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세기 고려 실리외교가 주는 교훈- 서금석 전남대 사학과 강사
2025년 03월 04일(화) 00:00
세계질서는 약소국의 중립국 선언을 인정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전 폴란드가 그랬고 20세기 초 대한제국이 그랬다. 모두 중립국 선언을 했지만 폴란드는 독일의 밥이 됐고 대한제국은 일본의 먹잇감이 되었다. 동맹에 대한 약속만 믿고 버틸 수는 없다. 각자 도생해야 하는 것이 세계질서이다.

엊그제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백악관에서 정상회담을 했다. 생중계로 전세계가 지켜봤다. 두 정상의 대화는 험했고 무서웠다. 물밑 외교에서도 보기 힘든 모습이 그대로 노출됐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꼬박 3년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영토의 1/5을 빼앗겼다. 국가의 기간산업은 폭파되었다. 국민은 수없이 많이 죽거나 이주민이 되었다. 우크라이나는 안타깝게도 여전히 지금도 전쟁터가 되었다. 전쟁으로 가족을 잃은 슬픔은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지 못한다. 전쟁으로 얻는 것이 무엇일까? 전쟁을 미리 막을 수는 없었을까? 지정학적으로 대한민국도 방심하면 안 된다.

오래전, 코미디언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 있다. “전쟁은 40대 이상만 나가라.” 나이 먹은 사람들이 전쟁을 결정해 놓고도 정작 전쟁터에 나가 죽어가는 사람은 20대 군인들과 30대 예비군들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동맹국 미국을 포함해 러시아와 중국 그리고 일본에 둘러싸인 동북아시아 한가운데 위치한 한반도는 역사적으로 전쟁 공포로부터 안정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위정자들은 이를 시도 때도 없이 악용한다. 전쟁을 막기 위한 전략은 무수한 외교 전략이다. 이것을 놓치는 순간, 전쟁으로 이어졌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거란을 오랑개로 여겼다. 그들의 성장에 별 정보도 없었고 관심도 없었다. 그래서 그들과 외교 없이 적대시했다. 오로지 동맹국인 중국 송나라와의 관계에 편중했다. 송나라를 공격하는 신흥 제국 거란의 입장에서 고려는 거슬렸다. 춥디추운 겨울 거란은 고려를 공격했다. 10세기 말 거란의 1차 침입 이후 11세기 벽두부터 고려는 전쟁터로 변했다. 고려·거란 전쟁은 고려의 편중된 단순 외교에서 비롯되었다. 거란의 2차 침입으로 수도 개경은 함락되고 국왕 현종은 나주까지 피신해야 했다. 외교가 없는 전쟁이었다.

지금껏 동북아시아 대부분의 전쟁은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7세기 전쟁에서부터 거란 전쟁, 몽고 전쟁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뿐만 아니라 청일전쟁과 6.26 전쟁도 한반도에서 일어났다. 우리가 외교를 잃은 순간 한반도에 무서운 결과를 초래한다.

고려는 거란의 1차·2차 침입을 당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 적의 침입 시 국경선 부근에서 적을 격퇴해야 한다. 거란의 3차 침입은 전쟁 양상이 달랐다. 국토가 전쟁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동안 다져놓은 군사력으로 퇴각해 돌아가는 거란을 완전히 섬멸해 버렸다. 고려는 두 번에 걸친 거란과의 전쟁 패배 경험을 극복하고 거란과의 3차 전쟁에서 키워놓은 자기 방어력을 제대로 보여줄 수 있었다. 거란은 다시는 고려를 넘볼 수 없었다. 고려는 송나라뿐만 아니라 거란과의 평화적 관계를 유지함으로써 동북아시아 안정을 꾀할 수 있었다. 비록 오랑캐라 할지라도 고려에 이익되면 관계를 맺어 평화를 유지했다. 이러한 기조는 오랫동안 이어졌다.

11세기에 배워둔 고려의 실리 외교는 거란을 무너트린 여진과의 관계에서 여실히 보여주었다. 얼마 전까지 여진족은 두만강 일대에서 흩어져 살면서 고려에 조공했던 터라 고려는 그들을 오랑캐라고 불렀다. 그 여진족이 세력을 규합하더니 12세기 동북아시아 새로운 실력자가 되었다. 여진은 막강 거란을 정벌하고 송나라 수도까지 점령해 버린다. 고려는 망해가는 거란에 연연하지 않았다. 오히려 뜨는 세력 여진과 외교 관계를 맺음으로써 국제 질서의 일원이 되었다. 고려의 발 빠른 대외적 대응 논리였다. 이때 송나라는 남쪽으로 쫓겨가 남송시대를 연다. 동북아시아는 여진과 남송 그리고 고려라는 삼각형 체제를 갖춘다.

이처럼 고려의 지속 가능한 실리 외교와 자기 방어력을 갖춘 국방력은 200여 년 유지되었다. 이로써 고려는 동북아시아 평화를 견인할 수 있었다. 이후 고려는 무신정변을 겪으면서 이 두 가지 원칙을 놓쳐버렸다. 몽고 전쟁으로 또다시 고려는 초토화되는 대가를 치렀다.

21세기 대한민국이 1000년 전 11세기 고려가 경험했던 국제 질서를 바라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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