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시대에 새로 쓰는 눈부신 ‘실패 이력서’
2025년 01월 17일(금) 00:00
우리의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 - 김지은 지음
사람들은 처음엔, 실패를 묻는 인터뷰어에게 당황했다. 하지만 대화를 나눌수록 “인생 곡절마다 결핍과 실패가 함께 했고 그로 인한 시도와 분투가 오늘과 연결되어 있음을 깨달은 소중한 시간”(‘루나파크’ 작가 홍인혜)이었다는 점을 새삼스레 느꼈다. 배우 김혜수처럼 “이런 인터뷰라면 나도 하고 싶다”며 적극적으로 나선 이도 있었다.

일간지 인터뷰 전문 기자로 인터뷰집 ‘언니들이 있다’, ‘엄마들이 있다’ 등을 펴낸 김지은의 ‘우리의 실패가 쌓여 우주가 된다’는 ‘실패의 연대기’와 ‘실패 이력서’를 통해, 그 실패가 결국 ‘새로운 시작’을 잉태시켜 ‘현재의 나’를 만들어간 힘이었음을 보여준다.

저자는 사람들이 입에 담기 저어하는 ‘실패’를 다시 정의해보고 싶었다. “실패가 품고 있는 부정적인 어감을 바꾸고 싶었고, 실패의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싶었고, 그리하여 실패를 실패가 아닌 그 무언가로 불러보고 싶었던” 그는 12명의 인터뷰이를 초대해 이야기를 듣는다.

고등학교 3학년이라는 뒤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해 동양인 최초로 마린스키 극장에 선 발레리노 이원국의 ‘실패’는 끝없이 이어졌고 난지도 쓰레기 더미에서 폐지를 주으며 그는 자신의 삶을 찾기 시작한다. ‘설 무대’가 없어 방황하던 개그우먼에서 이제는 구독자수 270만명의 유튜브 채널 ‘엔조이 커플’의 크리에이터로 당당히 선 임라라 역시 수도 없는 좌절의 순간을 겪었다.

어느날 영화 ‘밀양’을 보고 “그래, 연기는 저런 분들이 하는 거지, 너 그동안 완전 애썼다. 정말 충분히 수고했다”라며 스스로 머리를 쓰다듬었다는 김혜수는 “인생의 목표는 성공이 아닌 성장, 중요한 건 실패가 아닌 시도”라고 말한다.

눈길을 끄는 건 지독한 실패를 경험한 후, 힘들어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손’을 내미는 사람으로 성장해간 이들의 이야기다. 고등학교 때 대마초를 접한 후 15년 간 마약 중독자로 살다 중독재활시설을 운영하는 한부식 원장, 자신의 표현대로라면 “자살마저도 실패한” 은둔 청소년으로 하루하루를 견뎌오다 사회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을 위한 처방 프로그램을 만드는 282북스의 강미선 대표, 성매매 당사자였다 이제는 성매매 피해 청소년들을 상담하는 활동가로 일하는 진(가명) 등이다.

또 발라드를 부르던 대중가수에서 벗어나 ‘우리는 모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일합니다’라는 노래를 통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외치며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가수 하림, ‘실패’라는 단어를 몰랐을 것 같은 UCLA의 로봇공학자 데니스 홍, “어쩌면 매일이 수능 같은” 아이돌들의 심리상담을 해주는 심리상담 전문가 조한로, 카이스트 실패연구소 안혜정 연구조교수 등의 인터뷰도 눈길을 끈다.

“자신만의 언어로 실패를 정의해본다면?” 저자가 모든 인터뷰이에게 마지막에 던진 질문이다. 각각의 실패를 겪어온 우리 모두가 스스로 답해볼 만한 질문이다.

<휴머니스트·1만8000원>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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