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쏘다<3>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타악 신지수 상임단원
2025년 01월 28일(화) 15:00 가가
아이 돌보며 연주하는 워킹맘 타악주자…신춘공연 등 앞둬
타악기 팀파니 주력, 동서양 선법 오가는 국악관현악에 매료
타악기 팀파니 주력, 동서양 선법 오가는 국악관현악에 매료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에서 타악기를 연주하는 신지수 씨가 올해 상반기 ‘신춘음악회’ 등에 출연할 예정이다. 지난 2017년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펼쳐진 전통국악앙상블 놀음판 ‘봄날 애 꿈꾸는 사랑’ 당시 모습. <신지수 씨 제공>
호연지기의 기상과 고아한 음률, 우리 전통예술의 맥(脈) ‘국악’은 명실상부 가장 오래된 K-콘텐츠 중 하나다. 궁상각치우의 오음(五音)이나 삼현육각, 육률(六律)의 선법에는 우리 고유의 아름다움과 정신이 깃들어 있다.
이와 맞물려 20세기 중후반 등장한 ‘국악관현악’ 또한 점차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 관현악 선법에 국악의 특장을 결합한 장르는 우리의 우아미와 서구의 세련미가 어우러진 관현악법이다.
지역 국악관현악을 대표하는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에는 각 분야마다 전도유망한 연주자들이 있다. 2018년 6월 상임단원으로 입단한 이래 팀파니, 꽹과리, 심벌, 장구 등 관현악단의 ‘맥박’을 담당해 온 타악 연주자 신지수(33) 씨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전남 장성에서 초·중·고교를 거쳐 전남대 국악학과를 졸업한 그는, 제21회 임방울국악제 농악부문 우수상, 제10회 서봉판소리·고법대제전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이 제2의 고향”이라는 말에서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가늠된다.
국악관현악에 입문하게 된 것은 “타악 전공은 보통 ‘풍물’과 ‘장단’ 두 갈래에서 시작하는데, 처음 풍물로 입문했다가 대학교 3학년부터 장단과 국악관현악으로 전향을 했다”며 “여자 타악 주자로서 오래 연주할 수 있는 게 국악관현악 장단 파트가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여성 타악주자 중에서도 ‘많이 마른 편’이라는 그는 올해 다섯 살 딸을 둔 워킹 맘이다. 아이가 어느 정도 국악에 대해 자연스럽게 생각하는 터라 연주 영상을 보여주면 “이렇게 멋지게 연주했어”라며 지지를 보내온다는 후문이다.
신 씨는 “타악은 전신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에 아이를 갖고 중반부터는 아예 연주를 못 했다. 병원에서 조산기가 보인다며 출산 4개월 전부터 타악기를 아예 놓으라고 했다”며 당시 기억을 풀어놨다.
그가 생각하는 국악관현악은 서양악과 국악이 조화를 이룬, 스펙트럼이 넓은 음악이다. 초기엔 국악 음계나 선율을 차용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리듬이 다이내믹해지고 선율의 경계 또한 확장됐다는 것. 다양한 악기가 들어왔는데 신 씨는 주로 서양 타악기 팀파니를 다룬다. 지난 12월 송년공연 ‘선물’에서도 팀파니 주자로 출연했으며, 신춘음악회에서도 팀파니 두 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팀파니를 주로 연주하지만 타악기 주자는 경우에 따라 꽹과리, 심벌, 장구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해요. 타악은 고정악기가 아니라 특정 파트나 편성에 따라 다른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데, 그게 매력이죠.”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오가야 하기에 어려움도 있다. 4/4박자 등 메트로놈화(계량화)된 박자를 따르는 서양악기와 달리, 국악기는 장단의 길이를 가늠하기에 리듬감 자체가 다르다.
가령 드보르자크 ‘네 개의 낭만적 소품, Op.75’의 초입(알레그로 모데라토)은 중모리장단으로, 이어지는 마에스토소는 자진모리로 치환해 볼 수 있지만 이 같은 수평적 비교는 의미가 없다. 국악은 계량화할 수 있는 서양악과 달리 음의 장단을 상대적으로 표현한다. 국악 속 ‘덩’이 사분음표 하나를, ‘덕’이 팔분음표만을 상정한다 여기는 순간 시김새의 곰삭은 멋이나 이채로운 한배 등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동서양 리듬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으나 악곡 편성에 철저하게 따르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면서 “곡이 국악 장단이 모티브가 됐는지, 서양음악이 주가 됐는지 등을 분석하며 지휘자의 의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악기와 서양악기는 타법도 다르다. 국악은 다운되는(꾹꾹 눌러 치는) 기질이 있다면 양악기는 친 다음 튕겨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팀파니와 모듬북을 같이 친다면 두 타법과 가죽의 성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에 쉽지 않지만, 그만큼 재밌다”고 부연했다.
여기까지 오기까지 힘들었던 기억도 많다. 부모님이 국악을 반대해 경제적 지원이 전무했기에, 국악 강사 일을 하면서 공부를 마쳐야 했다. 이후 서울과 광주를 오가며 국악단체 오디션을 봤지만 낙방하는 등 어려움도 있었다.
신 씨는 “그래도 저를 이끌어주신 선생님이 있어서 공용악기로 연습을 할 수 있었다”며 “힘들었던 일들이 자양분이 돼 지금 자리에 설 수 있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그의 남편 또한 광주시립창극단 비상임단원을 역임한 뒤,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국악인이다.
아이에게도 전통 예인의 길을 권할 것인지 묻자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꾸준히 해도 쉽지 않은 것이 예술가의 길”이라며 다소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모성의 한 지점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앞으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무대에 오를 때 매번 떨리지만 오히려 ‘지금 나보다 누가 더 잘하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당당하게 임하려 합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이와 맞물려 20세기 중후반 등장한 ‘국악관현악’ 또한 점차 주목을 받고 있다. 서양 관현악 선법에 국악의 특장을 결합한 장르는 우리의 우아미와 서구의 세련미가 어우러진 관현악법이다.
전남 장성에서 초·중·고교를 거쳐 전남대 국악학과를 졸업한 그는, 제21회 임방울국악제 농악부문 우수상, 제10회 서봉판소리·고법대제전 일반부 대상을 차지했다. 경기도 광명에서 태어났지만 “이곳이 제2의 고향”이라는 말에서 지역에 대한 애정이 가늠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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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신지수 상임단원. |
신 씨는 “타악은 전신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에 아이를 갖고 중반부터는 아예 연주를 못 했다. 병원에서 조산기가 보인다며 출산 4개월 전부터 타악기를 아예 놓으라고 했다”며 당시 기억을 풀어놨다.
그가 생각하는 국악관현악은 서양악과 국악이 조화를 이룬, 스펙트럼이 넓은 음악이다. 초기엔 국악 음계나 선율을 차용하는 느낌이 강했다면, 지금은 리듬이 다이내믹해지고 선율의 경계 또한 확장됐다는 것. 다양한 악기가 들어왔는데 신 씨는 주로 서양 타악기 팀파니를 다룬다. 지난 12월 송년공연 ‘선물’에서도 팀파니 주자로 출연했으며, 신춘음악회에서도 팀파니 두 곡을 연주할 계획이다.
“팀파니를 주로 연주하지만 타악기 주자는 경우에 따라 꽹과리, 심벌, 장구 등 다양한 역할을 소화해야 해요. 타악은 고정악기가 아니라 특정 파트나 편성에 따라 다른 악기를 연주해야 하는데, 그게 매력이죠.”
국악기와 서양악기를 오가야 하기에 어려움도 있다. 4/4박자 등 메트로놈화(계량화)된 박자를 따르는 서양악기와 달리, 국악기는 장단의 길이를 가늠하기에 리듬감 자체가 다르다.
가령 드보르자크 ‘네 개의 낭만적 소품, Op.75’의 초입(알레그로 모데라토)은 중모리장단으로, 이어지는 마에스토소는 자진모리로 치환해 볼 수 있지만 이 같은 수평적 비교는 의미가 없다. 국악은 계량화할 수 있는 서양악과 달리 음의 장단을 상대적으로 표현한다. 국악 속 ‘덩’이 사분음표 하나를, ‘덕’이 팔분음표만을 상정한다 여기는 순간 시김새의 곰삭은 멋이나 이채로운 한배 등은 온전히 전달되지 못한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 “동서양 리듬을 오가는 것이 쉽지 않으나 악곡 편성에 철저하게 따르면 어려움을 해소할 수 있다”면서 “곡이 국악 장단이 모티브가 됐는지, 서양음악이 주가 됐는지 등을 분석하며 지휘자의 의도를 따라가야 한다”고 했다.
이어 “국악기와 서양악기는 타법도 다르다. 국악은 다운되는(꾹꾹 눌러 치는) 기질이 있다면 양악기는 친 다음 튕겨져 나오는 경우가 많다”며 “팀파니와 모듬북을 같이 친다면 두 타법과 가죽의 성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에 쉽지 않지만, 그만큼 재밌다”고 부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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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주자가 되고 싶다”는 신지수 씨. |
신 씨는 “그래도 저를 이끌어주신 선생님이 있어서 공용악기로 연습을 할 수 있었다”며 “힘들었던 일들이 자양분이 돼 지금 자리에 설 수 있는 것 같다”고 부연했다.
그의 남편 또한 광주시립창극단 비상임단원을 역임한 뒤,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국악인이다.
아이에게도 전통 예인의 길을 권할 것인지 묻자 “좋아서 시작한 일이지만 꾸준히 해도 쉽지 않은 것이 예술가의 길”이라며 다소 부정적인 답을 내놓았다. 모성의 한 지점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앞으로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연주자가 되고 싶어요. 무대에 오를 때 매번 떨리지만 오히려 ‘지금 나보다 누가 더 잘하겠어?’라는 생각을 갖고 당당하게 임하려 합니다.”
/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