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의 고통 달래는 ‘음악의 위로’
2025년 04월 15일(화) 20:15
신진 예술 단체 ‘지음더클래식’
‘메모리얼데이-위로’ 주제
광주예술의전당서 18일 공연
4·19, 5·18 등 무고한 희생 기려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마음 공감

신생 클래식 연주단체 ‘지음더클래식’이 18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첫 공연 ‘메모리얼데이-위로’를 펼친다. 박희현 대표(오른쪽)와 박세환 예술감독.

4월, 봄의 따스한 햇살 속에서 새순이 돋아나는 계절이지만 그와 함께 아픈 기억도 떠오른다. 1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생생한 세월호 참사의 비극, 4·19혁명과 제주 4·3 사건의 무고한 희생, 그리고 다가오는 5월에는 1980년 5·18민주화운동의 아픔이 자리한다.

특히 올해 봄은 유난히 서늘하게 느껴졌다. 지난 겨울 12·29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로 인해 즐거운 여행을 떠났던 179명이 끝내 가족 곁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혼란스러운 시간이 이어졌고, 지난달 경상도 지역에서 발생한 유례없는 대형 화재로 80여명이 사상자가 발생했다.

‘따스해서 더 잔인한 4월’, 지역 예술인들이 지역민들에게 담담한 위로의 음악을 전한다.

기자는 지난 14일 금남로 한 카페에서 클래식 음악 단체 ‘지음더클래식(G-eum the classic)’ 박희현(여·53) 대표와 박세환(여·51) 예술감독을 만났다. 자매이자 동료 예술인인 이들은 올해 초 클래식을 전공하고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전문연주자들로 구성된 지음더클래식를 결성했다. 단체명에서 ‘G’는 광주(Gwangju)와 높은음자리표의 ‘G’를 의미한다.

이들은 오는 18일 광주예술의전당 소극장에서 ‘메모리얼데이-위로’를 주제로 공연을 연다.

박 대표는 “20여년 넘게 지역에서 음악 활동을 하고 제자들을 가르쳤다. 독창회를 꾸준히 열었는데 이 과정에서 피아노, 바이올린 등 다양한 지역 예술인들과 협연을 했다”며 “개인 활동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 맞는 이들과 단체를 꾸렸다”고 했다.

성악과 바이올린, 피아노, 클래식 기타까지 다양한 악기 연주자로 구성된 이들이 공연 주제를 ‘위로’로 정한 것은 나름의 이유가 있다. 공연 기획을 시작한 지난해 가을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등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폭력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았다.

박 대표는 비극이 더이상 ‘남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12·3 비상계엄은 5월의 상흔을 기억하는 광주시민들에게 또 한번의 씻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으며, 제주항공 참사는 많은 이들이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잃는 상실의 고통을 안겨줬다.

‘지음더클래식’이 18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첫 공연 ‘메모리얼데이-위로’를 펼친다. <지음더클래식 제공>
박 대표는 “연주자들은 음악을 통해 우리의 평화로운 일상 뒤에 누군가의 희생이 있었음을 상기시키고,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담기로 했다”고 했다.

공연 레퍼토리도 이 주제에 맞게 구성됐다. 우선 1부는 떠나간 이들을 추모하는 곡들로 채워졌다. 미국 작곡가 사무엘 바버의 ‘현을 위한 아다지오’가 서막을 연다. 현악기의 울림이 마치 애절한 흐느낌을 연상시키는 이 곡은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의 장례식과 9·11테러 희생자 추모 방송에서 사용돼 널리 알려졌다.

한명희의 시에 장일남이 곡을 붙인 가곡 ‘비목’과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Allerseelen(위령제)’을 비롯해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메인 테마곡 등도 연주된다. 슬픔과 상실의 의미가 투영된 곡들을 통해 누군가를 떠나보내고 그리워하는 마음을 위로하고 공감을 나누자는 취지다.

이어 2부는 살아남은 자들에게 “그리움은 추억이 되고, 깊은 상처도 결국에는 아물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한다.

첫 곡 아르보 페르트의 ‘거울 속의 거울’은 물결처럼 잔잔하게 흐르는 단조로운 구성을 통해 고통 속에서도 조금씩 회복되는 마음을 담았다. 일반적으로 피아노와 바이올린으로 연주되지만, 공연에서는 첼로와 클래식 기타라는 새로운 조합으로 펼쳐진다. 관객들이 색다른 울림을 통해 내면의 고통을 마주하고 한 걸음 나아갈 수 있게 용기를 주자는 의미다.

사랑하는 이들의 영혼이 고요하게 잠들 수 있도록 기도하는 레퀴엠 ‘Pie Jesu(자비로우신 주)’와 고난과 시련 끝에 희망이 도래함을 노래하는 가곡 ‘강 건너 봄이 오듯’도 레퍼토리에 있다.

프란츠 리스트의 곡 ‘위로(consolation)’는 이번 공연의 주제의식을 대변한다. 흐르는 듯한 부드러운 피아노의 선율은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의 손길을 내미는 듯하다.

눈 여겨볼만한 지점은 1부와 2부의 마지막 곡이 영화 미션의 OST인 ‘가브리엘의 오보에’와 ‘넬라판타지아’라는 점이다. ‘가브리엘의 오보에’는 오보에의 애절하고 서정적인 음색으로 비극적인 운명과 상실의 고통을 드러내는 반면, 이 곡에 가사를 붙여 성악곡으로 만든 ‘넬라판타지아’는 이상향에 대한 찬양과 구원의 가능성, 평화와 사랑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전체적인 레퍼토리를 기획하고 해설을 맡은 박세환 예술감독은 “이번 공연이 일련의 고통과 상실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는 희망과 평화의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다양한 악기와 스토리텔링을 통해 관객들에게 다가가기 쉬운 클래식 음악회를 기획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장혜원 기자 hey1@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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