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래와 함께 춤을- 중현 광주 증심사 주지
2025년 08월 08일(금) 00:00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첫날. 새벽 4시, 도량석 목탁소리가 나야 할 시각인데 조용하다. 도량석을 맡은 스님이 늦잠을 잔게다. 5분쯤 지나니 부랴부랴 문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리고 곧 목탁소리가 난다. 4시 10분이 되자 도량석 목탁을 마치지도 않았는데, 금고 소리가 어둔 새벽을 날카롭게 찢는다. 금고 소리에 짜증이 한가득이다. 그러자 궁시렁거리듯 도량석 소리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절집의 새벽은 도량석 목탁 소리로 시작한다. 도량석이 새벽을 깨우고 나면, 대웅전의 금고를 울리는 종성이 이어지고, 종성을 받아서 대종이 울린다. 도량석-종성-대종으로 흐름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이 정상이다. 아마도 도량석을 하던 스님도 은근 짜증 났을 듯 싶다. 나라면 ‘아니! 그런다고 종성이 막 치고 들어오면 어떻게 해!’ 라고 속으로 투덜거렸을 법 하다.

도량석 시각을 지키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송광사처럼 수행을 목적으로 많은 스님들이 생활하는 대중 처소에서는 상상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재가신자들의 신행생활이 주를 이루는 말사에서는 아무래도 엄격하지 않은 편이다. 그럼에도 대게 스님들이 큰 절에서 처음 중노릇을 익히다 보니 도량석은 꼭 지켜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뇌리에 박혀 있다. 그래서 시간이 되어도 도량석 목탁소리가 들리지 않으면 우선 짜증부터 난다.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던 와중에 짜증 섞힌 금고 소리가 귓전을 때린 것이다. 순간 짜증 났던 마음이 피식하고 웃는다. ‘나만 짜증 난 게 아니구나. 너도?’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피식하고 웃고 나니 그 웃음의 실체가 분명하게 드러나고 말았다. 그것은 괜한 짜증이 불러일으킨 겸연쩍음의 웃음이었다. 피식 하고 웃는 순간, 내 마음을 들여다 보고 만 것이다.

일상은 나를 포함한 여러 인연들이 함께 모여 펼치는 장이다. 당연히 일상을 영위하는 모든 것에 대한 나름의 생각과 기준이 일상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마련이다. 어떻게든 잠시라도 일상을 벗어나고자 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기준이 만들어내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충돌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충돌은 각자의 생각들을 자양분 삼아, 일상을 지치고 피곤하고 짜증나게 한다. 일상을 잠시 벗어날 때는 이런 것들도 일상의 자리에 두고 나오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도드라질 정도로 눈에 확 들어온다.

짧은 휴가를 마치고 돌아온 새벽에 일어난 일이다. 송광사였다면 엄청난 사건일 법한 일이지만 말사에서는 잠시 스쳐 지나가는 짜증거리 정도이다. 이런 차이는 도대체 어디서 생기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구성원과 조직의 일체화 정도에 좌우될 것이다.

문재인 정부 출범 당시, 온 사회는 적폐청산의 열기로 달아올랐다. 적폐를 청산하자는 외침이 사회의 각 분야에서 터져 나왔다. 그러나 일년 정도 지난 뒤 외침은 조용해졌고 세상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실용을 강조하는 이재명 정부는 공직사회의 변화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공무원의 1시간은 5200만 시간의 가치가 있다.”고 하며 공무원들은 국민을 위해 일하는 공복(公僕)임을 누차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의 일개 부군수가 대통령의 면전에서 꿋꿋하게 안일한 보고를 이어가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엄격한 상벌체계로 공무원들의 사고방식을 바꾸고 거대한 관료체계를 사명감에 불타는 조직으로 바꾸는 것이 과연 쉬운 일일까? 짐작컨데 우리같은 말사의 규범의식을 송광사 수준으로 혁신하는 정도는 명함도 내밀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일 것이다. 공직사회라는 거대한 시스템과 사람들의 마음이 함께 변화해야 하는 문제다.

어떻게 하면 고래가 춤추게 할 수 있을까? 칭찬은 고래를 잠시 으쓱하게 할 뿐이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물론 억지로 강제하거나 각종 사탕발림과 거짓 속임으로 잠깐 마음을 훔칠 수는 있지만, 스스로 바꾸도록 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잠시 일상을 나갔다 오니, 일상 속에 있을 때 보기 힘들었던 것이 눈에 들어온다. 몸은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마음은 여전히 휴가 중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휴가 복귀 첫날, 일상이 또렷하게 느껴진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마음이 자유로워야 내 마음을 비롯한 온갓 마음들 속에서 헤매거나 좌초하지 않을 것이다. 호시우보(虎視牛步)라 하였다. 나는 물론이고 이재명 정부에도 꼭 필요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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