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과 함께한 ‘극단 까치놀’ 다음 세대까지 이어가고 싶어”
2025년 06월 15일(일) 19:22
광주 무대 지켜온 극단 창단 40주년…20일 ‘꽃며느리’ 기념공연
1985년 석산고 연극동아리로 시작…서울서 여러 장르 활동 경험
작품성·대중성 인정 불구 지역 극단 이어갈 다음세대 부재 숙제로

극단 까치놀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이영민 대표. <극단 까치놀 제공>

극단 까치놀이 창단 40주년을 맞았다. 오는 20일 공연 예정인 40주년 기념작 ‘꽃며느리’. <극단 까치놀 제공>


연극 ‘공예태후’


무대 위의 조명이 켜지고, 인물이 등장한다. 대사가 시작되지 않아도 이미 관객은 그들의 숨결에 귀를 기울인다.

지난 수십 년간 광주의 무대를 지켜온 극단이 있다. 바로 ‘극단 까치놀’. 연극에 대한 애정 하나로 지원도 인프라도 미약했던 지역에서 연극이라는 소중한 불씨를 붙들고 마흔 해의 시간을 이어왔다. 까치놀의 40주년은 단순히 한 극단의 역사가 아니라, 지역 문화예술이 어떻게 시대를 관통하며 존재해왔는지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극’이라 할 수 있다.

까치놀은 오는 20일 오후 7시 30분 광주 남구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창단 40주년 기념작인 연극 ‘꽃 며느리’를 무대에 올린다. 남해의 작은 섬 ‘홀섬’을 배경으로, 늙은 어머니와 세 아들의 단조로운 일상이 외지에서 들어온 며느리로 인해 흔들린다는 이야기이다.

가족의 붕괴와 인간의 욕망, 생존 본능을 파고드는 정통 사실주의 희곡으로, 고(故) 김창일 작가의 작품을 30여 년 만에 새롭게 올리는 무대다. 까치놀 이영민 대표는 김창일의 제자이자 배우로, 연극인으로 다시 무대에 설 만큼 감회가 남다르다. 또한 광주 연극의 맥을 이어온 까치놀의 정체성이자 연극적 유산을 무대에 올린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극단의 시작은 지난 1985년, 석산고 연극동아리였다. 당시만 해도 광주에는 전문 극단이 손에 꼽을 정도였고, 연극은 그저 축제 무대에 오르는 활동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은 사무실을 차리고 대외 공연을 기획하며 ‘극단’이라는 이름을 현실로 만들었다. “그때는 몸이 근질근질해서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청춘들이었다.” 이 대표의 회상처럼 연극을 배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당장 작품을 하고 싶어서 무대에 올렸다.

1990년대 중반, 까치놀은 서울 대학로로 활동 무대를 옮겼다. 당시 서울은 포스트드라마, 서사극, 넌버벌 퍼포먼스 등 연극 양식의 실험이 활발했던 시기였다.

소극장 ‘시월’을 운영하며 직접 극단을 이끌게 된 이 대표는 “광주의 연극은 마당극이나 리얼리즘 일색이었지만, 서울은 실험적 작품들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덕분에 시야가 넓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던 2008년, 지역의 문화예술 지원 규모가 커지고 상주단체 선정 등 기회가 점차 늘어나면서 까치놀은 다시 광주로 돌아왔다. 이후 광주 광산구, 서구, 장흥, 담양 등 다양한 지역문화회관과 협력해 본격적인 지역 밀착형 창작극에 나섰다. 장흥 지명의 유래와 고려 인종과 태후 이야기를 다룬 ‘공예태후’, 담양 창평의 전설을 야외극으로 풀어낸 ‘쌀엿 잘 만드는 집’, 시인 박용철의 삶을 무대에 옮긴 ‘나두야 간다’까지. 까치놀은 지역을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삼아왔다.

이들의 공연은 작품성과 대중성 모두에서 주목받았다. 전국연극제 은상을 비롯해 광주연극제 대상, K-Theater Awards 베스트 작품상, 일본 삿포로 극장제 특별상 등을 수상했다. 무엇보다 값진 성과는 ‘지속성’이다. 창단 이후 단 한 해도 빠짐없이 공연을 이어왔으며, 외부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고 자체 제작과 티켓 수익, 지역 기업 협력 등을 통해 자립 구조를 구축해 온 것.

과거에 비해 나아졌으나 지역 극단의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작품 한 편에 평균 2000만 원 이상이 들지만, 지원금은 그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게다가 지원을 받으면 유료 티켓 판매가 제한돼 공연의 지속성과 자율성에 제약이 따른다. 더 큰 문제는 ‘다음 세대의 부재’다. 연극을 전공하고도 지역에 남아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부족해 대부분 수도권으로 떠난다. 이 대표는 “춘천의 경우 창작 아카데미, 멘토링, 공간과 예산 등이 갖춰진 덕분에 오히려 서울 배우들이 내려가 활동을 한다. 시스템을 마련해야 사람이 남고 예술이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연극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무대를 만드는 것을 넘어 ‘사람이 남을 수 있는 토대’부터 조성돼야 한다는 의미다.

까치놀은 이제 40주년을 지나 다음 막을 준비하고 있다. 오는 7월에는 의병장 고경명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 ‘불꽃’을 광주 남구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올릴 예정이다.

이 대표는 “까치놀은 그동안 순수연극의 대중화와 지역문화콘텐츠 개발을 목표로 무대를 지켜왔다”며 “그 바통을 다음 세대가 이어받을 수 있도록, 앞으로도 든든한 버팀목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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