선정률에서 세 배가 넘는 차이를 보인다.

2025년 국가 전체 R&D 예산 29조 6000억원으로 따져보면 인문사회계열의 연구개발 지원 예산은 1% 수준에 불과하다. 2017~2021년 사이 대한민국 정부 전체 R&D 예산이 연평균 8.9%의 증가율을 기록하는 동안 인문사회분야는 연평균 1.3%의 예산 증가율을 보여 해마다 국가 R&D 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인문사회분야의 연구지원 예산은 더 줄이자고 할 여지조차 없을 정도로 이미 옹색해져 있었기에, 2024년 윤석열 정부의 막무가내 R&D 예산 감축 사태에서도 별다른 피해조차 입지 못할 지경이었던 것이다. 실험 장비나 재료비 등으로 이공분야가 인문사회분야보다 더 많은 연구비를 필요로 한다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현재와 같은 10배, 100배의 격차는 인문사회분야 홀대가 위험 수준에 이른 것으로 보아야 한다.

전임 정부의 인문사회분야 홀대는 후보 시절의 윤석열씨가 인문학은 대학원까지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한 발언에서부터 조짐이 보였다. 저 발언은 모든 학문 분야가 긴밀히 연결되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이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반지성주의의 상징처럼 받아들여졌다. 지성의 기반이 되는 학문의 절반을 붕괴시킨 뒤에 잘사는 나라가 될 수도 없겠지만 만에 하나 잘사는 나라가 된다 한들 그 나라에 도대체 무슨 가치가 있을 것인가. 인문사회학의 학문생태계가 완전히 고사된 다음에는 반지성주의의 쓰나미가 시민들을 휩쓰는 사태를 누구와 막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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