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과 상실의 시대, 니체의 가르침 - 박상하 사회경제연구원장
2025년 02월 19일(수) 00:00
니체는 신이 죽었다고 말한 철학자이다. 차라투스트라가 준 선물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기도 전에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고 책을 덮는 일이 다반사였다. 다시 읽어봐도 쉽지 않다. 심지어 번역한 책마다 내용이 일관되지 않을 때는 당황스럽기까지 한다. 그가 말한 핵심 사상은 관점에 따라 다양한 분야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지만 요즘과 같은 혼돈과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스스로를 되돌아보게 한다.

인간이 경험한 지식과 기술 그리고 도덕과 양심을 백지 상태에서부터 차곡차곡 쌓아온 두뇌가 기억하는 일반적인 범위와 내용은 상식이라는 단어로 통용된다. 그러나 이런 상식도 집단과 이기적 논리로 포장하면 궤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목도하게 된다. 광장의 정치적 이슈가 그렇고 세대 갈등과 성별 갈등이 그렇다. 2030은 이념집단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이미 어떤 형태로든지 태도와 모양이 덧씌워지고 있다. 언론들이 ‘이대남’을 변혁의 주체에서 극우의 전사로 표현하는가 하면 남녀 간의 성전이 시작되었다고 갈라친다. 이러한 행태는 우리 사회의 올바른 방향이 아니다.

2023년 한국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9.8%는 우리 사회의 집단 간 갈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14개 갈등 유형별로 살펴보니 진보와 보수 세력간 갈등이 심각하다는 응답이 86.6%로 가장 높았다. 그중에서도 심각성이 크게 증가한 부문은 젠더 갈등이다. 이는 10년 전과 비교하면 두 배 가까이 높아진 것이다.

한국이 세계 1위의 갈등 국가라고 영국 킹스칼리지가 입소스에서 발간한 보고서도 있다. 전 세계 28개국 시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12개 갈등 항목 중 우리나라는 7개 항목에서 세계 1위였다. 특히 빈부격차에 따른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은 무려 91%에 달했다니 놀랍다. 한국이 압도적 1위를 차지한 항목은 또 있다. 성별과 나이가 그렇다.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젠더갈등, 세대갈등, 학력차별은 유독 심각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는 2015년을 기점으로 10~28세 사이의 정치적 이념과 사회적 변화에 그 원인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한다. 또한 7년 전 거세게 몰아친 미투 운동이 기폭제 역할을 했다는 지적도 많다. 그것은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확장되고 사회적 참여와 활동이 넓어지면서 남성들은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아가 여성들의 교육 기회가 남성들을 빠르게 추격하거나 넘어서면서 여성들에 대한 반감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스마트폰으로 인한 소셜미디어의 역할도 크다. 이러한 환경은 정치적 왜곡과 함께 결혼과 출산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세상을 바라보는 사회적 관점도 달라지게 만든 여건이 형성되었다고 본다. 다른 나라도 남녀 간의 이념적 차이가 심화되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지난해 영국 가디언지에 따르면 영국 남성 4명 중 1명이 여성보다 남성으로 살아가는 게 더 힘들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오늘날 30대 미만 세대는 성별에 따라 큰 차이를 겪고 있고 여성은 진보적이며, 남성은 보수화되고 있다. 이러한 현상들을 우리가 그냥 받아들여야 하는 가치라기엔 사회적 비용이 너무 크다. 결국 이런 갈등과 혼돈의 책임이 어디에 있는지도 보고서에 나와 있다. 바로 국회와 언론이라는 응답이 90.8%로 가장 높았다. 두 집단이 갈등의 진원지라는 뜻이다. 그들은 옳고 그름보다는 늘 자기편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 집단이다.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으로 기존의 지배적 가치가 몰락하고 이를 대신할 새로운 지배적 가치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일 수 있다. 허무주의에 빠진 것이다.

AI와 알고리즘이 유발 하라리의 상상력을 만나면 우리 뇌는 판단력을 상실한 사피엔스 변종이 될지도 모른다. 오류가 내장된 집단적 의사결정이 다수가 되고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라는 절차와 과정이 갖춰졌다고 해서 거짓이 진실의 자리를 대신할 수는 없다. 시대가 변하면 사람들의 생각도 바뀌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집단적 궤변이 정의와 마주할 수도 없다.

니체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창조해나가는 자기극복과 자기실현의 과정에서 진정한 주인공이 되기를 주문하고 있다. 집단주의에 함몰되어 개인의 창의적이고 자율적인 윤리적 책임과 가치가 상처받고 있다면 니체의 가르침 속에 해답이 있다.
오피니언더보기

기사 목록

광주일보 PC버전
검색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