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사장서 시인으로…정관호 사장의 ‘50년 詩 사랑’
2025년 03월 11일(화) 19:50
꽃 주제 첫 시집 ‘화도’ 출간…전국 시인 초대 출판기념회
식당 2층에 책·시서화 어우러진 ‘문학 아지트’ 무료 개방
시집 한 권을 내는 게 꿈이었던 그는 시인 등단 이후 50년 만에 첫 시집을 펴냈다. 사업에 매진하느라 문학 활동을 하지 못했던 그는 산전수전 겪으며 지금에 이르렀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시를 향한 열망이 남아있었다.

20년째 광주시 남구에서 한정식집 ‘조선옥’을 운영하는 정관호(75·사진)씨가 꽃에 대한 감성을 담은 연작 시집 ‘화도(花道)’를 펴냈다. 책 출간과 함께 그는 식당 2층을 책과 시서화 등이 어우러진 ‘문학 아지트’로 꾸며 지역 문학인들이 누구나 무료로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동안 치열하게 살아오느라 시를 쓸 여유가 없었어요. 나이 70이 넘어 첫 번째 시집을 만나게 돼 정말 감회가 새롭습니다. 시상이 떠오르면 새벽에 깨서 글을 쓸 만큼 흥분되고 설레는 나날들입니다.”

곡성 출신으로 성균관대 경영 대학원 졸업 후 신용경제지 ‘크레디트 월드’를 창간했던 그는 여러 사업을 하다 광주에서 식당을 운영 중이다. 1975년 순천시 문학회에서 ‘밤에 우는 새야’로 금상을 수상했던 그는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다가 지난해 전국 시인들의 모임 ‘시향낭’ 활동을 하며 시 쓰기에 몰두했다. 1년도 안 돼 시 150편을 써 내려갔고, 그중 90편을 이번 시집에 담았다. 지난 1일에는 자신의 식당에서 전국 시인들을 초대해 출판기념회 겸 시인과의 토크쇼를 열었다.

꽃에 대한 사유를 담은 정 씨는 “순수한 색채감과 깨끗한 이미지를 가진 꽃을 통해 울림과 감동을 주고 싶었다”며 “꽃을 보면 스트레스가 없어지고 얼굴빛도 고와진다”고 웃었다. 정 씨는 ‘화도’가 ‘꽃이 쓰는 시’라고 말한다. 꽃과의 교감에서 일어나는 마음을 적은 시에는 더 깊어진 감성과 짙은 서정이 담겼다.

어렸을 때부터 꽃을 좋아했던 정 씨는 출근하면 식당 화단을 둘러보며 꽃과 인사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봄이면 씨를 뿌리고 손수 가꾼다. 식당 뜨락에는 민들레, 모란, 맨드라미, 채송화 등 20여 가지 꽃이 피어난다. 태풍으로 꽃대가 부러진 쪽도리꽃에 헝겊을 감아 매일 보살펴 살릴 정도로 꽃에 지극정성이다. 그는 지금 수선화 싹이 올라왔고, 히아신스 꽃망울이 피어나기 시작했다며 들뜬 마음을 내비쳤다.

정관호 시인이 식당 2층에 조성한 문학인들을 위한 아지트 ‘시가 흐르는 별마루’.<정관호 씨 제공>
정 씨는 문학에 대한 애정으로 문인들을 위한 공간 ‘시가 흐르는 별마루’를 조성했다. 시향낭 시인들로부터 기증받은 시집 400권이 마련돼있고, 25편의 시서화가 걸려있다. 언제든지 와서 글을 쓰고, 책을 보고 커피도 마시며 함께할 수 있는 편안한 공간으로 정성껏 꾸렸다. 또 식당 입구에 ‘광주의 딸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 축하’ 현수막도 걸려있을 정도로 곳곳에서 그의 문학 사랑을 엿볼 수 있다.

그는 순천 정원박람회에서 시집 사인회를 열 예정이며 가을에는 꽃이 하늘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을 담은 두 번째 시집 ‘화천’을 펴낼 계획이다.

“각박한 세상이 꽃처럼 아름다워지길 바랍니다. 저에게 다시 시를 쓰게 해 준 시향낭 문학회를 확장해 많은 이들이 문학을 향유할 수 있도록 힘쓸 겁니다. 옛날처럼 젊은 친구들이 시를 사랑하고 선물로 시집을 나눌 수 있는 문화가 생기면 더없이 좋겠습니다.”

/글=양재희 기자 heestory@kwangju.co.kr

/사진=나명주 기자 mjna@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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