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체험’ 통해 한승원 작품세계 조망”
2025년 02월 11일(화) 20:00
국립 순천대 10·19 연구소
정미경 연구원, 연구서 펴내
한승원 문학의 총체성 규명
작품 이해하는 ‘길잡이’ 역할

정미경 박사

“한승원 작가의 작품 세계에서 원체험은 각별한 의미를 갖습니다. 범박하게 말한다면 한승원의 문학은 원체험에서 뻗어나갔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노벨문학상 수상 한강의 부친이자 한국 현대문학의 거장인 한승원 소설가. 지난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한 이후 그가 펴낸 작품은 방대하다.

깊고 넓은 한승원의 소설세계를 추동하는 것은 무엇일까. ‘저수지’와도 같은 거대한 마르지 않는 창작의 기저에 드리워진 강력한 에너지는 무엇일까.

작가이자 국립순천대 10·19연구소 연구원인 정미경 박사가 한승원 작품세계를 조망한 연구서 ‘한승원 문학 연구’(문학들)를 펴냈다. 정 박사는 지난 2018년 한승원 문학을 연구해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정 작가는 11일 통화에서 “한승원 소설가에 대한 연구는 대부분 주제가 정해져 있다. 작품 양이 방대하다 보니 대체로 고향과 바다, 신화, 생태 등에 초점을 두고 접근한 경우가 많았다”며 “이번 책은 제가 예전에 썼던 박사논문을 좀 더 다듬은 연구서”라고 전했다.

일종의 한승원 소설을 이해하는 길잡이 성격의 책인 셈이다. 독자들은 원체험 양상을 통해 ‘우주적 율동과 화엄 세계’를 일정 부분 가늠할 수 있다.

정 작가에 따르면 한승원 문학을 다룬 연구가 주제와 관련 특정 작품에 치중돼 있다 보니 소설 전반을 조망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다. “‘원체험’은 작가의 생애와 작품 전반을 탐색할 수 있는 핵심 키워드”로 문학적 기원을 밝히는 작업과 연계된다.







“원체험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것은 ‘물 무섬증’이었어요.(‘물 무섬증’은 한 작가가 쓴 용어다) 한 작가의 의식 저변에는 5살 때 기억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어른들이 모두 일하러 나간 사이, 혼자 둠벙에 종이배를 띄워 놀고 있었나 봅니다. 그러다 갑자기 바람이 불었고, 종이배를 잡으려다 그만 둠벙에 빠졌나 봐요. 당시 5살이었던 아이는 최초의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어요.”

정 박사는 죽음과 연계된 ‘물 무섬증’은 단순히 죽음의 소재에만 머물지 않고 다른 모티브와 주제로도 확산됐다고 본다. 문학적으로 ‘여성’에 대한 두려움, 나아가 이분법적인 주제를 피하려는 의식적인 노력 등이 ‘물 무섬증’에서 파생됐다는 것이다.

정 작가는 “한승원 소설의 인물들이 사랑에 깊이 빠져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데” 이는 “어느 하나에 매몰될지 모른다는 무의식과도 연계된다”고 설명했다.

그러고 보니 한 작가는 순수문학 또는 참여문학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경향의 소설을 써왔다. ‘주의’나 ‘이념’을 토대로 작품을 형상화하기보다 주로 신화적, 예술적인 모티브를 창작의 기제로 삼았던 것이다.

이번 책 발간에 대해 ‘한승원 선생님은 어떤 반응이었느냐’는 물음에 “책이 나왔다고 전하자, 선생님이 많이 기뻐하셨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정 박사는 “얼마 전에도 선생님을 뵀는데 조금 수심이 있어 보였다”며 “올해 우리 나이로 87세이셔서 아마도 문득문득 죽음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으실까 싶다”고 덧붙였다.

정 박사는 한승원 소설가의 근황에 대해서도 전했다. 블루투스를 구입해 딸 한강이 작사 작곡한 ‘안녕이라 말했다 해도’를 들을 계획이라는 말을 했다고 했다. 또한 “선생님이 자신이 세상을 뜨게 되면 ‘장례식장에서 이 노래를 틀어놓게 할 것’이라는 말도 했다”고 전했다.

한편 정 박사는 마지막으로 “작품 목록을 정리하며 평생을 소설 쓰는 일을 하면서 어둠을 감지하고 빛으로 화하는 일을 하며 살아오신 선생님에 대한 경이로움과 존경심이 절로 일었다”며 “오늘도 변함없이 그는 소설을 쓰고 있을 것”이라고 언급했다.

한편 순천 출신인 정 작가는 2004년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순천대 국어교육과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소설집 ‘공마당’, 연구서 ‘문학과 삶’(공저)을 펴냈으며 제3회 부마항쟁문학상 소설 부문을 수상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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