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각의 자리에서 타인과 세상의 이면 표현하고 싶었다”
2025년 02월 10일(월) 00:00
박현우 시인 최근 시집 ‘멀어지는 것들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 펴내
“부부가 함께 시를 쓴다는 것은 시적 이해의 폭을 넓힐 수 있다는 점에서 큰 행운이지만 한편으론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행위를 이해한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이해가 곧 행위가 아님은 불편을 줄 수 있지요. 아무리 부부라도 생각의 이면은 존재하기 때문이죠.“

최근 시집 ‘멀어지는 것들은 가까운 곳에 있었다’(문학들)를 펴낸 박현우 시인은 이효복 시인과 부부다. 부인 이 시인은 지난 2023년 35년 만에 창작집 ‘달밤, 국도 1번’(문학들)을 펴내 화제가 된 바 있다.

부부가 함께 문학의 길을 간다는 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더욱이 시를 쓴다는 것은 두말 할 나위 없이 지난한 일이다. 부창부수(夫唱婦隨)와는 다른 차원의 얘기다. 문학은 본질적으로 자신과의 대화이자 싸움이기 때문이다.

박현우 시인
고향이 진도인 박 시인은 조선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근무했다. 89년 ‘풀빛도 물빛도 하나로 만나’라는 제목의 부부시집을 펴냈지만 이후 주위의 이목이 부담스러운데다 학교의 이런저런 일에 매몰돼 시를 등한시하게 됐다. 그로부터 30년 만인 2020년 ‘달이 따라오더니 내 등을 두드리곤 했다’를 발간한 바 있다.

5년 여만에 이번 작품집을 펴내게 된 데 대해 그는 “현장에서 벗어나 외적 상황이 달라지면서 시에 대한 미련이 꿈틀거렸다”며 “이번 시집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그동안 일상에서 새롭게 느낀 감성과 사유를 시로 담았다”고 전했다.

작품에서 얼핏얼핏 보여지는 고독의 정서는 ‘사회적 고립감’이 아닌 ‘타인의 고독’을 이해하고자 하는 의도로 읽힌다. “내 생각의 자리에서 타인의, 세상의 이면 가까이를 보듬어 표현하고자 했다”는 말에서 이번 작품집 지향점이 대략 가늠이 됐다.

임동확 시인은 박 시인의 작품에 드리워진 고독에 대해 “격리되거나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라 우리가 모든 사물들의 본질에 이르면서 그 이웃이 되게 하는 본래적인 힘”으로 규정했다. 즉 “주어진 사회와 길항작용하면서 그것에 활력을 부여하는 일종의 원형으로서 대사회적이고 현대적인 이른바 ‘의로운 고독’”으로 보는 것이다.

“…사계의 해조음처럼/ 변덕스런 시공을 살아 볼 일이지만/ 물살 따라간 시간들 뒤돌아보면/ 절도(絶島)를 표류하던 절명의 고독들이/ 더러는 깨어져 백사(白沙)가 되고/ 갯것들 사늑한 보금자리 되는/ 모난 돌 하나 찾기 힘든 구계등 바라/ 모나게 살고 싶던 날들의 신념 꺼내 보는가// 오는 길 정 맞은 돌 몇 주워/ 빈틈 많은 생의 구멍을 메워 볼까/ 하는.”

‘모난 돌’은 이번 시집을 관통하는 고독의 이면을 투사한 작품이다. 사실 본래의 자신 모습을 잃지 않고 이 세상에서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화자는 단절이 아닌 본래의 본 모습과 대면하고자 하는 의지를 추구한다. 화자에게 ‘모난 돌’이 “빈틈 많은 생의 구멍을” 메울 수 있는 의미있는 존재로 다가오는 것은 그런 연유다. 역설적으로 그 ‘모난 돌’은 자신 외에 타자의 본래 모습에도 들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는 ‘열린 시어’다.

혹자는 시를 쓰기가 어려운 시대라고 한다. 돌아보면 시를 쓰기 쉬운 시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러나 박 시인은 “시대를 엮는 표현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는 것처럼 차이의 시대를 담는 감성의 그릇은 천차만별”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 시를 대하는 태도나 시적 변용의 순환이 반복되는 일은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이다.

“어두운 시대도 서정의 시대에도 숙명처럼 내 안의 신명을 넋두리하는 자가 ‘시인’ 아니던가요? 잠시의 침묵은 있을지라도 습관처럼 ‘징한 놈’의 시기(詩鬼)를 좆는 이유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울러 그는 시를 쓰는 것에 대해 너무 어렵게 접근하지 않았으면 한다고도 했다. 시가 늘지 않는다고 의기소침해하는 후배들에게는 “자기만족이면 되는 것”이라는 말을 꼭 해주고 싶단다.

앞으로도 그는 천천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시를 쓸 계획이다. “해가 갈수록 감성도 감정의 폭도 좁아지지만” 이 또한 편하게 받아들일 것이다.

“내 고향 진도의 펄펄 뛰는 언어들로 고향의 심성을 닮은 작품을 쓰고 싶어요. 고독하지만 의로운 역사 속에 담긴 주술 같은 시집 한 권은 꼭 남길 생각입니다”

한편 박 시인은 한국작가회의 이사로 활동했으며 부부시화전을 개최(그림 홍성담 외 7인)한 바 있다.

/박성천 기자 skypark@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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