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쏘다<2> 광주시립발레단 박범수 발레리노
2025년 01월 23일(목) 14:50
‘DIVINE’ 솔리스트, ‘지젤’ 패전트, ‘호두까기 인형’ 왕자 역 소화
최근 전역한 뒤 성공적 복귀무대, 발레리나 존중하는 것이 중요

광주시립발레단 공연에서 다양한 역할을 넘나드는 박범수 발레리노를 최근 광주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작년 정기공연 ‘코펠리아’ 당시 프란츠 역 컨셉샷. <광주시립발레단 제공>

‘DIVINE’에서 솔리스트로서 보여줬던 압도적 전율, ‘지젤’ 속 패전트의 격정, 낭만. 무한한 변신 끝에 ‘호두까기 인형’에서 호두까기 왕자 역을 맡기까지…. 발레리노 박범수의 도전에는 끝이 없다.

지난 22일 광주예술의전당 별관동에서 만난 발레리노 박범수(31). 무대 위에서 봤던 모습처럼 다부진 체격과 183cm에 달하는 신장은 ‘몸의 언어로 무언가를 말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전북 남원에서 태어난 그는 2014년 한예종에 입학한 뒤 2020년 광주시립발레단에 입단했다. 2022년부터 군복무로 공백기가 생겼지만 이듬해 ‘호두까기 인형’으로 성공적 복귀, 여러 작품에서 주역을 맡아 얼굴을 알렸다.

박 씨는 “통상적으로 ‘호두까기 인형’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송년 공연임에도 전역 후여서인지 새로운 시작으로 다가오는 측면이 컸다”고 회상했다. 당시 박경숙 예술감독, 발레마스터, 단원들이 따뜻하게 반겨줘 소위 ‘군인 티’를 벗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예술가로서 목표에 대해 묻자 그는 “국내 최초로 마린스키 예술단에 입단한 김기민 발레리노처럼 멀티 페르소나를 꿈꾼다”며 “작품별로 캐릭터에 온전히 몰입하는 ‘메소드 연기’를 선보이고 싶다”고 했다. 젊은 발레리노의 패기, 열정, 자신감이 느껴지는 답이었다.

인터뷰하는 박범수 발레리노
“논산 육군훈련소 조교로 군복무하던 시절, 발레리노가 입대하자 신기하게 생각하신 연대장님이 ‘장기자랑’을 은근히 권유했어요. 이후 체력 단련실에서 몰래 연습한 뒤 점프, 턴 등을 선보였는데 환호성이 쏟아졌죠. 물론 휴가증도 받았구요.(웃음) 사실 발레단 복귀 전에는 성공적으로 재기할 수 있을지 걱정됐지만, 늘 춤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삶은 일상이나 군복무 시절 모두 발레와 떼어 놓고는 생각할 수 없다. 가령 자리에 앉을 때면 무릎을 들어 올려 고관절을 누른다거나, 횡단보도를 건널 때 흰 선만 밟으며 글리사드(미끄러지는 동작)를 하는 등 자신만의 습관이 있다. 한번은 계단을 오르면서 턴아웃(발을 넓히는 자세)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예술과 일상의 구분이 사라져간다는 생각도 들었다고.

군복무 당시 논산 육군훈련소에서 훈련 조교로 근무했던 박범수 발레리노(앞줄 오른쪽에서 세번 째)
다른 장르에도 관심을 두고 있는지 궁금했다. 그는 “풍물패와 꽹과리 등 타악 소리”를 언급했는데 쨍한 울림이 선사하는 카타르시스가 발레의 그것과 겹쳐 보인다고 했다. 언젠가 그가 무대에 올라 발레극 ‘라 바야데르’ 중 북을 두드리며 격정적인 춤을 추는 한 장면(‘북춤’ 대목)이 펼쳐질 것 같았다.

지난 수년 간 ‘파 드 되(2인무)’를 누구보다 많이 소화한 그다. 파트너 발레리나와 춤출 때 “무엇보다도 여성 무용수가 불편하지 않게끔 최대한 배려하는 데 주안점을 둔다”는 생각은 그의 예술관을 대변한다.

박 씨는 “5분 가량의 파 드 되가 끝나면 짧게 인사한 뒤, 늘 발레리노 솔로 바리에이션이 이어진다. 만일 ‘내 것’을 하기 위해 파드되에서 힘을 아끼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우는 셈이다”라며 “관객들 시선의 소실점은 빛을 발하는 발레리나에게 간다는 점을 유념하면서, 호흡을 맞춰 파트너가 균형 잡는 데 집중하는 편이다”고 했다.

힘을 더 쓰는 발레리노 역할도 힘들지만, 리프트(공중 동작)를 수행하는 발레리나가 다칠 위험성이 있어 그들을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2인무 ‘파 드 되’에서 힘을 아끼면 첫 단추부터 잘못 꾀는 셈입니다. ‘내 것’을 위해 이기적으로 굴기보다, 파트너와 공연의 큰 그림을 아름답게 그리는 데 주력하는 것이 무용수의 소임이죠.”
박 씨의 다음 꿈은 기본에 충실하면서도, 자신만의 역량을 갖춘 무용수로 성장하는 것이다.

미래를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어릴 적 국립발레단 ‘백조의 호수’ 전막공연을 본 뒤 지그프리드 왕자의 고고한 모습에 이끌렸다던 순수한 ‘발레 소년’의 눈빛이 오버랩되었다.

한편 박 씨는 오는 3월 ‘Voice of spring’을 시작으로 5월 정기공연 ‘DIVINE’, 6월 상무시민공원에서 ‘해설이 있는 발레’ 등에 출연할 예정이다.

/글·사진=최류빈 기자 rubi@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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