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기장 속에 있으니까 비밀 아지트에서 영화를 보는 것 같아요. 엄마, 아빠랑 마음껏 떠들고 치킨도 먹을 수 있어서 더 재밌어요!”

폭염이 잠시 가신 여름 밤, 공원이 작은 극장으로 변신했다. 스크린 앞에는 의자 대신 돗자리와 모기장이 놓였고, 흙과 풀 냄새 사이로 고소한 팝콘 향이 은은히 퍼졌다. 돗자리에 앉은 가족들은 장난을 치며 영화를 즐겼고, 운동하던 시민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스크린에 시선을 모았다. 곳곳에서 웃음과 대화가 오가며 도심 속 공원은 잠시동안 작은 영화관이자 모두의 거실로 변했다.

지난 22일 오후 7시, 광주 광산구 쌍암공원 잔디광장에서 열린 ‘모기장 영화제’ 현장에는 200여 명의 시민이 몰렸다. 광산구가 여름방학을 맞은 가족들에게 색다른 여름밤 추억을 선사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다. 무료 팝콘 부스와 간식 이벤트, 공룡 모형 포토존, 응급 부스 등이 준비돼 영화제 분위기를 더했다. 주민들이 돗자리에서 팝콘을 나눠 먹고 치킨을 곁들이는 동안 선선한 바람은 하루 종일 흘린 땀을 식혀줬다.

이날 상영작은 애니메이션 ‘코코’. 멕시코의 명절 ‘죽은 자의 날’을 배경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소년 미겔의 모험과 가족애를 그린 작품이다. 아이들은 미겔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어떡해!”라며 발을 동동 굴렀고, OST ‘기억해 줘(remember me)’가 흐르자 함께 따라 부르며 영화 속으로 빠져들었다.

학부모 모임에서 만나 친구가 된 김소연(여·38)씨와 김혜라(여·38)씨도 자녀들과 함께 영화제를 찾았다. 두 사람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들과 이제 7개월 된 아기를 데리고 모기장 속에서 힐링의 시간을 즐겼다. 김 씨는 “방학이지만 더워서 나들이가 쉽지 않았는데, 오늘 저녁은 비교적 선선해 아이들과 추억을 쌓기에 딱 좋다”며 “아이들도 이미 본 영화지만 친구와 함께 보니 더 즐거운 모양”이라며 웃었다.

광산구청소년수련관에서도 청소년들과 함께했다. 발달장애 청소년 7명은 돗자리에 누워 자유롭게 영화를 보거나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오가며 편안하게 시간을 보냈다. 동행한 이다빈아(여·30) 지도사는 “아이들이 영화를 좋아한다. 특히 이렇게 많은 사람들과 어울려 문화생활을 경험하는 것은 소중한 기회”라며 “영화관에서 조용히 피해를 주지 않고 영화를 감상하는 법도 배웠지만, 아무래도 오랫동안 가만히 있는 것을 어려워하는 아이들이 많다. 이곳에서는 마음껏 떠들고 움직이면서도 영화를 즐길 수 있어 다들 표정이 한결 밝다”고 말했다.

이번 모기장 영화제는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열린 행사다. 첫 행사는 월곡동 대반초에서 열려 300여 명의 주민이 몰리는 등 큰 호응을 얻었다. 이에 광산구는 올해도 행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애초 6월에 예정됐던 행사는 폭우로 한 차례 무산됐지만, 시민들의 재개 요청이 이어지면서 여름방학이 한창인 8월에 다시 열리게 됐다.

송희영 광산구 청소년정책팀장은 “주민들의 성원 덕분에 올해도 개최할 수 있었다”며 “지난해 아이들이 많이 보는 만큼 자막 대신 더빙 영화가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는데, 이를 반영해 이번에는 어린이들이 더욱 즐겁게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가족과 함께 산책을 나왔다가 영화제에 참여했다는 최영진(61) 씨는 “멀리 가지 않아도 이렇게 공원에서 가족, 이웃과 함께 영화를 볼 수 있으니 더 정겹고 좋다. 여름밤 추억으로 오래 남을 것 같다”고 전했다.

/글·사진=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